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맞지 않는 반지는 결혼과도 같았다
심민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 텅 비어 있는 공간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
휴대폰은 전원이 꺼져 있어서 얼마나 잤는지 알 수 없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심민아는 일어나 신발을 신고 가방을 들고 나갔다. 하연진의 병실을 지나다가 반쯤 열린 문을 보고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 안에 있는 사람은 하연진이었고, 그녀를 돌보는 사람은 명목상 그녀의 남편인 이재훈이었다.
하연진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얼굴을 가졌다. 병원의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환자복을 입고 있어도 그녀의 깨끗하고 우아한 기품은 가릴 수 없었다. 하얀 피부는 아몬드 모양의 눈을 더욱 밝고 빛나게 했다.
심민아는 생각했다. 이재훈은 아마도 하연진의 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함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자신과 비교하면, 그녀는 악의적인 생각으로 금슬 좋은 연인을 갈라놓은 악당이었다.
이재훈이 하연진에게 보이는 애정이 질투가 났다. 오래 보다 보니 부럽기까지 했다.
이재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천성적으로 차가운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심민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실 모든 따뜻함을 하연진에게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도 나누어주지 않았다는 것을.
물론, 아주 오래전에는 그녀에게도 잘해줬지만, 지금은 이미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하연진은 그녀를 한 번 보고는 몸을 떨며 작은 흰 토끼처럼 이재훈의 뒤로 숨었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드러났고 눈가는 붉어져 있었다. 마치 범죄자라도 본 것처럼.
이재훈은 부드럽게 하연진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문 앞에 서 있는 심민아를 보자 마음속에 짜증이 올라왔다.
그 짜증은 혐오감으로 변해 숨김없이 얼굴에 드러났다.
"거기 서서 뭐하는 거야?" 심민아는 문 앞에 서서 안에서 달콤하게 붙어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순간 눈이 부셨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재훈이었고, 그녀가 동경하던 이재훈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보다 보니 눈이 흐려졌고, 매우 아팠다. 마음은 죽은 재와 같았다.
이재훈은 하연진을 뒤에 숨기고 두 눈으로 노려보았다. 심민아의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보자 마음에 갑자기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의 눈썹은 꽉 찌푸려졌다.
"이제 깼으면 돌아가."
심민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밤에 돌아오실 건가요?" 이재훈의 눈빛에 담긴 경계심을 보며 심민아는 설명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 몇 년 동안 도대체 무슨 천인공노할 짓을 했기에, 이재훈이 도둑놈 막듯이 그녀를 경계하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은 모두 살로 되어 있다. 그녀가 비록 그를 하연진과 함께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들이 결혼한 4년 동안 그녀 심민아는 가정부처럼 그의 일상을 보살폈다.
비록 가정이 화목하고 결혼 생활이 원만할 순 없었지만, 이 몇 년 동안 그녀는 그와 하연진의 일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예전에 이재훈은 어느 정도 조심스러워했고, 몰래 만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후 심씨 가문이 밤낮으로 쇠퇴하여 영향력 있는 가문 랭킹 순위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이재훈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가 하연진과 대놓고 만나거나 몰래 만나는 일에 대해, 이런 것들을 그녀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냐고? 그럴 리가 있나?
이재훈과 함께하면서 심민아는 모든 것을 잃었다. 위암에 걸려 곧 죽을 처지가 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이어주어야 했다. 그녀 자신의 목숨도 거의 끝나가는데, 누가 그녀의 생명을 이어주려 했던가?
심민아의 마음은 순간 수천 개의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고통이 혈관을 따라 사지까지 전해져 손끝까지 떨렸다.
심민아는 이재훈의 명령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세월, 이제는 익숙해졌다. 처음의 환심 사기에서 지금의 조용한 자기 속박으로, 스스로 울타리를 그었다.
몸을 돌리는 순간, 심민아는 안에서 들리는 하연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심민아 씨가 이렇게 많은 피를 뽑아도 괜찮을까요? 얼굴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괜찮아, 원래 건강한 편이야."
보라, 이것이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였다. 정적조차도 그녀의 안 좋은 얼굴색을 알아챘는데, 그는 오히려 몰랐다.
이재훈은 무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업무상의 문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하연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가장 먼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독 6년을 알고 지낸 심민아에게는 한 점의 인내심도, 세심함도 없었다.
심민아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뒤돌아보지 않고 이곳을 떠났다. 밖의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걸어 돌아갔다. 가방에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이 젖었다. 심민아는 추위를 타는 체질이라 한기가 뼛속에서 배어나왔다. 원래도 연푸른 입술은 이제 추위에 갈라졌고, 까만 속눈썹에도 물방울이 맺혔다.
심민아는 추위에 머리가 아프고 눈이 부었다. 위까지 춥고 아파왔다. 그녀가 손을 뻗어 위를 감쌌는데 실수로 약지의 반지를 떨어뜨렸다. 심민아는 멍한 눈빛으로 그것을 쫓았다. 4년 동안 낀 반지는 이미 원래의 광택을 잃었고, 위에는 검은 녹까지 슬어 있었다.
그녀는 당시 이재훈과 혼인 계약을 맺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녀가 무심코 말했다.
"결혼하는 거니까 반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재훈은 그 말을 듣고는 길가에서 5000원을 주고 이 반지 하나를 사서 그녀에게 던졌다.
그는 비꼬듯 말했다.
"가져가. 네가 딱 이 정도 가치밖에 안 돼."
심민아는 그때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눈빛에는 말할 수 없는 황량함이 있었다. 반지는 한 치수 작았지만, 그녀는 강제로 손가락에 끼웠다. 약지가 빨갛게 되고 피가 났어도 계속 끼고 있었다.
심민아는 당시 고집스럽게 생각했다. 반지를 오래 끼고 있으면 언젠가는 맞을 거라고. 하지만 끝내 손가락에서 빠져나갈 줄은 몰랐다.
그와 이재훈의 감정처럼.
심민아는 폭우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위 속에서는 불이 타오르듯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급히 입을 막고 두어 번 헛구역질을 했다. 눈가가 붉게 아팠고, 눈물이 멈출 수 없이 흘러나왔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길가의 행인들은 하나둘씩 우산을 펼쳤다. 심민아는 땅에 쪼그리고 앉아 반지를 주워 가슴에 댔다. 위가 조금 나아진 것 같아서야 일어섰다.
그녀는 비 속의 유령처럼, 멍하니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심민아는 이 충돌로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여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상대는 젊은 여자와 어린 아이였고,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심민아의 붉은 눈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언니 울고 있어요." 여자는 아이의 머리를 토닥이며 심민아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고 아이를 데리고 갔다.
모녀가 등을 돌리자 심민아는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 소리를 들었다.
"저 언니 왜 울어요? 무서워서 우는 거예요?"
"다 큰 언니가 왜 무서워 하겠어." 빗소리가 내리는 가운데 심민아는 점점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심민아는 살며시 자신의 위를 감쌌다. 고개를 들어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무섭다고?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서 병원에 갈 때도 무서웠고, 위내시경할 때도 무서웠고, 의사가 따로 진단실로 불렀을 때도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불치병 진단을 받았을 때는 더욱 무서워서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고,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그녀가 더 두려운 것은, 곁에 아무도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