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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일 놈의 사랑

525.0K · 연재 중
Vanila.Love
236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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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9.0
평점

개요

심민아는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했다. 무려 16년 동안.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빈손으로 쫓겨나는 운명. 그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첫사랑을 위해, 그녀는 모든 걸 내줘야만 했다. 그녀의 위암 진단서를 받아든 순간,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왜…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네가 위암에 걸렸다는 걸…" 심민아는 조소를 머금은 채 미소 지었다. "당신은 내가 빨리 죽길 바랐잖아." 그녀의 말에, 이재훈은 숨이 턱 막혔다. "이재훈, 내 남은 생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고통스러운사랑애잔물애증분명소유욕/독점욕/질투재벌사기첫사랑

제1화 곧 죽을 목숨

"환자분, 가족분들은 함께 오시지 않았나요?"

심민아는 어리둥절했다. 단순히 검진 결과를 받으러 온 것뿐인데 누군가와 함께 와야 하는 걸까?

게다가 가족이라니, 그녀에게 무슨 가족이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그녀를 낳다가 난산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녀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겼으며, 오빠는 어머니의 죽음을 그녀의 탓으로 돌리며 죽도록 미워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그건 그녀가 빼앗아 온 것이었다. 만약 눈앞의 의사가 갑자기 이 두 글자를 꺼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가족'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잊어버릴 뻔했다.

심민아는 잠시 멍해진 후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예요."

의사는 눈썹을 찌푸리며 코 위의 안경을 밀어 올리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목소리에는 무력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검사 결과지 뭉치를 심민아에게 건넸다.

"환자분,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 말기입니다."

그는 마치 이렇게 젊은 나이에 불치병에 걸린 여자가 안타까운 듯, 말과 행동 모두 매우 조심스러웠다.

심민아는 숨이 막혔다. 그녀는 검사지를 받아들고 그 위의 각종 수치들을 찌푸린 채 보았다. 의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몸 속 위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는 알 수 있었다.

사실 위내시경을 할 때부터 어렴풋이 뭔가를 느꼈지만,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의사는 사진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설명했다. 심민아는 멍하니 듣다가 반은 놓쳤지만, 대충 자신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고 빨리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위암 말기 환자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심민아는 누구보다 이 병에 대해 잘 알았다. 할아버지가 바로 병상에서 2년을 고통스럽게 투병하다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호의적으로 제안했다.

"환자분, 되도록 빨리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제가 입원하면, 나을 수 있나요?" 심민아는 쉰 목소리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의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치료하지 않겠다고 말한 후, 심민아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진단서를 모두 가방에 넣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감사하다는 말을 한 뒤 몸을 돌려 진료실을 나왔다.

병원을 나오자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을 동반한 가랑비가 얼굴에 닿자 칼로 베는 것처럼 아팠다. 심민아는 가방을 열어 우산을 꺼내 펼쳤지만, 비가 비스듬히 내려 우산으로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3월의 기온이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심민아가 느끼는 추위는 뼛속에서부터 배어나오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한기가 혈관을 타고 사지 뼛속 깊이까지 퍼져나갔다.

손가락이 얼어 붉어졌다. 그녀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어 옷 주머니에 넣었지만, 아무리 감싸도 따뜻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심민아는 목적 없이 걸었다. 그녀는 약지의 반지를 돌리며 먹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용성의 날씨는 정말 빨리도 변했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어느새 봄이 왔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야 했는데, 왜 그녀에게는 죽음이 찾아온 것일까?

심민아는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길가에 멈추자 그녀는 천천히 우산을 접고 뒷문을 열어 몸을 낮춰 앉았다.

운전기사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반성 C구요."

심민아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얼마간 달리다가 심민아는 참지 못하고 가방을 열어 진단서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 속 위는 뒤틀리고 흉측해서, 그것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일부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그녀의 위암은 굶어서 생긴 것이었다. 이재훈과 결혼한 4년 동안,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가 돌아와서 가득 차려진 식탁을 보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감동받아 자신에게 조금은 따뜻하게 대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재훈은 아예 그녀와 식사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매일 밥을 해두고 제때 문자를 보내며 그를 기다렸다. 이렇게 기다리다가 사람은 오지 않고, 오히려 위암이 찾아왔다.

결국 눈물이 참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심민아는 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충분히 강하다고, 어떤 큰 풍파도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그녀가 꾸며낸 모든 강인함이 무너져 내렸다.

위가 계속해서 쑤셨고, 심민아는 몸을 웅크리며 떨었다.

꽉 다문 이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운전기사는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백미러로 뒤를 보았다. 여자가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있었고, 마른 등이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차 안의 공기마저 그녀가 앗아갈 것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한 사람이 이토록 절망적으로 우는 것을 보았다.

"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 실연이라도 당하셨나요, 아니면 직장에서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뒷좌석에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넘지 못할 고비는 없어요.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울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집에 가서 잘 쉬시고,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거예요." 심민아는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불치병 판정을 받은 후 그녀를 위로해준 사람이 낯선 이라니.

운전기사는 미소 지으며 말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반성에 도착해서 그는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30분 거리에 7300원이 나왔다. 심민아는 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려 손에 쥐고 있던 진단서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심민아는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을 닦고 다시 평소의 그 차분하고 파도 없는 성숙한 여인으로 돌아갔다. 다만 그녀의 눈가는 약간 부어있었고 얼굴에는 혈색이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