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제 더 이상 시중들지 않겠어
당시 의사는 고아라가 깨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에, 정강산은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 정강산은 줄곧 냉담했다.
유서연은 턱을 들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당신 아내잖아요. 그런데 무슨 권리로, 그녀가 돌아온다고 제가 이사를 나가야 하죠?"
정강산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눈동자 속 깊은 빛이 차갑게 일렁였다.
"무슨 권리로냐고? 아라가 말했어. 네가 6년 전 차로 그녀를 들이받았다고."
유서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그런 적 없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정강산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마침내 그녀를 벽 모서리까지 몰아붙였다.
그리고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네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
그의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안엔 갑작스레 솟구친 혐오와 경멸이 가득했다.
"당신 같은, 속이 뒤틀린 여자한테는… 아라가 겪은 고통을 똑같이, 아니 수천 배로 돌려주고 싶어."
정강산의 얼굴엔 싸늘한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
유서연은 그의 눈빛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 아무리 돌덩이라도 이쯤이면 조금쯤은 따뜻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전 정말 그런 적 없어요."
유서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정강산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눈동자로 말했다. 그 눈빛엔 단 한 점의 온기도 없었다.
"당신은 똑똑한 여자니까, 뭘 해야 할지는 알겠지."
그가 돌아서 나가고, 방 안에는 싸늘한 적막만이 남았다.
유서연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하고, 지쳐 보였다.
이게 정말 내가 맞나?
자존심 하나는 누구보다 강했던 내가, 이런 사랑 앞에서 이렇게 비참해질 줄이야.
정말 웃기는 일이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녀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나 자신을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네..."
……
다음 날 아침, 정강산은 고아라를 데리고 병원으로 재검사를 받으러 갔다.
유서연은 거울 앞에 서서 6년 동안 입어온 앞치마를 벗고,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캐리어를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정강건은 다리를 꼬고 TV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말했다.
"야, 어디 가는데?"
유서연은 그를 담담하게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정강건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황급히 다가와 그녀의 캐리어를 붙잡으며 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 귀 안 들려? 내가 말하는 거 못 들었어? 방은 치웠어? 밥은 했냐고! 아침부터 어디 가려고 그래!"
열여섯 살인 그는 예의라고는 없었고, 형수인 유서연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으며 존중은커녕 제멋대로 명령하고 간섭하기 일쑤였다.
유서연은 차가운 얼굴로 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말했다.
"잘 들어, 이 못된 꼬마야. 오늘부턴 이 집안 사람들 더 이상 시중 안 들 거야."
그녀가 큰 힘을 쓴 것도 아닌데, 정강건은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엄마! 엄마 빨리 와봐! 이 미친 년이 나 때렸어!"
"왜 그래, 강건아!"
최숙경이 급히 내려오더니, 상황을 보자마자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리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먼지털이를 들고 유서연에게 휘둘렀다.
"세상에, 이 미친 년이 감히 내 아들을 때려? 맞아 죽어야 정신을 차리지!"
예전에도 이 늙은 여자가 자신을 때린 적이 없지는 않았다.
그때는 정강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았지만 이번에는...
유서연은 재빨리 먼지털이를 낚아채 바닥에 힘껏 내던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만 더 저한테 손대보시죠?"
순간, 최숙경은 그녀의 기세에 눌려 말을 잃었다.
정신을 차린 뒤에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유서연! 너 진짜 쥐약이라도 처먹었어!? 당장 내 아들한테 너랑 이혼하라고 할 거야!"
예전 같았으면 시어머니 눈치도 보고, 정강산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늘 조용히 넘어갔을 것이다.
그땐 두려웠지만, 이제는 아니다.
유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뒤에서 누가 뭐라든, 누가 소란을 피우든 신경 쓰지 않고,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조용히 그 집을 떠났다.
밖에는 빨간 페라리가 서 있었고, 차 안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잘생긴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기야~ 얼른 타."
유서연은 조용히 차에 올라탔고, 두 사람은 그렇게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