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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높은 월급, 사대보험은 됐어요

그 존귀한 남자가 그녀한테 말했었다.

“만약 더 이상 못버티겠으면, 나랑 살자.”

엄청 부드러운 말투였다. 너무 부드럽고 다정해서 오늘 통화했던 사람과는 생판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사실 그 말의 상대는 강태리였던게 아니라, 유설이었다.

“평소에 여기에 사람이 살지는 않아요. 공 회장님께서 세프를 안배해 주셨는데 이따가 오실 겁니다. 강 아가씨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면 되세요.”

기사님은 이 말을 남기고 차에 다시 타고 떠났다.

그녀는 이 럭셔리한 별장을 훑어보았다. 거실만 봤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가 모노톤 컬러에 깔끔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원목 색깔 아니면 회색 인테리어였고 확실히 사람 산 흔적이나 온기 같은 게 없이 차갑고 조용했다.

강태리는 정식적인 요청을 받기 전에는 함부로 계단 위층에 올라가 보지 않았고, 그냥소파를 찾아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다.

이 시간을 틈 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기의 부정적인 소식들을 찾아보았다.

현재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트렌드에 떠 있는 소식은 바로 연예계 신예 강루빈이 사랑때문에 모든 걸 제치고 백용현의 가문에 시집 간다는 것이었다.

밑에 연관 소식이 2개 떠있었는데 하나는 강태리가 강루빈을 물에 빠트렸지만 후자가 따지지 않고 대인배라는 핫 키워드였고, 다른 하나는 강태리가 불쌍하게 백용현한테 헤어지지 말아 달라고 매달린다는 핫 키워드였다.

아무거나 클릭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악의 가득 담긴 네티즌들의 댓글이 보였다.

[강태리 너무 토 나와. 진짜 빨리 강씨 집안에서 꺼져 줬으면 좋겠어! 우리 빈이 그만 괴롭혀!]

[강태리 그 가짜 아가씨가 백용현을 물고 늘어지네. 마지막 기회를 잡아 보겠다고 매달리는 거잖아. 결국엔 돈이었어!]

[우리 루빈이 불쌍해서 어떡하냐. 어려서부터 밖에서 떠돌아다녔는데 지금은 또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나쁜 사람한테서 모함까지 당해야 한다니!]

[강태리 그냥 죽어!]

......

강태리의 이미지가 이 정도로 더러워진 것은 핫한 신예 연예인 강루빈과 뗄래야 뗄 수 없었다.

공우진은 그녀의 감옥살이 사건을 해결해 줬지만 그 김에 그녀의 부정 뉴스들까지 해결해 주진 않았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노트북도 없는 상태라 녹음펜의 내용은 이제 다시 업로드 해야 했다.

강태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을 끄고 하품을 하면서 소파에서 잠들었다.

저녁 8시, 마이바흐 한대가 별장의 문 앞에서 시동을 껐다.

김비서가 얼굴을 돌려 말했다.

“방금 문자를 받았는데요. 세프가 오던 길에 교통 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에 있답니다.사람을 더 찾을 가요? 강 아가씨는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는 옆에 앉은 공 회장님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남자의 얼굴 반쪽이 어둠에 가려져 아무 감정도 없어 보였다.

공우진은 차창밖에 불빛 하나 없는 별장을 응시하더니 가볍게 말했다.

“됐어.”

그는 차문을 열고 별장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현관에 따듯한 조명이 켜졌고 그 미약한 불빛은 그렇게 거실까지 비췄다. 소파에는 몸을 웅크린 여자의 아주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공우진이 걸어갔다.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고 반쯤 열려 있던 옷깃 사이로 새하얀 목라인이 보였다. 그렇게 아무런 경계심이 없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낮췄고 그녀의 얼굴을 몇초간 빤히 바라 보았다. 그러다 한 쌍의 검은 눈동자는 어느 한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강태리는 자는 게 조금 불편해졌다. 무언가가 자기의 눈꺼풀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느껴져 무심결에 손을 들어 잡았는데 조금 차가운 손가락이 잡히고 말았다. 바로 손에 잡힌 것을 던지려고 하던 찰나에 시스템66이 머릿속에서 소리치며 말렸다.

“공우진! 공우진이 왔어요! 숙주님의 눈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어요! 뿌리치지 마요! 뿌리치지 마요! 원작 대본대로 라면 숙주님은 자는 척하는 게 제일 좋아요! 지금 이 모습이 공우진 첫사랑이랑 제일 닮았어요!”

귀속으로 이 말을 듣자, 이건 뭐 돈을 거저 주는 거랑 뭐가 다르나 싶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던져버리려고 했던 손을 풀면서 강태리는 잠꼬대 하듯 가볍게 소리를 냈다. 눈꺼풀이 살짝 떨리면서 그에 맞춰 슬며시 눈을 반쯤 떠보았다.

일부러 비몽사몽한듯 눈앞에 있는 조금은 흐릿하지만 라인이 선명한 얼굴을 보면서 솜사탕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 회장님? 오셨어요?”

공우진의 긴 속눈썹이 움직였고 잘생긴 얼굴이 굳으면서 눈빛은 황홀함에 잠겼다.

흐릿한 불빛 아래 여자의 몽롱한 두 눈은 기억 속의 눈과 겹쳐 보였고, 그녀의 모습은 길을 잃은 어린 양처럼 연민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사랑스러웠다.

조금 차가운 손가락 끝으로 강태리의 눈가를 매만졌다. 남자의 목소리가 자세히 들어보면 따듯한 느낌까지 깃들어 있었다.

“왜 올라가서 자지 그랬어?”

“어느 방이 제 방인지 몰라서요.” 강태리는 가볍게 신음하더니 그의 손가락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만져요. 간지러워요.”

공우진의 손이 약간 멈칫하더니 손가락을 조용히 거두었다.

강태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엉덩이로 조명 리모컨을 깔고 있어서 버튼이 눌러졌고 덕분에 순식간에 거실은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게 선명하게 눈 앞의 윤곽, 오관을 숨김없이 비췄다.

그녀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게 되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만약 백용현은 나름 젊고 생긴 것도 괜찮았다고 하면, 나이가 조금 있는 공우진은 성숙한 남자 중의 극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을 방금 마치고 오는 길이라 어두운 색상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떡 벌어진 어깨에 슬림한 허리, 그윽한 눈매, 높은 콧날, 조금 야윈 것 같지만 매끈한 윤곽이 돋보이는 얼굴라인, 조물주가 친히 매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이목구비는 어느 하나 틈 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아직 사랑의 눈빛을 머금은 그의 검은 눈동자를 본 강태리는, 그가 분명 자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미친듯이 열광했다.

와우!

돈도 벌고 이런 극품 남자를 곁에 둘 수도 있고, 사랑이 뭐가 대수야, 이게 바로 천당이지 뭐가 천당이겠어.

불빛이 너무 밝게 비춰오면서 순간 잘못 봤던 그 감정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공우진이 몸을 일으켜 섰고 표정은 다시 차가웠던 공우진으로 돌아갔다.

“난 여길 자주 안 와. 여기 있는 방 어디든 자고 싶은데서 자면 돼.”

“알았어요.” 강태리가 몸을 고쳐 앉았고 얼굴은 조금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번에 하신 제안 아직도 유효한가요?”

“유효해.”

“나한테 애인이 한 명 부족하거든. 노출도 안 될거고 명분도 없는데, 강 아가씨 생각은 어때?”

“제가 찾아왔다는 건 저한테 더 이상 선택지가 없다는 거였어요. 공 회장님.”

강태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동의하죠. 근데 2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녀가 조건도 제안하겠다는 것을 듣자 공우진은 손을 떼고 소파에 앉아 담배 한 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불을 붙이려고 했다.

“말해봐.”

“2년을 기약으로 저 강태리는 공 회장님의 비밀 애인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회장님께서 달마다 저의 월급을 지급해 주길 바랍니다.”

라이터를 들고 있던 공우진의 손이 멈추고 고개 돌려 강태리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의 침대 옆자리를 탐내고 있는데, 방금 그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월급? 이 여자가 지금 그가 인재 채용을 하는 건 줄로 아는 건가?

강태리는 계속해서 상당히 인위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애인이라는 게 바르지 못한 높은 월급 직업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할 건 해야죠. 회장님이 저한테 물질적인 걸 제공해 주시고, 저는 회장님의 언제 어디서든 친절한 애인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공우진은 담배를 내려놓고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너 돈 많이 없어?”

“한 푼도 없다고 봐야죠.” 강태리는 아주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금 무일푼이다. “하지만 저는 하는 만큼만 받습니다. 매달 2천만 원, 사대보험은 됐구요. 그건 제가 알아서 낼게요. 어떠세요?”

그녀가 열심히 일얘기를 하는 기세를 보면서 공우진은 오래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좋아.”

한참이 지나고서야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린 각자 필요한것만 서로한테서 받는 걸로.”

시스템 66, “카카오뱅크 입금 2억 원, 공우진 호감도 2%. 오호, 숙주님! 공우진이 숙주님처럼 말 잘 들고 공사구분하는 사람이 엄청 마음에 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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