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의사가 말했다. “이건 전문적으로 오메가한테 먹이는 피임약입니다. 약효가 아주 강한데요. 이걸 얼마 동안 복용하셨나요?” 조윤이 입을 벌리더니 말했다. “...... 4년이요.” “결혼한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 4년...이요.” ...... 조윤의 얼굴과 목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으며 연속으로 두 번 정도의 신음 소리를 내고서야 급하게 말했다. “핡, 앝, 아니야, 나 앞으로 아기 안 낳을래.”
제1화: Chapter1
조윤은 그의 알파 남편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그를 증오하고 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치만 진짜로 더 뼈저린 느낌을 주는 건, 지금 그가 병원밖에 앉아 있으면서 손에는 노승우가 입으로 말하는 그 ‘영양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노승우는 결혼한지 4년이 되었다.
얼마 전 조씨 집안에서 그에게 압력을 주면서 아기를 가질 때가 되었다고 했었다. 조윤도 그들한테 아이가 있다면 노승우가 자기를 한 번이라도 더 봐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평소에 조윤이 중간에서 수를 쓴 정황들로 봤을 때, 그는 진작에 노승우의 아이를 임신했어야 했다. 근데 그는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혼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검사보고서를 쥐고 이상한 눈길로 그를 보면서 왜 임신을 원하면서도 장기간 피임약을 복용했냐고 물었다.
조윤은 다급하게 그런 적 없다고 했고 혹시 중간에 잘못된 건 아닌지 물었다.
그러나 의사는 아주 확신에 찬 말투로 없다고 말했고, 그한테 평소에 어떤 약들을 먹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조윤은 노승우가 자기한테 사줬던 영양제들이 생각났고, 그는 매일 그 영양제들을 꼬박꼬박 먹었었다.
그는 노승우가 자기의 신체 건강을 생각해서 사준 건 줄 알고 매일매일 먹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약을 의사한테 보여줬고,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도 그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의사한테 물었다.
“저희 남편이 이게 영양을 보충하는 거라고 했거든요.”
의사가 말했다. “이건 전문적으로 오메가한테 먹이는 피임약입니다. 약효가 아주 강한데요. 이걸 얼마 동안 복용하셨나요?”
조윤이 입을 벌리더니 말했다.
“...... 4년이요.”
“결혼한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 4년이요.”
의사는 아주 안됐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면서 은밀하게 말해주었다.
“지금 약을 끊고 몸조리를 잘하면 그래도 가망은 있어요.”
그말에 조윤은 그가 앞으로도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조윤처럼 이렇게 이미지가 안 좋은 오메가는 노승우한테 시집갈 수가 없었다. 단지 그들의 부친들께서 그 혼인을 약속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년 전, 노승우는 전장에 나가야 했었다.
모든 사람들이 노승우가 전장에서 전사할 거라고 생각했다.
노승우도 노씨 집안의 허락을 받으려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조윤과 급하게 결혼해 버렸었다.
그렇게 조윤은 동반 가족으로 노승우를 따라 전장으로 가게 되었다.
전선의 생활은 그야말로 고난이었다. 그러나 2년 후 노승우는 군공 (軍功)을 가득 세우고 살아서 돌아왔다. 졸지에 노승우는 명성이 자자한 제국의 가장 핫한 인물로 급부상되었다.
그러나 노승우가 잘나가면 잘나갈 수록 그의 오메가는 그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사실도 그러했다. 조윤이 16살때 그는 상해죄로 1년동안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무능하고 배운것도 없었고 성질만 드러운 예쁘게만 생긴 바보였다.
조윤은 복도에 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노승우가 조윤한테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아이한테 조윤과 같은 엄마가 있게 할 수 없다고.
그는 이게 노승우가 단지 화나서 해본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진짜로 노승우가 처음부터 자기와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었던 것일 줄은 몰랐다.
조윤이 병원을 떠날 때 그의 옆으로 한 집 세식구가 오손도손 지나갔다.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알파의 어깨에 앉아 어리광을 부리면서 주사 맞기 싫다고 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오메가는 부드럽게 안 맞을거라고 달래던 광경을 보았다.
그는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아마도 그는 평생 이런 행복을 누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자 문 앞에 놓인 신발을 발견했다. 출장갔던 노승우가 돌아온 것이다.
조윤은 검사 보고서를 잘 놓고는 문 앞에 것들을 정리했다.
그의 외투를 씻으려고 가져가려고 할 때 그는 그 위에서 오메가 페로몬의 냄새를 맡았다. 달짝지근한 게 아주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생각하지 않아도 어떻게 남겨진 건지 알 수가 있다.
조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벙쪘다.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그는 노승우가 밖에서 애인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그가 보는 앞에서 둘은 아무렇지 않게 스킨십을 하기도 했었다. 조윤은 자기의 심장은 진작에 무뎌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진짜 너무 아프다.
너무 아파서 온몸이 떨려오고 너무 아파서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도 난리를 피워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 혼인을 유지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노승우의 한마디 뿐이었다.
“그럼 이혼하면 되잖아.”
가벼운 한마디. 점심에 뭐 먹을지 토론하는것과 같이 아무런 타격감이 없는 한마디. 이 결혼은 그에게 이렇듯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그가 의사한테서 노승우가 준 약이 피임약이라고 듣던 그 순간, 그도 노승우한테 가서 직접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 뿐이지. 결국 자기기만이다.
여전히 똑같이 ‘그럼 이혼하면 되잖아.’ 와 같은 말이 돌아올 게 뻔했다.
그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도, 어떻게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는 다만 그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 외엔 잘못한 건 없었다.
이 위태로운 혼인은 노승우한테 늘 부담이었다. 조윤만 바보처럼 제자리에서 이 결혼을 지키려고 했다.
그는 어리석게도 시간은 많을 것을 변화시킬 줄 알았다.
하지만 노승우만,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조윤은 그저 손 놓고 멍하니 자기의 남편이 자기와 점점 멀어지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기의 마음 또한 야금야금 갉아먹히고 있었다.
사실 그도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럼 이혼하면 되겠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자기 자신한테 부정당하고 말았다.
바보같은 생각이다. 그는 처음부터 선택할 수 있는 권리조차 없었다.
조윤은 집안 청소를 하는데에 시간을 조금 들였다.
그들은 가정부를 들이지는 않았다. 그건 조윤이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보통은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밥을 다 차리자 잠에서 깬 노승우가 방에서 나왔다.
노승우는 순색의 홈웨어를 입고 있었고 이마 앞의 앞머리가 조금은 길었다. 오똑한 코 밑에는 얇고도 다소 차가워 보이는 입술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냉혈미남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못본지 오래 됐지만 그의 얼굴에 별다른 표정은 없었다.
바로 그를 에둘러 지나치고는 손을 씻으러 갔다.
이 순간 둘은 낯선 사람들보다도 더 서먹서먹했다.
조윤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국을 떠주었다.
그렇게 아무말도 없이 머리를 박고 밥만 먹었다.
예전 같으면 조윤은 늘 밥 시간을 빌어 노승우와 말이라도 섞어보려고 했다. 일 얘기나 다른 얘기 같은 것을 물어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노승우는 눈썹을 치켜들고 그를 보면서 한마디 하곤 했다.
“밥 먹을 때 말하지 마.”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항상 냉랭하다.
그러면 조윤은 풀이 죽어 입을 다물었었다.
결혼하기 전 조윤은 아예 밥할 줄도 몰랐다. 그들이 군부대에 있었을 때 노승우는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고 항상 군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그리하여 조윤은 요리하는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손이 몇번이고 까지고 기름이 몇번이고 자기한테 튀어서야 요리가 손에 익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의 노력이 이 남자를 언젠가는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승우의 마음은 천년을 얼어붙은 빙산처럼 몇년이 지나고도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에 대한 태도, 생각은 처음부터 단 한순간도 변한적 없었다.
식사 후, 조윤은 조승덕이 그한테 당부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용기를 내서 노승우한테 말했다.
“여보, 우리 아기를 가질까?”
나가려던 노승우가 이 말을 듣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나 그건 비꼬는 웃음이었다.
그렇게 뒤를 돌아 그를 보면서 말했다.
“네 생각에는 내가 내 아이한테 너 같은 엄마를 두게 할것 같아? 아니면 이게 네가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한 새 수작인 거야?”
그의 표정을 보고 있던 조윤은, 자기의 얼굴에 매서운 따귀가 날아든것만 같았다. 노승우는 늘 저런 눈빛으로 그를 보군 했다. 그의 눈에 그는 머리가 텅텅 비었고 내뱉는 말마다 거짓말이었다.
분명 그렇게 그를 싫어하면서 만약 조씨 집안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의 성격에 진작에 그를 목졸라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결혼한 이듬해 노승우는 이혼 얘기를 꺼낸 적 있다. 그때 조윤은 애걸복걸 매달렸고 그래서야 그도 그 얘기를 더 꺼내지 않았다.
두번째로 꺼냈을때 노승우의 태도는 엄청 견결했다. 조윤은 팔을 그어 자살시도를 했고 결국 병원에 실려갔다. 그 일은 노씨 노부인한테까지 전해지고서야 그들의 이혼을 막을 수 있었다.
조윤은 모든것이 점점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노력만 한다면, 노승우한테 그의 좋은 점을 보이고 그가 그렇게 가치없는 사람이 아닌 걸 증명하면 노승우가 자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잔혹한 사실은 그가 멍청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딴에는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늘, 그거야말로 노승우가 그한테 더욱더 싫증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몰랐다.
노승우는 조윤을 훑어보면서 자기의 생각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할머니 생신이 지나면 우리 가서 이혼해 버리자.”
조윤이 손을 내밀어 노승우의 팔을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승우야, 우리 요즘 괜찮았잖아? 나 앞으로 예전처럼 멍청한 짓을 안 할게. 너의 일에도 간섭하지 않을 거고. 우리 이혼 안하면 안될까?”
갑자기 큰 힘으로 조윤을 뿌리치자, 중심을 잡지 못한 조윤은 그대로 땅 바닥에 주저앉았다.
노승우는 조윤의 옷깃을 꽉 잡고는 무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너 그만 할때도 되지 않았냐? 이번에도 죽고 싶으면 멀리 가서 죽어, 내 눈에 띄지 말고.”
말을 마치고 노승우는 잡고 있던 조윤의 멱살을 놓고 매정하게 나가버렸다.
조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손가락은 차디찬 바닥을 짚고 있었다.
마음은 겨울날의 날씨보다도 더 춥게 느껴졌다.
자기 손목에 남겨진 저번에 그었던 흔적을 보면서 갑자기 쓴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당연히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니다. 시간을 계산하고 적당한 힘을 줘서 다른 사람한테 그의 불쌍하고도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지 동정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프긴 진짜 아팠다.
그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노승우가 그를 각인한것도 노승우가 열이 펄펄 끓어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그에게 약을 타서 먹였던 것이다. 처음은 진짜로 아팠다. 하지만 조윤으로 하여금 그 아픔속에서 달콤함을 맛보게 했다. 노승우가 정신을 차리고 깼을때는 진짜 그를 죽여버릴 뻔했다.
그때 조윤은 노승우가 자기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결과는 그가 묵묵히 다 받아야만 했다.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노승우가 이토록 자기를 증오하는 것이었다.
그를 임신 시키려고 하지 않을 뿐더러 그의 몸까지 망가뜨리려고 한다.
노승우는 어떻게 해야 그한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눈빛 하나, 말 한마디, 하지만 이번엔 드디어 조윤으로 하여금 상처를 움켜잡고 일어 설 힘도 없게 만들었다.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장에서 노승우가 그의 목숨을 살려줌으로써 그를 깊게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면,
만약 단지 그를 혼인의 상대로만 생각했다면,
이 모든것이 달라졌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