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나와 우현도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그는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겠다고 말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그는 하루 종일 그 이야기만 반복했다. 결혼식 보름 전, 내게 초음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그제야 알았다. 그의 첫사랑 최세라가 이미 임신 한 달 차였다는 걸. 알고 보니 그는 애초부터 내 동의를 구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몇 년간 쌓아온 감정이 강 위의 얇은 얼음처럼 순식간에 부서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을 취소했고, 우리 사이의 모든 추억을 하나씩 지워버렸다. 그리고 원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던 바로 그날,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의 실험실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나는 그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제1화
나와 우현도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그는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겠다고 말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그는 하루 종일 그 이야기만 반복했다.
결혼식 보름 전, 내게 초음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그제야 알았다. 그의 첫사랑 최세라가 이미 임신 한 달 차였다는 걸.
알고 보니 그는 애초부터 내 동의를 구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몇 년간 쌓아온 감정이 강 위의 얇은 얼음처럼 순식간에 부서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을 취소했고, 우리 사이의 모든 추억을 하나씩 지워버렸다.
그리고 원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던 바로 그날,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의 실험실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나는 그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되었다.
…
"이미 수없이 설명했잖아, 이예리. 최세라는 암에 걸렸고 남은 시간이 1년밖에 안 돼. 나는 그녀에게 목숨을 빚졌어. 그때 그녀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다른 가문에 죽임을 당했을 거야. 지금 그녀의 유일한 소원은 자기 가문을 위해 우씨 가문의 혈통을 이어줄 아이를 남기는 거고, 나는 반드시 그 소원을 들어줘야 해!"
이 말, 지난 한 달 동안 수백 번은 들었다.
그가 처음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꺼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거절했지만, 그는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야수처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내 이해를 구하던 그의 태도는, 이제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쪽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게 우씨 가문 전체를 배신하는 일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아무리 목숨을 구해준 은혜라 해도, 아이를 낳는 걸로 갚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지금이 옛날도 아니고!
한 달 가까이 이어진 싸움에 지쳐버린 나는, 이제 더는 그와 논쟁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5년 동안 사랑해온 남자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현도, 다음 달이면 우리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잖아. 그런데 지금 넌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겠다고 하는데, 그럼 나는 뭐야? 넌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 모습이 처음으로 무너진 걸 본 탓일까, 우현도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미시간 호수를 뒤덮은 차가운 안개처럼 흐릿했다.
이윽고 그는 거래를 성사시킬 때처럼, 지배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예리야,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건 가문의 빚이자 명예의 문제야. 최세라를 도울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녀가 후회를 안고 떠나는 걸 난 그냥 볼 수 없어."
"그리고 우리 약속했잖아. 그냥 시험관 시술일 뿐이라고.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을 거야."
"넌 날 사랑하니까… 분명 이해해줄 거지, 그렇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끝없이 추락했다.
바닥 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지듯이.
그때 깨달았다. 우현도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걸. 오늘 그가 한 모든 말은 상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는 걸.
내 감정 따위는, 그가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 안에서 하찮은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우현도가 무언가 더 말하려던 찰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힐끗 보더니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서재로 들어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와 우현도는 C시 남부에서 함께 자라났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우리의 인생 궤적은 언제나 맞닿아 있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를 알았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가장 눈부시면서도, 가장 위험한 소년을.
나는 늘 조용히 그의 곁을 지켰지만, 그는 한 번도 내 마음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전날 밤이 되어서야, 그는 비로소 나의 존재를 알아보고 내게 말했다. 이제부터 네 남자가 되어주겠다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래서 연인이 된 뒤에는, 당연히 서로에게 가장 깊은 의지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함께한 5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그의 휴대폰을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늘 자리를 피했고, 한 번도 내 앞에서 통화하지 않았다.
한 번은 그가 총상을 입고 고열에 시달리던 밤이었다.
침대맡에 두었던 그의 휴대폰 화면에 암호화된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다.
그를 깨울까 봐 걱정되어 그저 무음 모드로 바꾸려던 순간, 그는 갑자기 눈을 뜨며 날 노려봤다.
그 회색 눈동자에는 차갑고 날선 경계심이 가득했다.
"뭐 하려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칼날처럼 냉혹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믿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거실 소파에 웅크린 채 밤을 새웠다.
그가 그런 건 우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타고난 본능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언젠가는 그의 마음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겠다고 하면서, 곧 그의 아내가 될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현도가 서재에서 나왔고, 그의 얼굴엔 숨기지 못한 기쁨이 비쳤다.
소파 위에 놓인 아르마니 외투를 집어 들고 급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 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그가 문을 나서며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멀어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식어갔다.
그를 이렇게 급히 불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최세라뿐일 것이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최세라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나는 손가락이 떨리는 걸 느끼며 그 사진을 클릭했다.
확대한 화면 속 내용을 보는 순간, 나는 거의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