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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쓰레기 같은 남자, 강태리 강씨 가문을 떠나다

“태리야, 용현이한테 그렇게 하지 마.”

강루빈이 백용현을 막아 나섰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고, 말하는 목소리는 유난히 힘있고 확고했다.

“우린 이미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사이야. 예전에 잘못됐던 것들은 그냥 지나가게 하자, 응?”

“응? 넌 어떤거 같아, 백용현?”

강태리는 빨간 입술을 가볍게 벌리더니 활짝 웃었다. 촉촉한 눈에서는 비아냥과 슬픔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그녀의 시선이 떨어진 곳의 백용현은 심장이 흔들렸고 심지어 한박자 엇박자로 뛰기도 했다.

그는 늘 이렇게 그녀의 얼굴에 심장의 혼을 뺐기곤 한다. 늘 그랬었다.

백용현은 입술에 침을 한번 바르면서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태리야,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좋게 끝난 사이잖아. 그것도 일 년 전에.”

“오래전에 끝난 건 맞아. 네가 나를 데리고 수업 땡땡이치고 게임할 때도 지났고, 네가 나랑 놀이공원 가서 회전목마 타면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같이 먹던 때도 지났고, 네가 열이 40도까지 펄펄 끓을 때 내가 병원에서 밤을 새우면서 간호해 주던 때도 언녕 지났지.”

강태리는 조연 머릿속의 추억 조각들을 한 개 한 개 꺼내 백용현을 향해 던졌다. 그거에 심장을 정통으로 맞은 백용현의 눈에 드디어 미안한 감정이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강루빈의 표정은 눈에 띄게 점점 난처해졌다.

오호, 이거 약간 사이다인데?!

어떤 남의 애인을 뺏은 현 애인이, 그의 X가 현 남친과의 달콤하고도 슬픈 추억을 꺼내는걸 좋아할까?

“태리야, 그만해.” 백용현은 그나마 확고해 보였다. 잡고 있던 강루빈의 손에 힘을 더주었다. “내가 그전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어. 하지만 지금은 루빈이 한 사람만을 사랑해.”

강태리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 사이에 3년이 흘러서야 넌 실수라는 걸 깨달은 거야? 근데 그런 사람이 1년 만에 다른 사람이랑 사랑을 확인하고 심지어 내 가족들도 너랑 같은 생각을 하게 만었어.”

강루빈이 참지 못하고 백용현을 대신해 해명에 나섰다.

“그건 태리 네가 사사건건 나를 겨냥하고 행패 부려서 용현이가 너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너를 떠났던 거야.”

“사사건건 겨냥했다고 내가?”

강태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이 한 가족 사람들을 쓸어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루빈이 불쌍한 것만 보이고, 바뀐 줄도 몰랐던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모르잖아. 난 원래 내 것이었던 것들을 강루빈이 다 뺏어간대도 좋아, 그게 가족이든 돈이든, 난 백용현 한 사람이면 됐었다고. 내가 3년을 사랑한 사람인데, 나랑 약속도 했었는데, 나랑 꼭 결혼을 하겠다고.

근데 결국은?

결국은 내 모든 것을 앗아간 이 언니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자라서 돌아오자마자 내 암흑한 세상 속에서 유일한 빛이었던 것도 뺏어갔어. 지금 내 가족들이었던 사람들이랑 여기 앉아서 단란하게 결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안 미치고 배겨?”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강태리의 눈을 보자 백용현이 강루빈을 잡고 있던 손이 한층 더 조여졌다. 마음속에서는 그녀가 했던 나쁜 일들이 합리한 이유가 생겨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역시 그를 너무 사랑했던 거다.

미안함과 안쓰러운 감정이 또다시 마음속에서 용솟음쳤다. 백용현의 울대뼈가 몇 번 움직이더니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눈빛이 살며시 변해갔다.

“나 그런 적 없어 태리야.” 강루빈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얼굴에 혈색이 가셔졌다. “난 너희 사이에 끼어든 적 없어.”

“당연히 없겠지. 그렇게 순진한데 어떻게 동생 남자친구를 뺏는 추악한 짓을 했을까? 무조건 양다리 백용현이 먼저 작업을 걸었겠지? 그러고는 나한테 좋게 끝내자고 헤어지자고 하고. 근데 그거 알아? 내가 버려진 그날 밤이 우리 3주년 기념일인 거? 난 그때 이미 반지까지 준비했었어. 백용현이 나한테 청혼하게 만들려고 했었다고.”

강태리의 웃음엔 울음이 담겨 있었고 말속엔 칼이 숨어 있었다. 그녀의 말에 온 가족의 얼굴에는 빛이 사라졌다.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누가 말을 할 수 있을까?

시스템은 그녀한테 알려줬었다. 책속에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강태리가 백용현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 눈에는 묵인된 사실이다. 다들 강루빈의 과거를 가슴 아파하고 강태리의 감정에는 신경 쓴 적이 없다. 이게 강태리가 나쁘게 변해버리게 된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거실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더 냉랭해졌다. 제일 먼저 울음을 터뜨린 건 강씨 모친이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강태리를 품에 안았고 말에는 온통 미안한 감정이 담겼다.

“미안하다, 태리야. 네가 그동안 많은 걸 감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난 네가 충분히 꿋꿋하게 버텨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넌 내가 지금까지 힘들게 키운 딸이야. 집을 나가긴 어딜 가.”

한쪽은 되찾은지 3년이 된 강루빈이고, 한쪽은 자기 손으로 23년을 키운 강태리다. 그녀가 진짜가 아니더라도 엄마로서 강씨 모친은 그녀에 대한 가족사랑을 진짜로 끊어버릴 수가 없었다.

강태리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밀어냈다.

“이 강태리는 오늘부로 강씨 집안을 떠날 거예요. 앞으로는 저의 엄마가 아니라 강루빈 엄마로 살아가셔야 될 거예요. 저는 더 이상 이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에요.”

그녀는 몸을 돌려 문쪽으로 걸어갔다.

“강태리.” 강윤은 참지 못하고 빠르게 쫓아가 그녀를 잡았다. “너 지금 돈도 없으면서 어딜 가겠다는 거야? 루빈이랑 아빠한테 잘못했다고 얼른 사과드려. 그러면 우린 계속 한 가족으로 살 수 있어.”

“한 가족?”

강태리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돌리면서 백용현에게 마지막 한방을 날렸다.

“나더러 내 언니와 내가 3년이나 사랑한 남자가 결혼하고 애까지 낳는 걸 보면서 한 집에서 살라고? 차라리 나한테 죽으라고 해.”

그녀의 눈앞은 이미 눈물로 흐릿해졌고 높은 콧대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난 오늘 여기를 완전히 떠날 거야. 예전의 나의 성숙하지 못했던 행동들에 대해 사과를 하는거라고 생각해도 좋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약속할게, 나 강태리는, 앞으로 절대 백용현과 강루빈 사이를 방해하지 않을게. 두 사람, 앞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아.”

강루빈을 잡고 있던 백용현의 손에 힘이 풀렸고 저도 모르게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용현아?” 강루빈이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너 따라가려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거야?”

한 발짝 내 디딘 걸음은 끝내 다시 거두어들였다. 백용현의 눈초리가 내려가더니 생각이 복잡하다.

그도 당연히 강태리가 그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그도 그녀를 사랑했었고. 저렇게 예쁘고 일편단심인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녀가 일반인으로 변하고부터는 그의 집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상실해 버렸다.

줄곧 조용하던 시스템66이 가방을 싸서 나가는 강태리가 순간 얼굴이 변하면서 유유히 녹음펜을 꺼내들어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고 궁금한 듯 중얼거렸다.

“숙주님, 대체 뭐하려는 거죠?”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준비하는 거지. 네가 그랬잖아 지금 온 세상에 다 강태리가 강루빈을 괴롭혔다는 나쁜 소리들뿐이라며.” 그녀는 녹음펜을 손바닥에 놓고 몇 번 들었다 내렸다 하더니 다시 가방에 넣었다. “지금 내가 이 몸을 인계받았으니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 이미지를 세탁해야 할거 아냐. 안 그러면 어떻게 깨끗한 몸으로 다른 사람 대역을 하러 가겠어.”

“어떻게 할건데요?”

“일단은 공우진부터 찾아야겠어.”

“찾아서 뭐 하게요?” 시스템66은 아직도 녹음펜과 남주 사이의 헷갈리는 관계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거야 당연히 나를 스폰 해달라 하고 돈을 만들어야지.”

강태리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면서 블랙에 골드색으로 도금된 명함을 꺼내고는 그 위에 적혀있는 일련의 숫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성 금융 센터는 높은 빌딩들이 밀집해 있었고, 마치 전체 구역 중심에 체구 거대한 용이 몸을 감고 누워있는 것만 같았다.

불빛이 휘황찬란한 한양구의 공씨 그룹 빌딩에서, 한차례 미팅이 끝났다.

정장핏이 예술인 한 남자가 회의실에서 나온다. 차가우면서도 남자답게 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뒤에서 따라 나오던 김비서는 머리를 숙이고 손에 든 아이패드를 보면서 앞으로의 하루 일정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다.

“공 회장님, 어제 인스타에 올라온 공씨 둘째 도련님 가십거리를 폭로하는 글은 이미 처리하였습니다. 오후 6시에 PH증권회사의 안 회장님과의 약속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도씨 가문의 도 부인께서 방금 전화가 오셨는데 내일 저녁 회장님께서 시간을 내셔서 도 부인의 생일파티에 참석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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