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그녀 마음에 생긴 구멍
일주일 동안 허재혁은 매일 늦게 귀가했다.
그가 벗어 세탁바구니에 던진 외투를 임서진은 몰래 꺼내 냄새를 맡았다.
그 위에는 여전히 희미한 병원 소독약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사설 탐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안유라의 정보를 알아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신상은 사흘이면 충분히 조사되지만, 안유라의 기록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춰둔 흔적이 많아 시간이 더 걸렸다고 했다.
임서진은 집 안에서 그 자료를 펼쳐보았다.
평범한 가정, 평범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는 누군가의 후원을 받아 해외 유학을 갔다.
3년 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그대로 해외에 남았다가 이번 달 다시 귀국해 S시에 도착했고, 거주지는 '동화저택'이었다.
동화저택.
그곳은 허재혁이 결혼 전부터 살던 별장이었다.
게다가 허재혁이 U시에 살던 시절 다녔던 초·중학교가 안유라와 같은 학교였다.
즉, 그 둘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소꿉친구였다.
허재혁이 허가로 돌아온 뒤에도 그들은 꾸준히 연락을 이어왔던 것이다.
임서진의 심장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감정이 바닥에 닿는 순간, 숨이 막혔다.
한편, 허씨 그룹 본사.
비서 류경민이 대표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허재혁은 책상 앞에서 기획안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그는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류경민은 시선을 내리며 보고했다.
"대표님, 부인께서 사설 탐정을 통해 안유라 씨를 조사하셨습니다."
"뭐라고?"
허재혁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목소리도 냉기 어린 저음으로 가라앉았다.
"제가 알았을 땐 이미 자료가 부인 손에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막을 틈이 없었습니다."
허재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운전기사 불러. 지금 '가원'으로 간다."
차 안에서 그는 오전에 병원에서 퇴원시켜 동화저택으로 데려다준 안유라를 떠올렸다.
창백한 얼굴, 아직 회복되지 못한 몸.
그녀가 지금 임서진의 감정 폭발을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자신이 임서진을 너무 만만히 본 걸 깨달았다.
항상 순종적이고 조용하던 그녀가, 자신의 경고를 듣고도 직접 사람을 시켜 조사를 했다니.
가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곧장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문을 거칠게 밀치고 들어간 그 순간, 임서진은 침대 곁 카펫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눈은 아직 울음기로 붉었고, 겨우 두어 분쯤 전 눈을 붙였던 참이었다.
문이 쾅 하고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몇 걸음 만에 다가온 허재혁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 떠오른 분노, 그토록 낯설고, 두려운 표정이었다.
임서진이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허재혁은 마치 병아리를 들어올리듯 거칠게 그녀의 팔을 잡아 세차게 끌어올렸다.
허재혁은 이를 악물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임서진, 누가 허락했지? 네가 안유라를 몰래 조사하라고 한 사람이 누구야?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 한마디에 임서진의 온몸의 피가 순간 얼어붙었다.
밖은 섭씨 삼십 도가 넘는 한여름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한겨울의 냉기에 휩싸인 듯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간신히 그를 바라봤다.
눈은 뜨거워서 시야가 흐릿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겨우 말했다.
"재혁 씨… 왜 그래?"
그러나 머릿속은 하얗게 멍해졌다.
그의 분노 어린 질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허재혁의 시선이 침대 위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사설 탐정의 보고서 — 안유라의 신상 자료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놓더니, 자료 한 장을 집어 들고 눈앞에 내밀었다.
"이건 뭐야, 임서진?"
그녀가 손수 알아본 안유라의 정보였다.
그가 이토록 격노한 이유, 그녀가 감히 '그 사람'을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임서진의 뺨을 두 줄의 눈물이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려 했다.
"재혁 씨… 그날 당신이 그 여자를 그렇게 다급하게 챙기길래, 근데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하니까… 그래서…"
"그래서 사람을 시켜 뒤를 캔 거야?"
허재혁의 눈빛이 매섭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물이 오히려 그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그는 손에 든 서류를 구겨서 그대로 그녀에게 던졌다.
종이는 힘없이 날아와 그녀의 가슴에 부딪혔다.
실크 잠옷 너머로는 아무런 통증도 없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했다.
결혼 3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을 상의했고, 언제나 서로를 존중했다.
그런데 오늘, 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화를 냈다.
허재혁의 냉랭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임서진, 도대체 뭘 알고 싶은 건데?"
임서진은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술이 떨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세차게 저을 뿐이었다.
그녀의 두려움이 속삭였다.
'이제 그 어떤 진실도 알고 싶지 않아.'
허재혁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안유라는 내가 U시에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 알던 여자야. 그녀는 내 인생의 유일한 존재야. 네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지."
그의 말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임서진, 안유라는 너처럼 배경이 있는 여자가 아니야. 이 도시에선 의지할 사람도, 기댈 곳도 없어. 오직 나뿐이야. 그러니까 충고 하나 하지. 괜히 이 일을 어른들 귀에 들어가게 만들지 마."
그녀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또렷이 들었다.
"유일한 존재, 네가 건드릴 수 없는 사람. 배경도 없고, 나만 의지하는 여자."
임서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진실을 직접 내뱉은 셈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어리석게도, 그 말을 한 남자를 붙잡으려 했다.
그녀를 위협하고, 다른 여자를 감싸는 그를.
임서진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창백한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혁 씨… 나 알아. 그 여자는 당신의 과거잖아. 나, 더는 문제 삼지 않을게요."
하지만 허재혁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이마를 찌푸리며 냉정하게 내뱉었다.
"지금 한 말, 잊지 마. 너는 그냥 네 자리 지켜. 안유라가 네 자리를 위협할 일은 없어."
그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에게 결혼은 사랑이 아닌, 두 집안의 이익을 위한 계약이었다.
그녀가 지금처럼 순종적으로만 있다면, '허 대표의 아내'라는 자리는 계속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섰다.
그제야 임서진이 황급히 그 손을 다시 붙잡았다.
"재혁 씨, 오늘 저녁엔 집에서 밥 먹을래요? 당신 좋아하는 농어찜 요리 해줄게요."
이때의 임서진은, 그를 향한 사랑이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가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명확한데도, 그녀는 그저 그가 집에 돌아오길 바랐다.
'차라리 안유라를 조사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후회했다.
하지만 허재혁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냉정하게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유라가 방금 퇴원했어. 유산 뒤라서 악몽을 꿔. 며칠은 곁에서 있어야 해. 오늘 밤은 안 돌아올 거다."
임서진은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아이가 그의 아이인지조차 묻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말하고 싶었다. 자신도 임신했다고.
이제라도 그가 조금이라도 돌아봐주길 바랐다.
그가 문 쪽으로 향하자, 임서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재혁 씨, 나… 할 말이 있어요.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