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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밀실 담합

박민서는 남도헌과 함께 차를 타고 송은하를 찾으러 왔다.

권유빈이 다가오는 것을 본 그는 먼저 차 문을 밀고 내렸다.

"나 먼저 내릴게."

차에서 내리고 남도헌과 마주 앉은 권유빈은 남도헌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불안했다.

평소 송은하를 무척이나 맘에 들어하던 원장이 갑자기 우리병원 인턴 자리를 준 것도 모두 남도헌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남자를 잡기로 결심했다.

이런 좋은 기회는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 신이 내려주신 기회라고 그녀는 꼭 잡아야만 한다.

"생각해 봤는데요..."

그녀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남도헌은 그녀가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움직였지만 사실 그녀의 대답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전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에게 결혼을 약속할 수 있을 정도면 상당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결혼을 요구하거나 다른 부탁을 했다면 탐욕스러운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녀는 먼저 한 발 물러서기로 하였다.

"당신과 그냥 평범한 친구로 남으면 돼요."

남도헌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생각, 잘한거야?"

권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은 그녀의 순간적인 충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강요하지 않았다.

"결정을 존중하지."

* * *

병원 내부.

송은하는 퇴근 후 휴게실에서 의학 서적을 읽고 있었다. 남도헌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고, 집은 더더욱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고 공부할 수도 있고,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자 문이 밀려 열렸고 박민서는 그녀를 보고 물었다.

"왜 여기 숨어 있어?"

"숨은 거 아니에요."

송은하는 책을 덮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선배, 여긴 웬일로 왔어요?"

"부탁을 들어줬잖아. 감사해야 할거 아니야."

그는 웃으며 말했다.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왜? 기분 안 좋아?"

박민서는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송은하는 그의 시선을 훑어보며 말했다.

"아니요."

박민서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설마, 나도 못 믿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그녀는 다급하게 해명한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더 이상 선배랑 동료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박민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뭔가 화가 나 있는 듯 했다..

"원장님이 마음을 바꾼 거야? 그 자리 누구한테 넘겨 준대? 내가 찾아가 물어봐야 겠어."

송은하는 그를 뒤로 끌어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너 꿈이 훌륭한 군의관이 되는 거 아니었나? 우리병원 조차 못 가는데 꿈 얘기가 뭔 소용이야?"

박민서는 그녀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일한 다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송은하는 눈을 낮추었다.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녀를 난처하게 한 것이다. 게다가 박민서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가 않았다.

"알았어..."

박민서는 입술을 오물었다.

송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저녁 살게요."

"다음에 먹자."

박민서는 마치 거울과도 같이 또렷하게 다 알아버린 것만 같았다. 분명 정해진 건 그년데고 교체당한 것도 그년데. 이건 분명 누군가의 밀실 담합일 거야. 송은하는 그저 조용하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그런거니. 그리고 그녀는 말이 적고 그럴 힘도 없으니.

그러나 그는 도저히 이 화를 고이 삼킬 수가 없었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까먹었네. 먼저 갈게."

그는 이렇게 말한 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분노에 찬 듯 하였다.

박민서는 곧장 원장실로 쳐들어 갔다. 박민서가 그렇게 당당하게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세력 있는 집안 출신이기도 했다.

원장은 전화를 받다가 박민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상대방에게 이만 하자 말하고는 전화를 끊고 웃으며 일어섰다.

"박 선생이 웬일이야?"

"우리병원 후보가 송은하로 정해져 있지 않았나요? 왜 또 바꾸셨어요? 누가 무슨 특혜를 줬나요? 이렇게 밀실 담합하면서. 오늘 잘 해명하지 못하면 제가 어떻게 한대도 탓하지 말아요."

원장도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었다.

"이번 일, 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네가 말해봐봐, 남도헌이 권 선생을 챙겨주라고 지시했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그는 난처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박민서는 남도헌이라는 말을 듣자 눈썹에 주름이 잡히며 경련을 일으켰다.

"나한테 화내지 말고 가서 남도헌을 찾아봐."

원장은 잔꾀를 썼다. 어차피 모두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이 일을 차라리 서로에게 떠넘겼다.

화가 치밀어 오른 박민서는 돌아서더니 남도헌을 찾으러 가려고 하였다. 때마침 병원 정문을 나서자 권유빈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큰 걸음을 내 딛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권유빈은 미소를 지으며 그한테 인사했다.

"선배님."

박민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차 안을 한번 쳐다보고는 면목을 위해 “응.” 하고 말했다.

권유빈이 떠난 후, 박민서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송은하가 억울한 느낌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필 밀실 담합을 한 사람도 자신과 사이가 좋은데...

남도헌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여자에게 마음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권유빈한테 특별하게 대하는 걸 보니 심상치 않은 관계인 듯 했다.

그렇다고 친구를 욕할 수 있을까?

남도헌이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해가 안 되는데, 대체 권유빈이 뭐가 좋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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