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네가 애 엄마가 맞아?
오늘 임지수는 순백의 무릎 길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단정한 자태가 아침 안개 속에서 막 피어난 백합처럼 맑아 보였다.
"지수 이모!"
강희준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가정부들은 그 모습을 보고 서로 눈을 맞췄다.
임지수, 참 대단했다.
강 대표님이 파정원 출입을 허락한 것도 놀라운데, 까다로운 아이까지 이렇게 따르는 걸 보면 꼭 모자지간 같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강희준은 평소 엄마에게는 무심했다.
임지수는 희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손목에는 희준이 선물한 크리스털 팔찌가 반짝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용준을 향해 미소 지었다.
"오빠, 언니 보러 왔어. 언니 집에 있어?"
강용준의 눈매가 가라앉았다.
"어젯밤, 네 언니 친정에 안 갔어?"
"아니. 왜 그래, 언니가 어젯밤 집에 안 들어왔어?"
임지수는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오빠, 언니랑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싸운 거야?"
강용준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지가 잘못했어."
임지수는 가볍게 웃었다.
"언니 성격이 고집스럽긴 하지만 부부싸움은 금방 풀리잖아. 오빠가 먼저 사과하면 언니 바로 돌아올 거야."
강용준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렸다.
"내가 시원이한테 사과하라고? 그럴 자격이 있어?"
"맞아요! 엄마가 먼저 잘못했잖아요. 괜히 집에 안 들어오고, 아빠랑 저까지 모른 척하고! 사과는 엄마가 해야죠!"
강희준이 볼을 불룩 내밀며 거들었다.
"희준아, 학교 갈 시간이야."
강용준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아..."
강희준은 여전히 임지수에게 매달렸다.
"이모, 오늘 학교 좀 데려다 주세요. 이모 너무 보고 싶어요.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어요!"
임지수는 웃으며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희준아, 우리 며칠 동안 계속 같이 있었잖아. 어제도 함께 있었고."
"그래도 난 매일 이모랑 같이 있고 싶어요. 이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순간, 주위가 얼어붙었다.
다행히 장시원이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희준아, 그런 말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임지수는 긴 속눈썹을 들어 오빠를 수줍게 바라보았다.
강용준은 태연했다. 아이의 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수야, 네가 희준이 학교 좀 데려다 줘."
임지수는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응."
……
장시원이 눈을 뜬 건 아홉 시였다.
강씨 집안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방해받지 않고 푹 잔 아침이었다.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남편의 커피를 끓이고 옷차림을 챙겼다. 아들을 씻기고 아침을 먹인 뒤 직접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서둘러 출근하곤 했다.
그 때문에 지각이 잦았고, 공개적으로 총괄에게 수없이 혼났다. 처음엔 수치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런 말도 흘려듣고 묵묵히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
사실 강용준이 한마디만 해 줬더라면, 그룹 안에서 장시원을 무시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능력대로'만 강조했다.
그래서 한서진 말고는 아무도 장시원이 강 대표님의 아내라는 걸 몰랐다.
그녀는 처음엔 그게 바른 태도라 믿었다.
하지만 강용준이 임지수와 함께 경매장과 파티를 다니고, 자신이 오래 꿈꾸던 AI 스마트 정상회의까지 그녀와 함께했으며, 며칠 전 음악회까지 동행하는 걸 보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은 집안일만 떠맡는 값싼 존재였고, 임지수만이 그가 규칙을 깨면서까지 곁에 두려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세수를 마치고 식탁에 앉았지만, 왠지 가슴이 불안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희준의 담임이었다.
장시원은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 선생님."
"희준이 어머니, 희준이가 천식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학교에서 이미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옮기고 있어요. 어머님도 빨리 와 주세요!"
장시원은 숟가락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
"희준아!"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병실로 뛰어든 장시원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가슴을 세차게 찔렀다.
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기대 앉은 강희준을, 울음범벅이 된 임지수가 끌어안고 있었다.
옆에는 강용준이 깊은 눈빛으로 서 있었다.
"이모, 울지 마세요... 이모가 저 걱정하는 거 알아요."
숨이 아직 거칠었지만 강희준은 오히려 임지수를 달랬다.
"보세요, 저 멀쩡하잖아요..."
임지수는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저었다.
"희준아... 나 정말 심장 멎는 줄 알았어.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나도 못 살았을 거야!"
강희준은 작은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장시원은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갓 유산을 겪은 데다 병원으로 달려오다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에서는 아직 피가 배어 나왔다.
아들이 아무리 냉정하게 굴어도 분명 자신의 핏줄이었다. 그런데 지금 강희준의 눈빛은 낯설게 차가웠다.
"시원아, 네가 엄마가 맞아?"
강용준이 성큼 다가오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장시원은 남편의 차가운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내가 왜?"
"왜라니? 그 말이 나오냐!"
강용준이 심판하듯 몰아붙였다.
"네 집안, 네 일 다 엉망인 거 알아. 그래도 난 뭐라 한 적 없었어. 그런데 왜 아이 돌보는 기본도 못 해? 괜히 의심만 하고 집을 비워? 넌 희준이를 사랑하기나 해? 넌 나를 완전히 실망시켰어!"
임지수의 눈빛이 차갑게 흔들렸다. 그녀는 부부의 대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장시원은 단단히 굳은 목소리로 맞섰다.
"5년 동안 난 집에만 매달렸어. 친구도 모임도 없이. 야근할 때 말고는 한 번도 늦은 적 없었어. 그런데 내가 어젯밤 집에 안 들어왔다고 어쩌라고? 내가 범죄자야? 매일 출석해야 돼?"
강희준은 눈을 크게 떴다. 순하던 엄마가 이렇게 맞서는 건 처음이었다.
임지수도 순간 놀란 듯 굳어 있었다.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거워졌다.
강용준의 얼굴선이 굳게 당겨졌다. 눈가가 붉어졌다가 곧 비웃음이 스쳤다.
무덤덤한 줄만 알았는데, 이제 와서 고집을 세우다니.
"희준이가 왜 갑자기 천식이 도졌어? 뭘 잘못 먹은 거야?"
장시원은 더는 싸울 기운이 없어 화제를 돌렸다.
강용준은 부하를 꾸짖듯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엄마잖아. 네가 못 챙긴 거야."
장시원은 황당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혼자 애 낳고 혼자 키워? 아빠는 뭐 하는데? 희준이 당신 아들 아니야?"
강용준은 순간 말을 잃었다.
"어디 법에 애는 엄마만 돌보라고 돼 있어? 내가 하면 당연한 거고, 마땅하다는 거야?"
강용준의 눈빛이 눈보라처럼 차가워졌다.
"장시원."
바로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