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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최하얀은 몸을 숙여 최세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목소리는 최대한 부드럽게 낮췄다.

"엄마 회사에 잠깐 일 좀 보고 올게. 금방 와서 같이 캠핑 가자."

최세원은 그녀의 옷자락을 꼭 붙잡은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래 걸려?"

"아니야."

최하얀은 그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회의실에 급히 도착했을 때, 최하얀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서정아뿐만 아니라, 상석에 앉아 있는 황경진, 그리고 그 남자 뒤에 숨어 있는 오민영까지.

"최하얀, 직접 봐!"

서정아는 그녀를 보자마자 병원 검사 결과가 담긴 서류 한 뭉치를 탁자 위에 탁 내리쳤다. 미간은 단단히 구겨져 있었다.

"민영 씨 꽃가루 알레르기 있는 거 알지? 드레스에 꽃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어. 하마터면 얼굴 망가질 뻔했잖아! 매니저 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오민영이 황경진 뒤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가린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연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 실장님, 최하얀 씨 탓은 아니에요. 제가 체질이 약해서 그런 거니까요… 그냥 누군가가 제 약점을 이용할 줄은 몰랐을 뿐이에요."

말하면서 그녀는 슬쩍 곁눈질로 최하얀을 바라봤다.

입꼬리에는 들키지 않을 만큼 미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겨우 매니저 하나가 감히 나랑 싸우려고?

"드레스는 회사 의상실에서 바로 가져온 거예요. 저는 꽃가루 같은 건 건드린 적도 없고, 애초에 이 사람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최하얀은 손끝으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가볍게 짚었다.

말투는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담담했지만, 눈빛에 담긴 차가움은 숨길 수 없었다.

"회사에서 제 꽃가루 알레르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오민영은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한 척 한숨까지 내쉬었다.

"최하얀 씨, 저 싫어하는 건 이해해요. 그래도 이런 비열한 방법으로 사람 해치면 안 되죠."

"해친다고요?"

최하얀은 피식 웃으며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정말 제가 해칠 생각이었으면… 지금 여기 서서 저랑 말하고 있을 수나 있을까요?"

그때였다.

회의실 문이 갑자기 세게 열렸다.

업무 매니저가 휴대폰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서 실장님! 터졌어요! 민영 씨 완전히 터졌어요!"

그는 휴대폰을 서정아 앞으로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오민영이 그날 입었던 콘셉트 영상이 가득했다.

"틱픽 공식 쪽에서 방금 연락 왔어요! 민영 씨 콘셉트 무대 소품을 따로 제작하겠대요!"

틱픽은 히트 콘텐츠를 포착하는 속도가 유독 빠른 플랫폼이었다.

개발 속도 역시 놀라울 정도였다.

이미 관련 화제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라가 있었다.

서정아는 몇 개 영상을 연달아 넘겨봤다.

그러자 입가의 미소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오민영의 얼굴에서 연약한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대신 눈에는 흥분한 빛이 가득했다.

그녀는 급히 다가가 댓글을 확인했다.

조금 전까지의 억울한 표정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지금 팔로워가 엄청나게 늘고 있어요! 내일 아침이면 천만은 확실합니다!"

업무 매니저가 탁자를 두드리며 축하했다. 그리고 오민영을 바라봤다.

"민영 씨, 축하해요! 천만 팔로워 이벤트도 준비해야겠네요!"

최하얀은 말없이 그녀의 변해 가는 얼굴을 바라봤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도 꽃가루 사건이 제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시선이 무심코 상석에 앉아 있는 황경진에게 스쳤다.

남자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손끝으로 펜을 느긋하게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그저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최하얀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정면으로 받아쳤다가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그에게 쓸데없는 관심을 줄 생각은 없었다.

오민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순간 굳었다.

"내 드레스는 당신이랑 서 실장님만 만졌다고요!"

그녀가 곧바로 반박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서 실장님을 의심한다는 뜻인가요?"

이번 일의 책임을 최하얀이 벗게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 폭발적인 인기가 전부 최하얀 덕분이라는 사실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의상실에 CCTV 있잖아요."

최하얀은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

"확인하면 되죠. 누가 드레스를 만졌는지 바로 나올 테니까요."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누군가 입을 열었다.

"CCTV는… 누가 망가뜨렸더군."

얼음처럼 차가운 낮은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르며 울렸다. 황경진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오는 듯했고, 시선은 곧장 최하얀에게 꽂혀 있었다.

"설령 꽃가루를 네가 뿌린 게 아니라고 해도, 매니저라는 사람이 소속 연예인의 금기 사항 하나 제대로 모른다?"

그의 눈빛이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일이 그렇게 쉽게 먹고사는 자리인 줄 알았나?"

오민영이 곧바로 그의 곁으로 다가가 팔을 끼었다. 고개를 들어 최하얀을 바라볼 때, 눈빛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담겨 있었다.

"황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어떤 사람은 애초에 이 일을 할 자격이 없는 거죠."

"저도 더는 이 일을 할 생각 없습니다."

최하얀은 눈을 들어 서정아를 바라봤다.

"3일 안에 진실은 밝혀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직하겠습니다."

"사직?"

황경진이 웃었다. 그 웃음에는 노골적인 조롱이 섞여 있었다.

"찔리니까 도망치려는 건가? 최하얀, 지금 와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입가의 냉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최하얀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굳었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회의가 끝난 뒤 사람들이 하나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최하얀도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복도를 막 돌아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손목이 거칠게 붙잡혔다.

"뭐—"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이 그대로 끌려갔다.

황경진이었다.

그는 한마디 설명도 없이 그녀를 복도 끝까지 끌고 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밀어 넣었고,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차가 세워진 쪽으로 데려갔다.

주차장에는 이미 그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하얀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황경진이 그녀를 거의 끌다시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서정아와 오민영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도 감히 말리려 하지 않았다.

차는 빠르게 달렸고, 최하얀은 창밖으로 뒤로 밀려나는 거리 풍경을 바라봤다.

심장이 서서히 식어 내려갔다.

도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웨스트이든 호텔.

"쾅—!"

요란한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황경진은 여전히 몸부림치던 최하얀을 침대 위로 거칠게 내던졌다.

관성 때문에 그녀의 몸이 뒤로 조금 미끄러졌다.

셔츠 단추 두 개가 튕겨 나가며 풀렸고, 희고 매끈한 어깨와 목선이 반쯤 드러났다.

최하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의 모든 세포가 남자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었다.

상체를 겨우 일으키려는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

"최하얀."

황경진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청수시에 돌아올 생각을 했으면, 떠나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야지."

최하얀은 고개를 들었다.

황경진은 이미 침대 끝에 서 있었다.

큰 체구로 내려다보며 마치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그녀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위에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짙은 색 셔츠 단추가 몇 개 풀려 있었고, 쇄골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드러난 하얀 목선을 집요하게 따라 내려갔다.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였다.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했다.

"대체 나한테 뭘 더 원해!"

최하얀의 목소리가 떨렸다.

"최씨 집안의 모든 걸 이미 당신이 빼앗아 갔잖아! 도대체 뭘 더 하겠다는 거야!"

그녀는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공포를 어떻게든 눌러 담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황경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천천히 숙였다.

거칠고 뜨거운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 쪽으로 내려갔다.

얇은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열기가 피부를 태울 듯했다.

황경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입가를 쓸어내리며 낮게 말했다.

"최하얀, 널 괴롭게 만드는 것."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그게 내 목적이야."

변태.

이 남자는 완전히 미친 인간이었다.

최하얀은 속으로 절규했다.

하지만 목이 막힌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증오했다.

그의 냉혹함을,

그의 잔인함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도 그에게 짓눌리고 모욕당하고 있는 자신이 더 싫었다.

"게임 하나 하자."

황경진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로 떨어졌다.

긴장으로 꼭 다문 입술이 마치 손에 쥐어 문질러진 체리처럼 옅게 붉어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숙인 후 한 손을 그녀의 머리 옆 베개 위에 짚었다.

두 사람의 코끝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를 만족시키면,"

그가 낮게 말했다.

"CCTV 영상도 넘겨주고, 네 사직서도 받아주지."

"어떻게 만족을 하란 건데?"

최하얀은 몸을 웅크린 채 끝까지 경계 태세를 풀지 않았다.

황경진과의 대화는 늘 전쟁 같았다. 말 한마디, 숨 한 번까지도 계산해야 했다.

그녀는 황경진이라는 사람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남자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경진이 낮게 웃었다.

마치 독사가 스치듯 입맞추는 것처럼 차가운 손끝이 그녀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나랑 하룻밤 자."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떨어졌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신경을 잡아당기는 갈고리처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도록 잊으려 했던 밤들을 다시 끌어올렸다.

부끄럽고 통제할 수 없던 그 밤들을.

"황경진! 미쳤어?"

최하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목소리에는 애원도, 마지막 경고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 같은 광기가 더 짙어졌다.

그의 손은 더 이상 옷 너머로 만족하지 않았다.

점점 조급해지며 그녀의 몸을 더 깊이 더듬기 시작했다.

방 안의 공기가 그 순간 굳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뜨겁게 달아오른 듯했다.

남은 것은 두 사람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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