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크루아 볼룸의 샹들리에가 별빛을 가둔 듯 눈부시게 타올랐다. 크리스털 잔과 실크 드레스 위로 빛이 쏟아졌고, 오늘 밤은 황정미가 주최한 자선 갈라, 체면이 진실보다 중요하고, 미소는 언제든 단검이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새빨간 드레스를 입었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붉음은 힘이었고, 경고였고, 필요하다면 피의 색이기도 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사람들의 대화가 잠시 멈췄고,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몇 주 동안 서유정만 떠들던 속삭임이, 드디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우현석은 굳어섰고, 서유정의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황정미의 미소는 단단히 굳어버렸다.
좋아.
"이예나."
우현석이 낮은 목소리로 다가왔다.
"오늘… 과하네."
"칭찬으로 들을게."
나는 부드럽게 흘려버리고 그를 지나, 기부자들 쪽으로 곧장 걸어갔다.
내 웃음은 맑았고, 내 자세는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너졌다고 여겼던 아내가 누구보다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모두가 보도록.
밤이 중반쯤 흘러갔을 때, 서유정이 치밀하게 계산한 순간을 잡았다.
볼룸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나가 배에 손을 얹고, 눈에 인위적인 순수함까지 담아 올렸다.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홀리도록 설계된 듯 울려퍼졌다.
"현석 씨 가족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환영받다니… 그리고 저와 현석 씨는… 쌍둥이를 기다리고 있어요."
숨이 새어 나왔고, 박수가 일었고, 카메라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졌다.
황정미는 서유정의 손을 꼭 잡으며 다이아몬드를 번쩍였다.
"드디어, 이 집안에 걸맞은 후계자가 나오는구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 꽂혔다.
내 반응을 기다리며. 금이 가길, 무너지길 바라며.
나는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
"참 기쁘네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훔친 실크 위에서 잉태된 아이들은 늘 기억에 남으니까요."
볼룸이 얼어붙었다.
서유정의 볼이 순식간에 붉어졌고, 황정미는 진주 목걸이를 쥔 손이 굳었다.
우현석은 이를 꽉 깨물며, 눈 뒤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나는 차분히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그들의 굴욕을 조용히 음미했다.
좋아. 질식할 만큼 충분히 느끼도록 해야지.
밤이 깊어 갈 무렵, 나는 조용히 2층 황정미의 서재로 향했다.
두꺼운 카펫이 발소리를 삼켰고, 문을 닫자 은밀한 정적만이 방 안을 채웠다.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부동산 증서, 재무제표, 기밀 계약서들, 우씨 제국의 피줄 같은 문서들.
나는 클러치를 열어 USB를 꺼냈다.
서유정의 아버지 서성식의 계약서가 폴더에서 빠져나와 자연스럽게 책상 위로 옮겨졌다.
표면은 구원이었지만, 조항 하나하나가 숨겨진 칼날 같은 독이었다.
발효되는 순간, 모로 가문의 재정은 늪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서유정의 안전망도 함께.
나는 황정미의 문서들을 빠르게 스캔하며 복사했다.
역외 계좌. 숨겨진 신탁. 세대를 이어 감춰온 비밀들.
이제 전부 내 것이다.
그때, 문 밖에서 들려온 발소리에 몸이 굳었다.
나는 USB를 황급히 클러치에 넣고 몸을 돌린 순간 문이 삐걱 열렸다.
우현석이었다.
헐렁하게 풀린 넥타이, 폭풍처럼 어두운 얼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맥박이 빨라졌지만, 미소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펜 찾고 있었어. 방명록에 이름 적으려고."
그의 눈매가 좁아졌다.
완전히 믿지는 않는 눈치였지만 서유정이 복도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잠시 날 의심하던 마음을 거두고 발길을 돌렸다.
문이 닫히자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했다. 너무 가까웠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오케스트라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손님들은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클러치를 매만지며 속삭였다.
"첫 번째 일격, 성공."
오늘 밤이 그들의 무대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