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남편의 냉담함
해천시 섣달 초, 평소 이맘때쯤보다 훨씬 추웠다.
유서연은 무표정하게 소파에 웅크린 채,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시어머니 최숙경의 고함을 듣고 있었다.
"유서연! 애도 못 낳으면서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밥을 안 해!? 나랑 강건이를 굶겨 죽이려고!?"
남편 정강산과 결혼한 지 6년, 시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알 못 낳는 암탉이라고 욕해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까, 남편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는 걸.
"아 씨, 빨리 내려와서 가방 정리 좀 해! 나 학교 가야 한단 말이야!"
소년의 재촉이 이어졌다. 정강건, 정강산의 동생으로, 골칫덩이 남자애였다.
처음부터 유서연을 제법 괴롭혀왔고, 그의 눈에 형이 데려온 형수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만만한 존재였다.
유서연은 무표정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기계적으로 부엌에 들어가 밥을 짓고, 시동생의 가방과 도시락을 챙겼다.
"어머님, 밥 다 됐어요."
최숙경은 유서연의 시체 같은 얼굴만 봐도 분이 치밀었고, 물컵을 탁자에 쾅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유서연, 이젠 배짱도 늘었네? 내 아들 돈 쓰고, 내 아들 집에서 살면서, 감히 나한테 표정 관리 하나 못 해? 당장 강산이한테 전화해서 이혼하라고 할까?"
유서연의 손에 들린 식기가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 그런 뜻이 아니에요."
하지만 최숙경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듯 말했다.
"유서연, 할머니가 뒤에서 좀 밀어준다고 해서 네가 정말 우리 정씨 집 사모님 자리에 앉을 수 있을 줄 알아? 아라 앞에서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 이름이 들리는 순간, 유서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정강건은 눈을 굴리다 뭔가를 눈치챈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풋, 아직 몰랐구나? 아라 누나 곧 퇴원한대~ 우리 형이 아라 누나 집으로 데려와서 우리랑 같이 살 거야."
유서연의 눈꺼풀이 떨렸고, 식기를 들고 있던 손이 가늘게 흔들렸다.
최숙경은 유서연이 억지로 억울한 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코웃음을 치며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마! 식욕 떨어지니까 당장 꺼져!"
유서연은 더 머물지 않고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가, 다시 소파에 웅크렸다.
저녁 무렵, 마이바흐 한 대가 집 앞에 멈췄다.
유서연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발코니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준수한 외모에 기품까지 더해져, TV 속 스타보다도 더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그 남자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유서연과 눈을 마주쳤다. 차갑고 무정한 눈빛이었다.
유서연은 그런 시선에 익숙했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웃음기는 없었다.
정강산이 방에 들어온 뒤, 유서연은 평소처럼 그를 위해 목욕물을 받아두었다.
"여보, 할머니께서 절에 가신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요. 오늘 오후에 전화 오셨는데, 당신을 위해 부적을 구하셨다고..."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
정강산이 분주히 움직이던 그녀를 불러세웠다.
유서연이 돌아보자, 그는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엔 담담함과 거리감만 있을 뿐, 따뜻함은 전혀 없었다.
얇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며 그가 침착하게 말했다.
"고아라가 돌아올 예정이야. 넌 내일 짐 싸서 이사 나가."
유서연의 마음이 조금씩 차가워져 갔다.
역시 정강건이 한 말이 맞았다.
"만약 제가 싫다면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워서, 마치 한 줌의 아련한 연기처럼 흩어질 듯했다.
정강산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늘 고분고분하던 여자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거스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단번에 차가워졌다.
"6년 전, 네가 어떻게 나랑 결혼하게 됐는지 잊지 마."
하지만 유서연이 어찌 그걸 잊을 수 있겠는가.
그날, 고아라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119에 신고한 것도, 수혈해준 것도 바로 자신이었다.
그 일로 정강산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때 유서연이 요구한 건 단 하나였다. 바로 그와 결혼하는 것.
그건 고등학교 시절, 정강산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속 깊이 자라난 바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