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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였던 나, 이제는 나로 산다

16.0K · 완결
은하견습
12
챕터
338
조회수
9.0
평점

개요

나는 완벽한 아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날, 크루아 타워 펜트하우스에 들어서는 순간 남편 우현석이 다른 여자와 한몸처럼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한순간에 십 년의 사랑이 산산이 부서졌고, 그 자리에 더 어둡고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내 결혼도, 내 존엄도, 내 미래도 빼앗아갔지만… 내가 그 모든 걸 되찾으러 간다는 사실은 모른다.

현대물남편불륜관계사이다능력녀

제1화

나는 완벽한 아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날, 크루아 타워 펜트하우스에 들어서는 순간 남편 우현석이 다른 여자와 한몸처럼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한순간에 십 년의 사랑이 산산이 부서졌고, 그 자리에 더 어둡고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내 결혼도, 내 존엄도, 내 미래도 빼앗아갔지만… 내가 그 모든 걸 되찾으러 간다는 사실은 모른다.

……

엘리베이터가 조용히 울리며 크루아 타워 39층에 도착했다. 유리와 철골로 쌓아 올린 우리 부부의 요새 같은 집. 나는 힐을 또각거리며 내렸고, 남편 우현석을 놀라게 해주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게에서 산 디저트를 들고 있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작은 이벤트를 믿었다. 달콤함으로 관계를 봉합할 수 있다는 그 순진한 환상을.

그런데 펜트하우스가 너무 조용했다.

직원들의 움직임도, 음악 소리도 없고, 숨소리조차 가라앉은 정적뿐이었다.

"현석 씨?"

내 목소리가 넓은 벽면에 메아리처럼 번졌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트레이를 내려두고 구두를 벗어 발끝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때 희미하게 들려온 소리—낮고, 숨을 내쉬는 듯한 여자의 웃음.

그들을 보기 전인데도 머릿속이 빙 돌아갔다.

거실 소파에 몸을 비스듬히 누인 우현석. 단추가 풀린 셔츠, 느슨하게 풀린 넥타이.

그리고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여자. 검은 머리칼이 폭포처럼 흩어지고, 붉은 실크 드레스가 매끈한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채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꽂아 넣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귀 안에서 폭발하듯 울렸다.

주변 공기가 유리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했다.

이름이 즉시 떠올랐다. 서유정.

갤라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여자. 완벽한 미소 뒤로 야심을 숨기고 다니는, 우리 집안과 친분 있는 인물.

그런 여자가 지금 내 집에서, 내 남편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내 손에서 트레이가 미끄러졌고, 접시들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우현석이 고개를 번쩍 들자 내 눈과 그의 눈이 맞부딪혔다.

죄책감도, 당황도 없었다. 오직 '봐버렸구나' 하는 인식만이 담긴 눈.

"이예나."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너, 아직 들어올 시간이 아니었잖아."

서유정이 돌아봤다. 입술은 번져 있었고, 비웃음이 스친 입매가 섬뜩할 만큼 가벼웠다.

"아," 그녀가 드레스를 대수롭지 않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뭐랄까… 난처하네."

난처하다고?

내가 쌓아 올린 삶, 바쳐온 세월이 그 한마디에 무너져내렸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들어왔다.

"차라리 지금 알아서 다행이지."

돌아보니, 그 여자가 서 있었다.

크루아 그룹, 우씨 왕조의 실세, 시어머니 황정미.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갑옷처럼 번뜩였고, 그녀의 시선은 뼛속까지 베어낼 만큼 날카로웠다.

"넌 이 집안을 이끌 사람이 아니었어."

그녀는 무심하고 냉담하게 말을 던졌다.

"서유정은 너처럼 우리 가문에 빈손을 안기는 사람이 아니지. 그 아이는 미래를 줄 거야. 후계자를."

그 말은 단검처럼 꽂혔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품어온 내 상처—불임이라는 비밀이, 이제는 나를 짓밟는 무기가 되어 돌아왔다.

서유정은 우현석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승리감에 젖어 있었다.

황정미는 흐뭇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추를 잠그며, 마치 나는 이미 그의 인생에서 지워진 존재라도 된 듯 굴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산산조각났다.

그들이 알고 있던 이예나—헌신적이고, 끝까지 사랑을 믿었던 아내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일어선 건 훨씬 차갑고, 훨씬 예리하며, 결코 버려지지 않을 여자였다.

우현석에게도, 서유정에게도, 황정미에게도.

나는 부드럽고 완벽한 미소를 그렸다.

"물론이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충분히 이해해요."

황정미가 고개를 기울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놀란 기색이 스쳤다.

그녀는 내 눈물, 분노, 무너짐을 기대했겠지.

하지만 내가 보여준 건 절제된 품위였다.

그리고 그 미소 뒤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들은 내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바로 지금,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자신들에게 가장 거대한 악몽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