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임지연은 조성진에게 뒤로 끌려갔고, 의식이 흐려질 때쯤 주먹을 꼭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통증을 일으켰고, 그 고통이 그녀의 정신을 다시 붙들어 세웠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그녀는 문 손잡이를 붙잡아 몸을 지탱하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중앙 콘솔 위에 놓인 수정 장식품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기회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러나 손을 뻗을 때마다 항상 조금 모자랐다.
임지연은 이를 악물고, 조성진의 힘에 저항하며 손끝으로 조금씩 장식품에 닿기 시작했다. 드디어 미끄럼 방지 패드 위에 있던 그것을 손에 쥔 순간, 그녀는 있는 힘껏 뒤로 내리쳤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성진이 신음을 흘렸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임지연은 차 문 잠금 해제 버튼을 눌렀다. 몸을 굴리다시피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을 밤, 달빛은 부드럽게 흘렀지만, 바람은 날선 칼날처럼 그녀의 몸을 세차게 할퀴었다. 임지연은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겨우 몇 걸음 달렸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저항하며 몸부림쳤지만, 조성진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차 문에 그대로 내리쳤다.
현기증이 밀려오며 임지연은 쓰러졌고, 조성진은 그 틈을 타 그녀를 다시 차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차 문 앞에 선 조성진은 숨을 고르며 이마에 흐른 피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의 얼굴엔 더 이상 평소의 다정함이나 젠틀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악문 그는 낮게 으르렁이듯 말했다.
"네가 반반하지 않았으면, 진작에 관심 껐어. 밥도 먹고, 영화도 봤으면, 이제는 몸의 대화를 할 차례가 아니냐? 이쯤 하고 가겠다고? 날 갖고 노는 거야?"
임지연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온몸으로 버둥대며 발로 조성진을 막아섰다. 하지만 조성진은 순식간에 그녀의 발목을 잡더니 하이힐을 벗겨냈고, 발등을 따라 천천히 손을 위로 올렸다.
뱀이 기어오르는 것 같은 소름이 온몸을 휘감았다. 임지연은 발을 몇 번 차며 벗어나려 했지만, 오히려 조성진은 그녀의 다리를 벌릴 기회를 얻고야 말았다.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양다리 사이에 몸을 들이밀었다. 몸을 숙여 그녀 위에 올라탄 채, 치마 끝을 쓸어올리며 손으로 그녀의 피부를 더듬었다. 그의 코끝이 임지연의 몸에 닿아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정말 향기롭고, 정말 부드럽네…"
임지연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요염하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윤기 도는 피부에 흥분이 서려 있었으며, 붉게 상기된 뺨과 촉촉한 눈동자는 부서질 듯 매혹적이었다.
그녀를 힘으로 짓누른 순간, 임지연의 몸은 그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부드럽고 연약했다. 조성진은 낮게 웃으며 속삭였다.
"나한테 화내지 마. 너희 엄마가 널 내게 보냈잖아. 둘째 형님이 우리 집이랑 사업을 하니까, 파트너십의 일부로 널 내놓은 거지. 얌전히 있으면 너희 가족도 이득이 클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좀 무례해져도 탓하지 마. 너희 집이 최씨 집안에서 어떤 위치인지 너도 알잖아."
그는 말을 하며 임지연의 무릎을 다리로 밀어내고, 그녀의 뺨을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깃을 세게 찢었다. 달빛 아래,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고, 그의 눈에는 욕망이 가득했다. 그는 키스하려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의식이 흐릿한 상태에서, 임지연은 바닥 매트 위에 떨어진 자신의 가방을 발견했다. 유하영이 의상에 어울리라고 일부러 챙겨준, 사각 볼트 장식이 달린 가방이었다. 작고 단단하며, 휴대폰 하나 들어갈 정도였지만 꽤 묵직했다. 사람 하나 제압하는 데는 충분할 무게였다.
조성진의 손이 치마 속으로 들어오려던 순간, 임지연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녀는 가방을 움켜쥐고 그대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악!" 조성진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임지연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한 번, 두 번, 세 번… 거침없이 가방을 휘둘렀다.
"임지연…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사과하는 게 아니라, 단지 두려운 것뿐이라는 걸.
이 생에서 다시 태어난 이상, 누구와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다들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걸까?
조성진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핏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그녀의 얼굴과 몸에 떨어졌다. 그는 결국 좌석 밑에서 기절했고, 그제야 임지연은 손을 멈췄다.
비틀거리며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차 밖으로 나왔다. 몸을 일으킬 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고, 피가 묻어 형체가 뒤틀린 가방을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밖으로 걸어 나왔다.
도중에 맞은편 차량의 조명이 번쩍 켜졌다. 임지연은 순간 눈을 가렸다가, 빛에 익숙해지자 손을 내리고 주변을 보았다. 그때, 차 문이 열리고 최강민이 단정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초라하게 망가진 자신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최강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제야 임지연은 뒤늦게 주변에서 울리는 경찰 사이렌 소리를 인식했다.
장갑을 낀 경찰이 그녀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임지연 씨, 증거물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 죽었나요?" 임지연이 차갑게 물었다.
"아닙니다. 응급실로 이송됐습니다."
경찰은 그녀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걸 느끼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임지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긴장돼 있었다. 경찰이 그녀의 가방을 증거물 봉투에 넣으며 덧붙인 말이 결정적이었다.
"신고가 빨라서 다행이었습니다."
임지연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물었다.
"누가 신고했어요?"
경찰은 말끝을 흐리며,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최강민을 힐끗 바라봤다. 더는 말할 수 없다는 듯, 경찰은 증거물을 챙겨 자리를 떴다.
최강민은 담배를 끄고, 차가운 기운을 온몸에 두른 채 임지연에게 다가왔다. 순검은색 정장은 금욕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주위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임지연, 그녀 자신조차도.
그는 그녀 앞에 멈춰 서서, 이마에 부어오른 붉은 상처를 훑어본 뒤 냉소적으로 말했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네. 만족해?"
임지연은 그의 말을 듣고 마침내 머릿속에 팽팽히 조여 있던 긴장감이 ‘틱’ 하고 끊어져 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온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 듯했고, 입술을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송유리랑 몸을 섞을 때… 절 보고 있었죠?"
최강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은 곧 인정이었다.
임지연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치마 자락으로 무심히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이게… 제가 당신에게 불복종한 벌인가요? 제가 감히 당신을 건드린 대가를 기억하라는 뜻인가요?"
"그럼, 작은 삼촌은 어떤 결과를 원하셨나요?"
"무릎 꿇고 사과하길 바라셨어요? 작은 삼촌이 그런 걸 좋아하신다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그녀는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90도로 허리를 굽힌 후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웃었다.
"작은 삼촌,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작은 삼촌을 건드리면 안 됐어요."
"정말 죄송해요, 그러니 제발 저 좀 놓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