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상처를 입은 남자
전화가 온 사람은 그녀의 선배였고 같은 의학대학을 졸업했다. 자신보다 그저 2학년 높았으며 해외연수를 한 적도 있었다. 현재 그는 국내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그녀를 잘 챙겨주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주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에요? 말해 봐요."
그녀는 매우 쿨하게 대답했다.
"나한테 지금 환자가 있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가겠으니까 대신 좀 가줘."
송은하는 시간을 한번 보았다. 오늘은 출진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면 오후에 수술 두 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전에는 시간이 넉넉한 편이였다.
"네"
"주소는 장미원 A동 306호, 김윤재 님을 찾는다고 말하면 경비원이 알려줄 거야."
"알았어요."
"이 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마. 그냥 치료만 하고 나오면 돼."
그는 이렇게 일러줬다.
"알겠어요."
* * *
송은하는 그렇게 대답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 후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고급 주택가였고, 보안시설과 프라이버시도 최고의 수준이었다.
송은하는 경비원한테 김윤재 님을 찾는다고 말했고 경비원은 확인 전화를 하고 동의를 거친한 후에야 그녀를 들여보냈다.
그녀는 306호를 찾아 초인종을 눌렀다.
곧 문이 열렸다.
김윤재는 박민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온 것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누구...?"
송은하는 박민서의 말에서 이번 환자분이 사생활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 느껴져 이로 인해 곤경에 처할까 봐 마스크를 썼다.
"박 선생님께서 여기 오라고 했어요."
김윤재는 그녀가 들고 있던 의료 키트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죠?"
"네, 박 선생님께서 다 설명해 주셨어요, 헛소리는 안 할게요".
김윤재는 박민서가 아무나 부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녀를 들여보냈다.
그는 송은하를 이끌고 넓은 거실을 지하 1층으로 올라더니 침실 중 한 곳으로 향했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송은하는 말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치료를 해요?"
남도헌은 여자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리고는 옆으로 던져둔 재킷을 얼굴 위로 끌어당기며 차갑게 말했다.
"불켜."
김윤재는 불을 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방이 환해졌다.
송은하는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더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의 흰 셔츠에는 피가 묻어있고 이미 말랐으며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다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치료하러 왔을 뿐이다.
상대는 분명 자신의 신분이 다른사람한테 알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의료 키트를 테이블 위에 놓은 후 열어서 의료용 가위를 꺼내 상처 부위의 천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상처를 확인하였다. 상처는 이미 거즈로 간단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거즈를 자르자 우측 갈비뼈 복부에는 두 개의 칼상처가 있었다.
그녀는 가위를 놓고 능숙하게 상처를 소독했다.
차분하고도 침착했다.
"마취제 알레르기가 있나요?"
그녀는 물었다.
그녀가 한번 검사해본 결과 상처는 내부를 다치게 할 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봉합이 필요했다.
그럴려면 극부마취가 필요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젯밤의 패닉 상태와는 전혀 다른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남도헌은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는 어떤 것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없어요.."
깔끔하게 잘 처리하는 그녀의 기술에 남도헌은 확신을 가졌다.
송은하는 약을 섞은 뒤 봉합해야 할 부위 주변에 마취제를 주입했다.
2분 정도 지나 약효가 나타나자 봉합 작업을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됬다.
아주 빠르다고 말할 수 있다.
손에 피가 묻었으니 화장실을 가겠다고 말했다.
"아래층에 있어요, 먼저 가세요."
김윤재가 말했다.
그녀는 걸어 나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것을 확인한 김윤재는 문을 닫고 다가왔다.
"확인 마쳤습니다. 어젯밤 사람들은 윤영란이 보낸겁니다. 아마도 회장님이 회사에 심어놓은 윤영란의 감시망들을 모두 제거하셔서... 회장님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매달린 것 같습니다."
김윤재가 말했다.
남도헌은 일어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고 옷은 흐트러졌지만 연약해야 할 병든 몸은 의외로 근엄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는 눈을 들어 깊은 늪처럼 검게 흐르는 눈동자를 보며 물었다.
"혹시 집에 있는 그 여자도 이 사건과 관련 있는 건가?"
김윤재는 잠시 멈칫 하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네, 그 여자와 송주혁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도 많이 수상해요. 송주혁이 남도원이 아닌 회장님을 지목해서 이 인연을 매듭지었으니 그 여자가 꼼수를 부린 게 분명해요."
"이렇게 큰 선물을 연달아 주셨는데, 내가 보답을 안 하면 예의를 모르는 것 같아 보이네.."
그가 일보러 출국하였을 뿐인데 누군가 그가 없는 틈을 타 이토록 큰 문제를 일으켰다.
무관심으로 눈썹을 높이 치켜뜬 그는 눈 밑 깊숙 숨겨져 있던 당당한 냉기를 감추지 못했다.
"남도원이 한성로에서 '스타'라는 유흥업소를 운영한다고 들었어."
김윤재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회사에서 더 이상 그가 있을 자리가 없고 그 유흥업소에 수입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그걸 뽑아버리면 앞으로 살기가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가봐."
남도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송은하가 윗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김윤재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김윤재는 박민서가 일러줬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명령이자 경고로 그녀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오늘 일, 누구한테 말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끔찍하게 죽을 거야."
남도헌의 부상 문제가 윤영란과 남도원 모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분명 이 상황을 이용할 것이다.
"안 해요."
송은하는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그냥 의료 키트만 챙겨서 갈게요"
그녀가 윗층으로 올라가 보니 피 묻은 셔츠는 벗겨져 있었다. 등 전체가 가늘고 넓으며 허리는 군살 하나없이 잘록했고 둔부의 탄탄한 라인과 연결되어 균형이 잘 잡혀 있고 곧게 뻗은 희미하지만 힘이 느껴진 문과 등져 앉은 남자가 보였다.
"아직도 안 갔어요?"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나른하고 조롱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송은하는 바쁘게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