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앞으로 내가 먹여 살릴게

"당신이 내 의도를 의심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내가 서약서를 쓸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이혼할 때 변호사랑 촬영팀까지 불러서 전 과정을 촬영해도 좋아요. 내가 자발적으로 이혼했다는 걸 기록하세요. 난 당신한테 한 푼도 요구하지 않을 거예요."

주연준은 입술을 살짝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별이는 그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내가 이혼을 빌미로 언론에 나가서 당신이나 주씨 가문을 모함할까 봐 걱정돼요? 그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맹세할게요. 내가 이혼을 이용해서 단 한 푼이라도 챙기려 하면, 그날로 천벌을 받을 거예요."

잠시 후, 주연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이별이는 기가 막혀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당신은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설마 집에 부인 하나 두고, 바깥에 여자도 계속 두겠다는 거예요? 난 죽어도, 남의 애 키우는 일은 절대 못 해요."

그녀의 말에 주연준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더니,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저 표정은, 네가 감히 누구를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냐 라는 조롱이었다.

하지만 이별이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다시 말했다.

"정말로..."

그 순간, 그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내일 출장 가야되니까, 돌아와서 얘기하자."

그 말에 이별이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활짝 웃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얼마든지 기다릴게요. 그러니까 돌아오면 꼭 연락 주세요."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지자, 주연준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일주일이 금세 흘러갔다.

이별이는 완성한 디자인을 임사호에게 제출했다. 그리고 그날 밤, 바로 승인이 떨어졌다. 사장님이 바로 통과시켰고, 내일 계약을 하러 오라고 했다.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디자인이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SG 주얼리 매거진 측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시리즈의 콘셉트는 정해졌지만, 디자이너가 결정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별이가 합류하며,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마침 한 달 뒤가 SG의 창립 기념일이었고, 그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자체 브랜드 론칭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번 시리즈는 총 세 가지 주력 제품이 있었고, 그녀가 이번에 디자인한 목걸이 외에 나머지 두 개의 주력 제품은 팔찌와 반지였다.

디자인 스케치가 승인되면, 세부 조정을 거쳐 최종 제품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솔직히 말해 너무 촉박했다.

이번 발표회를 망치지 않기 위해, 이별이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매일 집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보석 재료를 고르는 일까지 직접 챙겼다.

그녀는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완성해야 했고, 발표회가 끝나면 공장에서 생산해 출시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주연준과 약속했던 이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가 언제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쨌든, 그는 다시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방금까지 작업하던 펜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던 순간, 탁자 위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윤복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임을 확인했다.

이별이는 미간을 찌푸렸고 전화가 두 번째 울렸을 때야, 마지못해 받았다.

"별이야, 네 동생 내년에 대학 입시잖아. 담임 선생님이 보충 수업은 꼭 들어야 한다더라. 돈이 좀 부족한데, 네가 좀 보내 줘라."

"얼마나 필요한데?"

"보자... 요즘 보충 수업이 얼마나 비싼데. 일단 4천만 원 정도 보내 줘라. 남으면 학비로 쓰게."

이별이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첫째, 양이는 올해 대학 입시야. 둘째, 전국 1등을 한 애가 보충 수업이 왜 필요하겠어. 셋째, 보충 수업비로 4천만 원이 드는 학원이 어디 있는데?"

이윤복은 그녀가 단박에 거짓말을 들춰내자, 짜증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따질 게 뭐 있어! 그냥 보내 주면 되는 걸!"

"돈 없어."

"그럼 네 남편한테 받아 오면 되잖아! 그 사람한테 4천만 원이야 말 한마디면 나올 돈 아냐?"

"누구든 돈이 어디 땅파면 나오는 줄 알아? 그리고, 그 사람 돈은 나랑 상관없어. 우리 이미 이혼했어. 그러니까, 내가 그의 돈을 받을 이유도 없어."

"뭐라고?!"

전화기 너머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누가 허락받고 이혼했어? 내 허락은 받았냐고?! 이혼했으면 최소한 재산의 반은 받아야지! 넌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이제 네가 돈 좀 번다고, 네 아비까지 버릴 참이야? 당장 4억 원 보내! 안 그러면 두고 봐!"

이별이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 단 한 푼도 줄 생각 없어."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양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윤복 그 인간이 누나한테 돈 요구했지? 무슨 소리 하든 절대 주지 마. 그 인간 또 도박했어. 지금 몇 천만 원 넘게 빚지고 숨어 다니는 중이야."

이별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고 있어. 안 줬어."

이미 몇 년 전, 그녀가 2억 원이 넘는 빚을 대신 갚아줬을 때, 그녀는 앞으로 또 도박해서 문제 생기면, 죽든 살든 내 알 바 아니니까 다시는 날 찾지 마라고 이미 못 박아 두었다.

하지만 이윤복이 그렇게 쉽게 달라질 리가 없었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그녀에게 돈을 요구해왔다.

어떤 날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수술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날은 이양이가 싸움이 붙었는데 합의 안 하면 학교에서 퇴학당할 거다 라고 협박했다.

그는 이별이가 자신은 버려도, 이양이만큼은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이양이도 두어 번 속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가 어떤 말을 해도, 무감각해질 정도였다.

이별이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물었다.

"어느 대학 갈지 정했어?"

"응, 정했어."

이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양이야, 해외로 갈 생각은 없어? 나한테 아직 조금 돈이 있으니까, 유학 보내는 건 가능할 거야. 게다가 너라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거고..."

그녀는 이양이를 떠나보내고 싶었다. 이윤복과 멀리 떨어지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양이는 단호했다.

"아니, 난 그냥 여기 있을래. 어디도 안 가."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 필요한 돈 있으면 말해."

"아냐, 난 내가 벌어서 쓸 거야."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 인간은 요즘 누나한테 잘해줘?"

주연준을 언급하자, 이별이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응, 괜찮아."

그리고 잠시 침묵한 뒤, 덧붙였다.

"이양이, 나 그 사람이랑 이혼할 거야."

그 말에 이양이는 아주 잠시 침묵했다. 그다음, 별다른 감정 없이 말했다.

"잘됐네. 앞으로 내가 누나 먹여 살릴게."

이별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손발 멀쩡한데, 네가 나를 왜 먹여 살려? 넌 공부나 열심히 해."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오자, 배두연이 소파에 웅크린 채 창백한 얼굴로 축 처져 있었다.

이별이가 다가가면서 물었다.

"두연아, 너 괜찮아? 어디 아파?"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리통...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이별이는 주방으로 가서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주었다.

"이대로는 안 돼. 나가서 꿀물이랑 찜질팩 좀 사 올게.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그 말에, 방금 전까지 힘없던 배두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열정적으로 음식을 주문한 후, 다시 소파에 쓰러지듯 누우며 말했다.

"별아, 넌 최고야. 그 개자식이 널 안 사랑하는 거, 진짜 눈이 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