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민원서류를 준비하다
소혜인은 남에게 빚을 지는 것을 싫어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미리 월급을 당겨 받았고, 점심시간에 월급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전날 받은 남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 끝에,
“여보세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소혜인은 왜인지 모르게 약간 긴장했다.
“저예요.” 소혜인은 말했다.
“어제 식당에서 돈을 빌렸던 사람입니다. 이제 돈을 준비했으니, 계좌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소혜인은 혹시 상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때,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는 계좌이체를 받지 않아요. 현금으로 갚아요.”
소혜인은 놀랐다.
이 시대에 현금만 받는 사람이 있다고?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소혜인은 상대를 거슬리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내일 시간 있나요?”
“오후에는 취재가 있지만 오전에는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구청으로 와요. 저도 거기서 볼 일이 있으니.”
소혜인은 또다시 놀랐다.
구청에서 돈을 갚는다고? 어쩐지 이상한 조합이었다.
그러나 소혜인은 별다른 생각 없이 약속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소혜인은 남자와 민원센터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버스에서 내려 먼 거리에서부터 그 남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는 고고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들은 동정이나 경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외모와 분위기에 매료된 듯, 몇몇 젊은 여성들이 무리 지어 그의 근처로 가서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소혜인은 걸음을 재촉해 그의 앞에 섰다.
“기다리게 하지 않았죠?”
남자의 시선이 천천히 소혜인을 향했다.
소혜인은 오늘 출근이라 간결하고 단정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균형 잡힌 몸매가 은은하게 드러났지만 결코 과하지 않았다.
소혜인은 처음부터 눈에 확 띄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맑고 단정한 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차를 음미하는 듯 은근한 매력을 풍기곤 했다.
“아니요.”
남자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며 담담하게 말했다.
“준비물은 다 챙겼나요?”
소혜인은 당연히 그가 현금을 말하는 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방에서 돈을 꺼내려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럼 들어가서 서류를 발급받죠.”
“서류요?”
소혜인은 동작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
“무슨 서류요?”
남자는 그녀의 당황한 눈빛을 보며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혼인신고서요.”
“뭐라고요?”
소혜인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혼인신고요?”
남자는 잘생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소혜인 씨, 결혼이 급하시죠?”
남자의 확신에 찬 말투에 소혜인은 그가 어제 김호성과의 대화를 들었음을 알 수 있었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마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혜인이 답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어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순한 사업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평온했다.
“그러니 서로 필요한 걸 얻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