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두 얼굴을 하고 있네
이영란은 문연아의 기세에 압도당한 듯 했다.
자신이 알던 양처럼 순한 며느리가 정말 이 사람 맞나?
"하,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네가 지금껏 보여줬던 모습들은 다 연기였던 거지!"
이영란은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며 위협했다.
"오늘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내가 성현이한테 다 말해서 너랑 이혼시킬 거야! 네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비는 한이 있더라도 널 우리 집안에서 쫓아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문연아는 냉소를 짓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 맞다. 까먹고 말 안 했네요. 어머님, 10분 전에 저희 이혼했어요. 그러니까 어머님께서 저한테 무릎 꿇고 빌어도 윤 씨 집안에 발 한 발짝도 들일 생각 없으니 걱정 마세요!"
이영란은 충격에 빠져 말을 잃었다. 이혼했다고? 이 촌스러운 년이 드디어 우리 윤 씨 집안에서 나간다고?
이영란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문연아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윤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너네 진짜 이혼한 거야?"
윤성현은 짧게 "응" 하고 대답하면서 이마를 찌푸렸다.
"방금 이혼 절차 다 끝냈어. 근데 누가 말해줬어?"
"누가 말해주긴, 내가 길에서 문연아를 봤거든. 그 썩을 년이 아까 나한테 막 소리 지르더라!"
이영란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지만, 문연아와의 이혼 소식을 듣고는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도 잘 됐네! 드디어 이혼했구나! 어디 보육원에서 굴러온 년이 감히 우리 아들과 어울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진작에 조용히 꺼졌어야지!"
윤성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머니 이영란의 흥분된 기분과 달리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알 수 없는 짜증과 죄책감이 그를 엄습했다.
처음엔 문연아가 쉽게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줄 알고 미리 5억 원의 보상금과 별장을 준비해두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이혼을 제시했고, 보상금조차 거부했다.
이제 이혼은 했지만, 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뭐, 길이 막막해지면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지.
* * *
문연아는 택시를 타고 윤성현과 함께 살던 작은 별장으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그녀가 지난 3년간 겪은 쓰라린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더는 그 기억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정원 앞을 지나 곧바로 짐을 싸기 위해 올라갔다. 짐을 다 정리한 문연아는 이곳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오자, 홀에서 아름다운 그림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신아린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문연아, 오랜만이야."
문연아는 잠시 멈칫했다. 신아린이 이곳에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들이 이혼하자마자 윤성현이 신아린에게 열쇠를 주었나? 벌써부터 함께 살 준비를 하려는 건가?
문연아는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띠고 우아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신아린은 문연아가 차분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문연아, 몇 년 만에 보니 이제야 좀 성현 씨 아내다운 티가 나네."
그녀는 입을 가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맞다, 내가 까먹었네. 너랑 우리 성현 씨랑 이혼했구나. 이제 성현 씨의 아내가 아니지."
신아린의 의도적인 도발을 알았지만, 문연아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쿨하게 웃음을 지었다.
"윤성현? 내가 가지고 놀다 질린 남자야. 네가 남이 쓰다 버린 걸 원한다면 가져. 다만 내연녀처럼 너무 저급하게 굴진 마."
문연아의 말에 신아린의 미소가 사라지고, 얼굴에 서서히 분노가 떠올랐다.
"나와 성현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 너만 아니었으면 우린 벌써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거야. 내연녀는 바로 너야, 문연아!"
문연아는 비웃는 듯 그녀를 흘깃 보며 말했다.
"누가 내연녀인지, 곧 알게 될 거야."
문연아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신아린을 지나쳐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손목이 확 잡혔다.
돌아보니, 신아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불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연아야, 미안해. 난 너를 가장 친한 자매이자 친구로 여겨서 보러 온 거야. 너희가 이혼한 줄은 정말 몰랐어. 진짜로 다른 뜻은 없어.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줘, 응?"
문연아는 비웃으며 "두 얼굴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신아린의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신아린은 그 힘을 이용해 연약하게 바닥으로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멀리서 보면, 문연아가 신아린을 세게 밀친 것처럼 보였다.
참 우스운 상황이었다.
문연아는 냉정하게 그 자작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윤성현이 돌아올 때가 되었고, 이 광경을 목격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역시나, 뒤에서 윤성현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뭐 하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