제2화 다시 살아난 세상
그녀가 돌아왔다!
임지연이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의 놀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지연은 세게 자신의 팔을 꼬집었다. 온몸을 덮치는 통증에 눈물이 한순간에 고였다.
"울 게 뭐가 있느냐! 오히려 우리 최씨 집안이 너한테 미안해야 하는 거지!"
자리 위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 끝에는 불쾌함이 가득한 최태웅이 있었다. 그녀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겉으론 늘 그렇듯이 겸손한 태도를 취했지만, 속에서는 흥분으로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가벼운 비웃음이 터졌고, 끊이지 않는 속삭임이 이어졌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셋째 도련님에게 약이나 먹이고 침대에 기어올라와선 온 도시를 시끄럽게 만들었잖아. 이건 분명 도련님한테 자기 책임지게 하려고 한 거야.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키운 애람?"
"역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인터넷에 보면, 얘가 셋째 도련님 짝사랑하면서 쓴 일기 올라와 있잖아. 손발이 오그라질 정도로 창피하게 써놨더라니까. 최씨 집안에서 돈 써가며 대학까지 보내줬더니, 배워온 게 되도 않는 불여시 같은 짓이랑 쓸데없는 짓거리야."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아무나 집에 들이면 안 된다고. 이건 여우를 집 안으로 들여놓은 꼴이야. 셋째 도련님한테 들러붙으려는 수작이지. 누구한테 배웠는지, 아니면… 유전인가?"
그 말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홀 끝에 서 있던 임지연의 어머니, 유하영을 흘겨보았다.
유하영은 흙빛이 된 얼굴로 임지연을 한 번 쓱 바라보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안쪽 입술을 씹어 문드러질 정도였지만,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임지연의 신분이 너무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임지연은 어머니를 따라 재혼 가정으로 들어와 최씨 집안에 들어왔고, 유하영은 최강민의 둘째 형과 결혼했다. 족보상으로는 그녀가 최강민을 ‘작은 삼촌’이라 불러야 했지만, 임지연은 단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임지연은 이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조롱에 겁을 먹고, 결국 사과했다. 그리고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이 약을 먹이고 최강민의 침대에 들어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후 임신했고, 결국 최강민은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최강민뿐 아니라 온 도시가 그녀를 싫어했다. 부잣집에 시집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라고, 그렇게 낙인을 찍었다.
이번 생에서, 임지연은 자신의 비극을 다시 쓰고자 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최씨 집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전생과는 다르게, 마음속의 두려움은 한층 덜했다.
막 입을 열려는 그 순간——
뒤에서 남자의 단단하고 안정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자세가 곧장 공손해졌고, 키 큰 그림자가 임지연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집사가 그의 팔에 걸려 있던 외투를 받아들며 고개를 숙였다.
"셋째 도련님."
"응."
최강민은 담담하게 미소를 머금고, 노인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임지연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그녀라는 존재 자체가,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하지만 임지연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가 끝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볼 때까지.
그 찰나의 순간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임지연의 몸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떨렸다. 입 안에는 피맛이 올라왔고, 움켜쥔 두 손은 마치 상아의 손을 다시 붙잡은 듯 굳게 조여 있었다. 이 얼굴, 이 남자를 그녀는 평생 잊을 수 없었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먹빛 눈동자. 그리고 왼손 엄지에 낀 붉은 비취 반지는, 은은한 윤기 속에 피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자신처럼 겉은 차갑지만, 위험하고 피에 굶주린 사람.
임지연의 시선을 느낀 최강민은, 돌리던 반지를 멈췄다. 그러나 곧 다시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의 어깨에,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올라왔을 때까지는. 송유리였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울었던 듯, 눈가가 붉게 충혈돼 있었고, 부드럽고 애교스러운 얼굴엔 억울함이 가득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모였다. 최태웅은 최강민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찻잎을 툭툭 건드리며 무심한 듯 임지연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는 몇 분의 냉기가 서려 있어, 보는 사람들조차 움찔하게 만들었다.
"됐다. 시끄럽게 떠드는 꼴이 꼭 어디 천한 못 사는 집안 같구나. 아직도 창피한 줄을 모르느냐?"
"임지연, 너희 모녀가 최씨 집안에 들어온 지도 오래됐다. 그동안 우리 집안이 너희를 푸대접한 적은 없지 않느냐. 잘못한 일이 있으면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바로 그 말이었다. 모녀를 압박하기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최태웅은 애초부터 유하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말에 겁 많고 매사에 소극적인 유하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울먹이며 임지연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지연아, 어서 할아버지께 사과드려. 사과하면 괜찮아질 거야. 제발, 더 일을 키우지 마!"
…사과라고? 흥.
유하영은 알지 못했다. 최태웅은 처음부터 그녀를 용서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저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길, 그리고 최씨 집안을 향한 사람들의 비난을 대신 받아내는 방패막이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임지연은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곧게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강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메말라 있었다. 감정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마치 그녀의 결말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마도 그를 실망시킬 것이다.
임지연은 저릿한 무릎에 힘을 주며 일어섰고, 가볍게 웃었다.
"제가 왜 사과해야 하죠?"
"뭐라고?"
최태웅은 얼굴이 푸른색으로 변하며 분노에 휩싸였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도 덜컥, 일부를 쏟아버렸다.
임지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첫째, 제가 약을 먹인 적이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하나요? 둘째, 사진 속 인물이 저라고요? 그렇게 흐릿한 사진인데, 파파라치가 임지연이라 하면 그게 바로 증거인가요? 당신들이 직접 제가 침대에 올라가서 유혹하는 모습을 봤나요? 아니면… 작은 삼촌이 깨어나서 그게 저라고 확인이라도 했나요? 깨어 있었다면, 작은 삼촌이 어떻게 저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죠? 깨어 있지 않았다면, 누가 그 사진 속 인물이 저라고 증명할 수 있죠? 그렇지 않나요?"
그래. 그녀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기만 하면, 그리고 최강민이 입을 다문다면, 그 사진 속 인물이 누구든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강민은 송유리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가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어젯밤, 그는 온 마음으로 그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바랐을 테니까.
그러나 최강민의 눈동자가 살짝 가라앉았고, 손에 낀 붉은 비취 반지를 만지던 손도 서서히 움켜쥐어졌다. 그는 임지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히 물었다.
"너, 방금 나를 뭐라고 불렀지?"
"작은 삼촌."
임지연은 차갑게 그를 마주보며, 모든 감정을 꾹꾹 눌러 삼켰다. 이번 생에서, 모든 실수는 어젯밤으로 끝이다.
"좋아."
최강민은 가볍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워져 있었고, 얼굴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세는 단정했고, 팔은 자연스럽게 팔걸이에 올려져 있었으며, 손끝은 힘 있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무심한 눈으로 높은 자리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습이었다. 그 눈빛은, 마치 그녀를 꿰뚫어보려는 듯 차갑고도 위압적이었다.
임지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시 한 번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최강민이 주는 압박감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얼어붙게 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최태웅은 타악, 찻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수염까지 떨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추궁했다.
"그럼 네 말은, 그게 누구란 거지?"
임지연은 꽉 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펴고, 조용히 한 곳을 가리켰다.
"저 여자입니다." ——송유리.
송유리의 눈가엔, 방금까지 흘러내리려던 눈물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멍한 듯 굳어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임지연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송유리와 최강민, 두 사람의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랑'을 성취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최강민이,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여자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임지연은 그 순간이 꼭 보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