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그렇게까지 계산할 필요 없어
“소혜인 씨, 여자들이 결혼하면 결혼식이나 반지를 기대하죠. 미안하지만, 그럴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반지를 원한다면 직접 골라보세요.”
소혜인이 고개를 들자, 고지혁의 깊고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마주했다.
“괜찮아요.”
소혜인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그녀는 이미 낭만을 쫓을 나이를 지났고, 비록 그가 자신의 남편이라 할지라도 빚지는 기분은 싫었다.
“그래도 반지는 필요합니다.”
고지혁은 담담하게 말하며, 갑자기 소혜인의 손목을 잡아 카드를 그녀 손에 쥐여주었다.
살갗이 닿는 순간, 약간 높은 그의 체온이 전해졌고, 소혜인은 잠시 멍해졌다.
“알겠어요.”
어쨌든 그들은 이제 ‘신혼부부’였다.
소혜인은 그의 호의를 무시하고 싶지 않아 카드를 받았다.
“나는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당신을 데려다줄 수 없겠네요.”
고지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괜찮아요.”
소혜인은 처음부터 그가 아내를 아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아, 우리 집 주소 말인데요.”
고지혁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곧 메시지로 보낼 테니, 편할 때 이사 오세요.”
소혜인은 갑자기 긴장하며 말했다.
“그건 천천히 해도 돼요.”
결혼 후 같은 집에 사는 게 당연하지만, 그녀는 아직 한 번도 본격적으로 낯선 남자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다.
그녀의 거부감이 너무 뚜렷했는지, 고지혁은 그녀를 잠시 더 바라봤다.
소혜인은 순간적으로 어색해졌지만, 고지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휠체어의 버튼을 눌러 방향을 돌렸다.
“다른 일이 없으면 난 가보겠습니다.”
소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 자신도 회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가 돈을 갚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고지혁 씨, 잠시만요!”
소혜인은 급히 소리치며 그를 따라갔다.
그녀의 외침에 고지혁은 멈추고 반쯤 몸을 돌려, 헐레벌떡 달려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요. 제가 빌렸던 100만 원입니다.”
소혜인은 그의 앞에 서서 손에 든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그 노란 봉투와 소혜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고지혁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곧 미소를 지었다.
소혜인은 당황했다.
두 번 만나면서 처음으로 본 그의 미소였다.
고지혁은 잘생긴 얼굴이었다. 마치 조각처럼 선이 뚜렷한 이목구비는 언제나 차갑고 딱딱해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 미소로 인해 그의 얼굴 선이 부드러워져, 그녀는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요?”
고지혁은 담담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받지 않겠습니다.”
“갚아야 할 건 갚아야죠.”
소혜인은 단호하게 말하며 봉투를 더 내밀었다.
하지만 고지혁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뛰느라 그런지, 소혜인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흘러내린 잔머리 아래, 이마에 맺힌 맑은 땀이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순간적으로, 고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곧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우리 이제 부부인데, 그렇게까지 계산할 필요 없어요.”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더는 소혜인에게 말을 건넬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휠체어를 돌려 떠나버렸다.
볼이 살짝 붉어진 소혜인은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내렸다.
그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