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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가 내 임신을 알았다

만약 운이 좋았다면, 친절한 운전자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늦게 몰아치는 바람과 폭우 속에서 작은 우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옷은 이미 다 젖어 버렸다.

운이 나쁘게도, 한참을 걸었지만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더구나 몸속으로 스며든 한기가 배에 통증을 몰고 왔다.

몇 발짝 걸었을 뿐인데 배가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나는 결국 길가에 멈춰 앉았다.

비는 더욱 거세졌고,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찾으려 했지만, 아마 차에 두고 내린 것 같았다.

이미 멀리 나와 있는 상황에서 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다시 걸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가까운 전봇대를 붙잡고 겨우 일어서려 했지만,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에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이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차가 멈추는 소리.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 귀에 엔진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간에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색 지프 차량.

차 번호판 ‘ACL999’.

박건태.

이름 석 자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가 왔다는 사실에 가까스로 힘을 내 일어서려 했지만,

오래 앉아 있었던 탓에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눈앞이 핑 돌며 나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멍청한 여자가!"

그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이나 눈을 뜨려 했지만 힘이 빠져 계속 감겼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그가 나를 안아 차에 태운 것뿐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

사방이 하얗게 보였고, 주변이 또렷해질 무렵 병원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을 살짝 움직였더니 통증이 밀려왔다.

너무 아파서 반사적으로 배에 손을 댔다.

"걱정 마요. 아이는 괜찮아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정이호가 서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하며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겨우 입을 뗐다.

"어……"

‘여긴 왜 있는 거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컵을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를 반쯤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의 손길에 저항하며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려 했지만,

그는 내 움직임을 무시한 채 물컵을 내 입가에 가져왔다.

"마셔요."

그의 단호한 말에 나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몇 모금을 넘기자 목이 조금 나아졌다.

다시 침대에 눕힌 그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던 끝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건태 씨가… 아이에 대해 알고 있어요?"

어젯밤 분명 박건태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왔을 터였다.

정이호가 아이에 대해 알고 있다면, 박건태도 알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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