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도율과의 오해
“너 연예계 들어가면서 만능 이미지 만든다고 내 주얼리 디자인을 너거라고 도용했잖아.” 강태리가 생긋 웃었다. “잊었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어.” 그녀는 바로 고개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강태리는 그 뒤를 여유롭게 따라가면서 계속하여 말했다.
“백용현을 봐서라도 너희를 고발할 생각은 없었어. 근데 그 설계도 내가 제시한 판매가격이 2억이었거든? 3일 시간 줄 테니까, 내가 만약 너 아니면 백용현의 구매한다는 계좌이체를 못 받으면, 공개적으로 너한테 빚을 물을 생각이야.”
“강태리, 너 정말!?”
이건 대놓고 강도다!
강루빈은 삽시에 분노에 차서 몸을 홱 돌렸다. 주위로부터 궁금한 눈길들이 쏟아들자 그녀는 애써 침착하려고 했다.
백용현이 그녀한테 그 디자인 스케치는 강태리의 개인 디자인이라고 알려줬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스케치의 서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스케치 문서를 카피해갈때 아예 강태리의 노트북에서 분쇄시켰던 거라 사후에 밝혀지고 그럴 일은 없었다.
강태리는 옆에 있던 샴페인잔을 들어 그녀와 잔을 맞추는 제스처를 하면서 아주 밝고 찬란한 웃음을 지었다.
강루빈이 울음을 터뜨리면서 백용현의 품에 안기고, 또 그 한 가족이 그녀한테 보내오는 혐오 가득 찬 눈빛을 보면서 강태리는 술잔을 들고 옆에 있던 유리문을 열고 나갔다.
둥그런 테라스로 나가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바로 저택의 정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거기엔 빨간 장미를 정원 한가득 심었다.
강태리가 정원에 들어서자 바람이 살살 얼굴에 맞불어 왔고 그녀는 내음을 맡으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서 공우진이 오기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앞에 머지않은 곳의 정자 밑에 어떤 남자와 여자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에메랄드 그린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눈시울이 붉어져서 체구 건장한 남자와 대치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저게 그녀의 새로운 보스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눈썹이 제멋대로 슉- 올라가더니 얼른 장미 숲의 뒤에 몸을 웅크리고 엿듣기 시작했다.
“우진아, 너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한 거지? 나를 엄청 닮았더라.” 여자의 말투는 물처럼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고통스럽게 들렸다. “너 알면서... 내가...”
공우진은 그녀가 잡으려는 손을 밀치면서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눈빛은 깊고 어두웠으며 목소리에는 한기가 돌았다.
“유 사모님, 착각이 좀 심하네.”
“내가 그때 도율이랑 결혼한 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너 누구랑 결혼하는지는 나랑은 무관한 일이야.” 공우진이 몸을 돌려 가려고 하자 옷가랑이 그녀의 가녀린 손에 잡히고 말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눈물이 글썽하다.
“너 언제까지 나를 미워할 거야?”
강태리는 자기 보스가 자꾸만 후퇴를 하는 모습을 보자 참지 못하고 66한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공우진이 몰래 만났으면서 안지도 않고 뽀뽀도 안 해? 저게 저렇게 몸서리치게 거부 할 일이야?”
시스템66은 진지하게 그녀를 위해 분석해 줬다.
“그 당시 공우진 부친께서 파산할 때 도씨 부인이 투자를 하면서 도움을 줬거든요. 도씨 집안에 은혜가 있죠. 그러니 아무리 유설을 사랑한다고 해도 도에 지나치는 일은 안할거예요. 안 그랬으면 숙주님 같은 대역을 찾아서 갈증해소 안 시켜줬죠.”
“쩝. 뭐 지조가 있긴 하네. 불륜같은 거 안 저지르고.” 강태리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뭐하는 거예요?” 촉촉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정수리 쪽으로부터 들려왔다.
깜짝 놀란 그녀는 고개를 휙 들어 올려다 보았다. 은색 빛이 그 사람의 몸에 비쳤고 얼굴은 청초하고 얼굴색은 하얀 자기처럼 하얬다.
“앉아봐요.” 강태리는 얼른 그의 손목을 잡고 밑으로 끌었다. 조금 마르고 키 큰 실루엣이 그녀의 손에 끌려 같이 쭈크리는 신세가 되었다.
남자의 날렵한 턱이 그녀의 매끄러운 어깨에 부딪치자 켁하고 기침이 새어 나왔다.
“쉿!” 강태리는 도리여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조용히 해봐요.”
남자도 순종적이게 고개를 끄덕여서야 그녀가 손을 놓았다.
“여기서 지금 다른 사람 프라이버시를 훔쳐보고 엿듣고 있었어요?” 남자가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한 줄기 기분 좋은 우드향에 약초가 섞인 특별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파고 들었다. 강태리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오똑한 코가 남자의 콧날을 스쳤다. 그러자 얼른 거리를 두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 보스님이 지금 애인이랑 밀회 중이거든요. 난 지금 보초를 서주고 있어요.”
시스템66, “숙주님, 저 분은...”
“닥쳐, 지금 바빠.”
강태리는 속으로 시스템의 입을 막아 버렸고 이윽고 상대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하는게 들렸다.
“그러니까 지금 유 사모님이랑 공씨 그룹 회장님이 밀회를 하고 있다고요?”
“눈이 없어요? 딱 봐도 그렇잖아요.”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정자의 방향을 보았다. 두 사람은 아직도 대화 중이었지만 방금 이 남자가 방해하는 바람에 내용을 자세하게 듣지 못했다.
“숙주님!! 어서 그 입 닥치셔요!” 시스템66이 아우성쳤다. “이게 도율이에요! 유설 명의상의 그 병쟁이 남편이란 말이에요!”
“......”
강태리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억지로 고개를 틀어 머리가 거의 그녀의 목덜미에 닿을 듯한 그 온유한 남자를 보았다. 어쩐지 정갈한 도자기처럼 쉽게 깨지게 생겼다 했네.
“딱 봐도 저 사람 우리 공 회장님 아니네.” 그녀는 얼른 웃음을 만개하면서 슬쩍 눈치 못채게 몸으로 그의 시선을 막으려고 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그래요?” 도율의 눈초리는 반쯤 아래를 향했고, 눈빛에 웃음기가 은근히 배여있었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있는것을 마주친 민망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 공회장님은 다른 임자 있는 사람을 채가고 그런 비겁한 짓은 또 안 하시거든요. 내가 비서라서 잘 알아요.” 강태리는 문뜩 그의 손목을 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요. 내가 부축해 줄테니까 가서 좀 쉬시겠어요?”
“가서 인사 안해요?”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옅은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닿자 간지러운 느낌도 들었다.
“됐어요. 방해만 되고 불편하잖아요.” 강태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도율은 그녀를 몇초동안 보더니 얇은 입술이 살짝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목에 막히면서 가볍게 기침을 하기도 했다. “가요.”
나무와 장미 숲이 가려준 덕분에 그녀는 허약한 청년을 일으켜 긴 복도쪽으로 갈 수가 있었다. 그 정자와는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려고 했다.
“공우진 비서예요? 내 기억에 비서가 김씨 였던것 같은데요.” 도율이 부드럽게 물었다. 그의 이마 앞에는 몇가닥 내려 온 앞머리가 있었는데 그의 새하얀 피부색과 선명한 대비가 되었다.
“김씨 맞아요. 근데 나는 갓 부임한 새로운 비서예요. 성은 강씨이고, 강태리라고 해요.”
강태리는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속에 담긴 웃음은 가셔진적이 없었다.
직접 두 눈으로 자기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는데도 그의 유일한 정서는 강태리를 향한 농담에 담긴것 같았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도련님!” 검은 양복 차림의 집사가 그와 마주치고는 허겁지겁 달려와 부축했다. “왜 혼자 나오셨어요. 작은 사모님이 사람을 데리고 도련님을 찾고 계세요.”
“괜찮아요. 산책 좀 했어요.” 도율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강태리는 눈치 좋게 손을 놓고 옆으로 물러섰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그녀는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얼른 도망가버렸다.
도율은 그렇게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보습을 보면서 말했다.
“저 사람이 요즘 강씨 집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딸 강태리인가요?”
“네. 근데 어떻게 도련님과 같이 있었어요? 저 분 아주 쉽지 않은 여자예요.” 남 아저씨는 그가 허약해 똑바로 서지 못할 가바 두려워 조심스럽게 부추겼다.
도율은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꼭 그런 것 같진 않은데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아주 재밌어요.”
남 아저씨는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럭셔리한 파티장에 돌아온 강태리의 코끝에는 아직도 아까의 약초향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묻고는 화장실로 갔다.
백용현은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 그녀가 떠난 방향으로 걸어갔다.
“66, 도율이 왜 유설이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어? 나 아까 그렇게 말해서 무슨 일 일어나는 거 아니겠지?”
“도율은 그냥 지나가는 남자 조연이라서 저도 사실 관찰을 많이 안했거든요. 근데 무슨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