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최하얀은 바닥에 흩어진 자료를 내려다봤다. 그 위에는 그녀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인쇄돼 있었다.
차갑게 식은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귀국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황경진과 다시 마주칠 장면을 수백 번도 더 상상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지금 눈앞에 펼쳐졌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수제 가죽 구두가 바닥의 자료를 짓밟았다. 황경진은 그녀의 그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담담하고 차가운, 마치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황 대표님이 너무 한가하신 것 같아서요."
최하얀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 깊숙이 스친 긴장은 조롱으로 덮여 있었다.
"나 보자마자 바로 뒷조사부터 하셨나 봐?"
그녀의 매혹적인 눈이 황경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걸 지켜보며 느긋하게 웃었다.
"쯧쯧, 6년 만이네. 설마… 나 보고 싶었던 건 아니지?"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 있었지만, 속에서는 피가 흐르듯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심장이 떨려 온몸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다행이었다.
6년 전 호적 문제 때문에 최세원의 호적은 윤태식 명의로 올라가 있었고, 아직 옮겨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악마 같은 남자가 이미 찾아냈을 것이다.
최씨 집안은 이미 그녀 때문에 무너졌지만, 그래도 세원이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절대로 그에게 들켜서는 안 됐다.
그녀의 눈에는 노골적인 조롱이 담겨 있었다.
그 시선이 남자의 이성을 자극했다.
황경진의 검은 눈동자가 핏빛으로 번뜩였다.
"드디어 인정하는군. 최하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사람이 바로 너야. 설령 널 떠올린다 해도… 네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나는 안 죽었네. 그것도 모자라서, 그때의 일 덕분에 깨달은 게 하나 있어."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의 단단히 굳은 턱선을 흘끗 바라봤다.
"당신 같은 남자한테는 감정 낭비할 가치조차 없다는 거."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의 당신은 말이야… 내 기준에서는 그냥 이미 질린 전 남자야. 나는 진작 흥미 잃었거든."
그 말은 가시처럼 황경진의 심장에 깊이 박혔다.
그는 갑자기 그녀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천이 찢어질 듯한 힘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다시 말해봐."
"이미 질린 전 남자라고."
최하얀은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 따지기 전에, 당신 애인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 오민영 목소리… 최사랑이랑 정말 닮았더라고. 설마 대용품으로 데려다 놓은 건 아니겠지?"
"닥쳐!"
황경진의 목소리가 낮게 터져 나왔다.
"넌 그 애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도 없어. 최하얀, 최사랑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마!"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거칠게 뛰었다. 어떤 말이 그의 신경을 건드린 건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있으면… 컥… 죽여 봐."
최하얀의 손가락이 하얀 벽을 꽉 움켜쥐었다. 석회가 손톱 사이로 파고들었다.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표정은 여전히 완강했다.
최사랑 때문에… 절대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
황경진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갑자기 손을 놓았다.
조명 아래에서 그의 날카로운 윤곽이 더욱 또렷해졌다.
차갑게 식은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표정은 이미 평소의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널 죽이는 건 너무 쉽지."
그는 느릿하게 말했다.
"기껏 청수시까지 돌아왔잖아. 잘됐다. 이제 천천히 가지고 놀아 줄게. 네가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그는 그녀를 짓밟을 생각이었다. 완전히 고개를 들 수 없을 때까지.
"아마 평생 기다려도 못 볼 거야."
최하얀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몸을 일으킨 후 비틀거리며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황경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눈빛이 점점 더 짙게 가라앉았다.
자신이 그녀에게는 이미 질린 전 남자라고?
좋아.
최하얀은 휴게실을 나와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거울 앞에 서자 숨이 가쁘게 터져 나왔다.
황경진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6년이 지났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 눈빛은 여전히 그녀를 다시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6년 전의 기억이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최하얀은 세면대에서 찬물을 얼굴에 여러 번 끼얹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는 듯했다.
그때 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최세원의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천진한 목소리는 단숨에 최하얀의 거칠게 일렁이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엄마! 나 오늘 시험 만점 받았어! 윤 아저씨가 상 준대. 우리 오늘 저녁에 엄마 데리러 가서 바닷가에서 캠핑하면 안 돼?"
"데리러 오지 마!"
최하얀은 순간 다급하게 말했다.
곧바로 아이가 놀랄까 봐 마음을 다잡고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소 보내줘. 엄마 퇴근하면 바로 갈게."
황경진에게는 절대, 세원이의 존재를 알게 해서는 안 됐다.
"알았어요, 엄마."
전화를 끊은 뒤, 최하얀은 오민영의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슈퍼마켓에 들러 스카프를 하나 사서 목에 둘렀다. 목에 남은 붉은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한 시간 뒤, 그녀는 청수시에서 맑은 바닷물로 유명한 세광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은 아름다웠다.
멀리 수평선이 보였고, 해 질 녘의 잔잔한 파도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바다 위에 내려앉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사람의 불안하고 뒤숭숭한 마음까지 씻어낼 것 같은 풍경이었다.
이 해변에는 유명한 전설도 있었다.
어느 어부 부부의 이야기였다.
남편이 바다에 나갔다가 실종됐고, 젊은 아내는 반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기다렸다.
새벽부터 밤이 될 때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는 남편이 분명 살아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리고 반 년 뒤, 남편은 온갖 고생 끝에 기적처럼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두 사람은 백년해로했고, 다시는 헤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연인들은 세광 해변에 와서 소원을 빌곤 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를.
예전에 최하얀도 같은 마음이었다.
7, 8년 전,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황경진을 이곳에 데려왔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게 끝없는 아이러니였다.
"엄마!"
텐트 쪽에서 최세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몸이 그녀를 향해 달려와 손을 꼭 잡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윤 아저씨가 벌써 치킨 다 구워놨어."
최하얀은 쪼그려 앉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을 하려던 순간, 최세원이 그녀의 스카프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엄마, 4월인데 안 추워. 왜 아직도 스카프 하고 있어?"
"바닷바람 세잖아. 감기 걸릴까 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스카프를 더 단단히 둘렀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텐트 쪽으로 걸어갔다.
"엄마, 엄마랑 아빠도 예전에 여기 온 적 있어? 여기서 사진 찍은 거 있어?"
최세원이 갑자기 물었다.
작은 이마를 살짝 찌푸린 채였다.
"엄마는 전에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잖아. 근데 왜 난 아빠 사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최하얀은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한 번도 최세원 앞에서 황경진의 이름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에 대해 나쁘게 말한 적도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았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사이는 좋았어. 그냥… 같이 찍은 사진이 없을 뿐이야. 숨긴 건 아니야."
최하얀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다시 앞으로 걸어가려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정아의 전화였다.
마침 최하얀도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기에 할 말이 있었다.
그녀는 최세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엄마 전화 좀 받을게. 윤 아저씨랑 먼저 놀고 있어."
"응!"
"여보세요."
"최하얀, 지금 어디야? 긴급 상황이야. 당장 회사로 돌아와서 처리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