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엄마 게으른 거예요?
강용준과 아들 강희준은 임지수의 생일을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챙겨 주었다.
밤이 깊어 잠들 시간이 되었는데도, 장시원은 하루 종일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장시원은 남편을 위해 숙면에 좋은 차를 직접 끓이고, 목욕물은 40도로 맞추고, 강용준이 좋아하는 흑단 향을 피웠다. 또 강희준의 양치와 세수를 챙기고, 따뜻한 우유를 먹인 뒤 다리 마사지를 해 주곤 했다. 그래야 키가 클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장시원이 없었다. 남 집사가 대신하느라 집 안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녔다.
"남 집사, 이게 목욕물이야? 아니면 샤브샤브 하려고 끓인 물이야?"
욕실 앞에 선 강용준은 목욕 가운 차림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남 집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허둥댔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지금 바로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남 집사님! 우유가 차가워서 못 먹겠어요!"
잠옷 차림의 강희준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투덜거렸다. 아버지를 빼닮은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 배어 있었다.
"엄마는 매일 따뜻한 우유를 주셨단 말이에요!"
남 집사는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바로 데워 줄게요."
장시원은 늘 온도계를 사용해 정확히 맞췄다. 입에 닿으면 언제나 알맞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하루에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장시원은 그만큼 정성을 들였던 것이다.
강용준은 고개를 저으며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숙면차를 한 모금 마셨으나 곧 미간을 찌푸리며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남 집사, 이게 뭐야? 너무 싱거워."
남 집사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도련님이 평소에 드시는 숙면차는, 아침 일찍부터 사모님께서 직접 약재 스무 가지 넘게 달여 내신 겁니다. 불 조절부터 재료까지 까다롭고, 그 비방은 사모님만 알고 계십니다. 제가 전화를 여러 번 드렸는데 받질 않으셔서... 남은 걸 물에 타서 다시 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시원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강용준의 눈매에 불쾌한 기색이 번졌다.
강희준은 삐죽거리며 불만을 터뜨렸다.
"아빠, 엄마가 오늘은 왜 집에 안 와요? 엄마 없으니까 아무도 안 해 주잖아요!"
강용준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걸기도 전에 비서 한서진의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강 대표님, 차세대 에너지 연구실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초기 추산 손실은 약 10억 원입니다."
강용준의 표정이 단단히 굳었다.
"새로 개발한 칩은 괜찮아?"
"네, 무사합니다. 직원 한 명이 제때 챙겨 나왔고,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에 갔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고 이미 퇴원했습니다."
강용준은 옷자락을 툭 털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됐어."
"그 직원이 누구인지 확인해 드릴까요?"
"필요 없어. 칩만 무사하면 됐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강용준이 낮게 불렀다.
"한 비서."
"네, 말씀하세요."
강용준은 장시원의 행방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사흘 전 불편했던 통화를 떠올리자 말이 막혔다. 아내가 늘 자신을 의심하고 질투하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떳떳하다고 믿었고, 5년 동안 수도 없이 설명했지만 장시원은 여전히 임지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용준은 짙은 피로가 묻어난 얼굴로 차갑게 지시했다.
"화재 후속은 깔끔하게 처리해. 그룹에 불똥이 튀면 안 돼."
장시원 문제는 오늘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아마 친정에 갔을 거라 생각했다. 내일 아침이면, 언제나처럼 고개 숙이고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강희준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빠, 엄마는 도대체 언제 와요? 왜 이렇게 해요? 엄마가 잘못했으니까 혼내야 돼요!"
강용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강희준, 말투가 뭐야? 그렇게 버릇없게 말하지 마."
강희준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엄마 앞에서는 제멋대로 굴던 작은 폭군이, 아버지 앞에서는 작아진 병아리처럼 조용해졌다.
그때 강희준의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화면에는 '가장 사랑하는 지수 이모'라는 이름이 떴다.
"아빠, 저 방에 들어갈게요. 지수 이모 전화 왔어요! 요즘 매일 밤 이모가 동화책 읽어 주세요!"
강용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너무 늦게 자지는 마."
강희준은 기쁜 얼굴로 방으로 달려갔다.
……
다른 한편, 취월원.
이곳은 장시원이 3년 전 강씨 집안 몰래 사 둔 집이었다. 조용하고 아늑해 디자인과 연구에 몰두하기 좋은 곳이었다.
장시원은 욕실에서 몸을 씻고 방으로 돌아와 천천히 침대에 앉았다.
아직 스물여섯이었지만, 유산을 겪었고 5년 전 강희준을 낳으면서 약해진 몸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장시원은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화면은 텅 비어 있었다. 이 늦은 시각, 남편도 아들도 단 한 통의 전화를 하지 않았다. 왜 돌아오지 않는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장시원은 입술을 비틀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젠 중요하지 않았다. 장시원이 강씨 집안에 시집올 때, 시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집안은 어수선했다. 결혼식은 두 집안이 모여 간단히 식사하는 수준으로 끝났고, 웨딩사진도 대충 찍고 말았다.
이제 장시원은 이 차갑고 공허한 결혼을 조용히 끝내고 싶었다. 그것이 서로에게도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메신저에는 이혼 협의서 초안이 도착해 있었다.
함께 도착한 메시지 한 줄.
[자정이네, 아가씨. 생일 축하해!]
장시원의 눈가가 붉어지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
[결혼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아. 이별이 끝도 아니야. 강용준은 아가씨 그릇에 못 미쳐. 걸어 나와. 아가씨는 더 큰 세상에서 살아야 해.]
장시원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물이 차올라 글자가 번져 보였다.
*
다음 날 아침.
장시원이 없는 아침은 엉망이었다. 강희준은 달걀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며 투정을 부렸고, 강용준은 커피 맛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빠, 엄마는 언제 집에 와요? 엄마 뭐 하는 거예요!"
가정부가 신발을 신겨 주자 강희준은 여전히 불평을 쏟아냈다.
강용준은 미간을 좁혔다.
"그만해. 학교 지각하겠다."
강희준은 중얼거렸다.
"엄마는 맨날 학교 데려다주셨는데... 오늘은 왜 안 오세요? 게으른 거예요?"
강용준은 입술을 달싹였다. 오늘이 무슨 날 같았지만, 끝내 기억해 내지 못했다.
"용준 오빠!"
갑작스러운 애교 섞인 부름이 강용준의 생각을 끊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