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자존심에 대한 모욕
"응?"
남도헌이 눈을 들어 눈썹 끝을 살짝 올리며 말하자 걷잡을 수 없는 억압감이 휩쓸어 왔다.
박민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됐어, 니 행복을 위해서라도, 내가 이걸 참는다"
남도헌은 그를 한번 보았다. 깊은 눈빛은 차분하고도 어두웠다.
"가자."
김윤재가 시동을 걸고 차를 몰고 떠났고 박민서는 송은하에게 무엇이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아 몸을 돌려 그녀에게로 가려고 할 때, 그녀가 걸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은하야."
박민서가 다가왔다.
"나 집갈려고 하는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박민서를 바라봤다.
박민서는 짠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 보며 말했다.
"은하야... 네 어머님한테 맞은 심장을 찾는다며 최대한 빨리 알맞는 심장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엄마 생각에 가슴이 조여오는 은하는 감정을 숨기려 애썼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며 가볍게 떨려하며 물었다.
"정말요?"
심장 같은 신체기관은 다른 신체기관과 달리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기다리지 못했다.
"선배, 고마워요."
그녀는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눈시울이 촉촉 해졌다...
"우리 사이에 고마워 라는 말 할 필요는 없잖아"
박민서는 쑥스러웠다. 만약 원장한테 권유빈을 잘 챙겨주라던 남도헌이 한 말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이었다.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그럴 필요 없어요"
송은하는 황급히 거절했다.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거절했다.
박민서는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다.
* * *
그와 헤어진 후 송은하는 택시를 타고 빌라로 돌아갔다.
남도헌이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녀의 기분은 한결 편안해졌다... 오 이모도 그녀가 처음 이사 왔을 때처럼 구속되지 않은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뭔 좋은 일 있어요? 많이 기뻐 보이네요."
고개를 숙여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말했다.
"오 이모, 우리 둘만 사는 게 정말 좋아요"
"..."
오 이모는 말이 없었다.
"그럼, 난 없어도 되는 사람인가?"
이 목소리는...
송은하가 고개를 들어보니 안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멸과 혐오가 섞여 있는 듯했다.
금융 매거진과 TV에서 그를 보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그의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남자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돌아올 수가?"
송은하는 그가 그가 뭘하려는 지 반응을 채 하지 못했다. 이 결혼 싫어하는 거 아니였나?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을텐데...
남도헌은 얼굴이 가라앉고 눈썹이 싸늘해지며 물었다.
"왜? 내가 너한테 허락을 받고 돌아와야 하나?"
송은하는 고개를 숙였다. 맞다. 그녀야말로 그의 영역을 '침범'한 사람이었다.
"사인해."
남도헌은 아예 이혼 합의서를 테이블 위에 던졌다.
송은하는 테이블을 힐끗 쳐다보았고 이에 놀라 지도 않았다. 이혼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지금 당장 이혼할 수가 없고 엄마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남..."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혹시 ......"
"이혼하기 싫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반응에 놀라지 않은 듯 남도헌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만약 그녀가 지금 쿨하게 이혼을 동의했다면 그런 비열한 부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 후회하지 말길 바래."
남도헌은 문 밖으로 나갔다.
그가 오해한 모양인지 송은하는 분명하게 설명하려 했으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따라잡으려는 그녀의 발걸음은 실수로 문턱에 걸려 손에 들고 있던 백이 바닥에 떨어졌다.
안에 있던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쭈그려 앉아 줍느라 바빴던 그녀는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아서 그것을 찾았고 그것이 남도헌의 발에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덮으려고 즉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을 뻗는 순간 약이 밟히고 말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남도헌은 그녀가 긴장하는 모습이 흥미로워 보였는지 허리를 굽혀 발을 떼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캡슐 2포.
한 알은 이미 먹었고,
한 알만 남았다.
그는 그것을 뒤집더니 '머시론'이라고 적혀 있었고 잠시 동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그 아래 줄에는 72시간 응급 피임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도 몰라보면 바보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무표정하게 바닥에 누워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고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신혼 날 밤에 남자를 찾으러 간 거야?"
이 순간, 그는 이 여자한테 역겨움을 느꼈다.
송은하는 손가락을 말아 천천히 움켜쥐고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조롱에도 그녀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하고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아."
그녀의 말에는 가벼운 떨림이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거르는 말을 한 모양새가 역겨웠다. 남도헌은 손에 쥔 물건을 그녀의 얼굴에 던져 눈가에 가느다란 핏자국이 났다.
송은하는 본능적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 그가 약을 던진 이 순간 만큼 얼굴의 통증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모욕으로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허리를 굽혀 약을 집어 힘껏 움켜쥐었다. 깨진 플라스틱 판이 손 안에서 형태를 바꾸며 손바닥을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손바닥을 쥐어뜯었다.
"남자를 좋아한다고? 내가 네 뜻대로 해줄게."
말을 마치고 그렇게 남도헌은 떠났다.
그러나 그저 하룻 밤이 불과하여 그녀는 그의 말의 뜻을 몸소 체험했다.
아침에 그녀가 출근하려고 할때, 별장에 김윤재가 나타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