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새엄마 골라 줘
"장시원,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강용준이 긴 팔로 임지수의 허리를 붙잡으며, 매섭게 눈빛을 좁혀 고통에 질린 장시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장시원은 싸늘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며 다친 팔을 움켜쥐었다. 땀방울 하나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건드린 적 없어. 먼저 잡아당긴 건 지수야."
목소리는 싸늘하고 차가웠다.
"잡아당겼다고, 그래서 민 거야?"
강용준의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억눌러 목소리를 낮췄다.
"지수는 네 동생이야. 한 가족인데 왜 네가 늘 지수를 겨냥하니?"
"동생?"
장시원은 비웃듯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같은 엄마도 아니고 성도 다른데 무슨 동생이야?"
원래 그녀도 임 씨였다.
열여덟 살 무렵, 아버지가 경성시에 있던 어머니의 옛집을 팔아 그룹 자금으로 쓰겠다고 고집했다. 그 일로 크게 다투었고, 아버지는 임지수와 그 어머니 앞에서 뺨까지 때렸다. 그날 이후 장시원은 다시는 아버지 성을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어머니 성으로 살기로 했다.
강용준은 미간을 깊이 좁히고 아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이유를 알 수 없이 날카로워 보였다. 닿기만 하면 터질 폭탄 같았기 때문이다.
"용준 오빠, 내가 넘어진 거야. 언니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임지수는 남자의 품에 몸을 기대며 눈가에 억울한 기색을 띠었다.
"언니를 찾아온 건 직접 사과하려고 그랬어. 어쨌든 희준이가 발작한 건 내 탓이잖아. 마음이 불편했어… 언니가 화내는 건 당연하지."
"장시원, 지수한테 사과해."
강용준의 목소리는 차갑게 낮아졌다. 눈빛엔 압박이 서렸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었다.
결혼 5년 동안 장시원이 그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언제나 같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내가 가서 어머니께 사과드릴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러나 그녀가 잘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장시원은 남자를 차갑게 응시하다가 눈가가 붉어지며 비웃듯 말했다.
"사과? 좋아. 그럼 먼저 무릎 꿇고 손 들어."
임지수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장시원, 도가 지나쳐!"
"이게 겨우 시작인데 강 대표님 벌써 못 버티겠어요?"
장시원은 겨울 속에 피어난 능소화처럼 서늘하게 웃었다.
"서두르지 마. 더 심한 것도 있어."
그녀는 등을 돌려 성큼 걸어 나갔다. 고개는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강용준은 단단한 기운을 뿜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방금 본 적 없는 웃음이 눈에 남아, 그의 시선은 더 깊어졌다.
그 시선을 본 임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다정하게 말했다.
"용준 오빠, 얼른 언니 쫓아가. 난 괜찮아…"
강용준은 속눈썹을 떨구고 임지수의 허리를 부축해 일으켰다.
"신경 쓰지 마. 내가 데려다줄게."
......
오후, 강희준의 상태가 안정되자 운전기사와 경호원이 파정원으로 데려갔다.
비록 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지만, 강용준은 몸이 좋지 않은 임지수를 직접 집에 데려다준 뒤에야 본사로 향했다. 늘 시간을 엄격히 지키던 그가 무려 한 시간이나 늦자, 십수 명의 임원들이 마냥 기다려야 했다.
저녁 무렵, 강용준은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팔에 걸친 재킷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그러나 이번엔 재킷이 받쳐지지 않고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강용준은 그 재킷을 내려다보며 미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난 5년 동안, 그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장시원은 앞치마를 두르고 달려와 웃으며 재킷을 받아 주고 슬리퍼를 내주었다. 가사도우미보다 더 세심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아내였고, 마음도 온통 그에게 있었기에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려 했다.
답답한 기운이 가슴을 막았다.
"남 집사!"
"도련님, 오셨어요!"
남 집사가 급히 달려 나왔다.
"저녁 다 차려 놨습니다. 작은 도련님은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강용준은 휑한 거실을 둘러보았다.
"장시원은? 아직 안 왔어?"
"사모님은 아직이세요. 저녁은 가사도우미가 준비했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강용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손끝으로 넥타이 매듭을 눌러 잡으며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긴 식탁엔 부자만 마주 앉았다. 말없이 수저를 들었지만, 화려한 음식은 그저 겉모양뿐이었다. 집에서 나는 따뜻한 기운이 없으니 음식이 밍밍하게 느껴졌다.
"아빠, 저 다 먹었어요."
강희준이 입술을 내밀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강용준이 흘깃 보았다.
"이렇게 조금 먹고 끝이야? 너 고양이야?"
"아니에요, 아빠. 밥이 엄마가 해 준 것만큼 맛이 없어요. 그래서 안 넘어가요…"
강희준은 속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빠, 나 엄마가 끓여 준 삼계탕 먹고 싶어요. 탕수육이랑 두부전골도…"
"그만해. 다 흔한 집밥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해."
강용준은 목이 꿀꺽 내려갔다.
"너는 강씨 그룹의 후계자야. 겨우 몇 가지 반찬에 흔들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강희준은 울상을 지으며 밥을 억지로 더 떴다.
강용준은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강희준, 네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어디 있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봐라."
"싫어요."
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 엄마가 너무했어요. 지수 이모 울렸잖아요!
아직 이모한테 사과도 안 했는데 제가 왜 먼저 연락해요.
저 이모 편이에요…"
강용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꾸짖으려는 순간, 남 집사가 놀라며 말했다.
"도련님, 생각났어요. 오늘 사모님 생신이에요!"
부자는 동시에 굳어 서로 눈을 크게 마주쳤다.
"혹시 도련님이 사모님 생일을 잊으셔서 화가 나신 거 아닐까요. 그래서 집에 안 들어오시는 것 같아요."
강용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제야 깨달았다.
......
두 시간 뒤, 장시원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별장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옷장을 열고 옷가지를 가방에 마구 넣었다.
"뭐 하는 거야?"
강용준이 방에 들어섰다.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장시원은 등을 돌린 채 손을 바삐 움직였다.
"짐 싸. 나가서 살 거야."
"나가서? 그럼 희준이는 어쩌고?"
강용준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아들 그렇게 좋아했잖아. 하루만 못 봐도 못 견딘다더니 지금은 집을 나가겠다고? 그럴 수 있겠어?"
장시원은 손을 멈추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그래. 할 수 있어."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가 아니어도 지수 이모가 있잖아. 게다가 희준이는 이제 날 필요로 하지 않아."
강용준은 성큼 다가서 그녀 곁에 섰다. 얼음처럼 서늘했다.
"장시원,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봐. 너는 친엄마야. 그런데 그렇게 쉽게 버리겠어?"
"네 눈에 내가 그렇게 하찮고, 엄마 자격도 없다면 더는 같이 살 이유 없지. 강희준한테 새엄마 골라 줘. 그 애가 좋아하는 여자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용준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놔…"
장시원은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뺐다. 그러나 남녀의 힘 차이는 분명했다. 기력이 약했던 탓에 금세 땀에 젖었다.
강용준은 그녀에게 언제나 거칠었다. 부드럽지 않았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는 더 그랬다. 결혼 초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고, 여름에도 긴 옷으로 흔적을 가려야 했다. 가사도우미들 사이에서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장시원은 가끔 생각했다.
강용준이 임지수에게도 그럴까?
아니었다.
임지수는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즐겨 입었고 짧은 치마도 좋아했다. 그녀의 피부는 늘 하얗고 매끈했다.
그에게 임지수는 한없이 다정한 존재였다.
오랫동안 사랑해 온 여자였으니, 어떻게 상처를 낼 수 있겠는가.
그때, 장시원의 손바닥에 묵직한 것이 놓였다.
강용준이 작은 검은 벨벳 상자를 쥐여 주었다. 냉정한 눈매엔 타고난 오만이 서려 있었다.
"오늘 네 생일이지? 생일 축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