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날벼락처럼 주먹이 날아왔다
잠시 후, 주연준은 임남철을 불렀다.
"진성오한테 가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임남철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방을 나섰다.
주연준은 단순히 이별이가 돈이 필요해서 함정을 판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이전에도 무언가 더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만약 이별이가 에버영 디자이너 컨테스트의 후원사가 주씨 가문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건 절대 우연이 아닐 터였다.
한편 트와일라잇 클럽 직원 휴게실, 몇몇 직원들이 교대 근무를 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야, 아까 나 트와일라잇에 서서아 온 거 봤어. 요즘 여기 엄청 자주 들락거린다?"
"오늘 여기 누가 오는지 생각해 봐. 그 여자가 안 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다른 직원이 맞장구쳤다.
"며칠 전에 클럽 입구에서 난리 친 거 봤냐? 서서아 진짜 대단하더라. 주 회장님 아이를 가졌다고 하더니, 대놓고 주 회장님 부인 앞에서 잘난 척을 하더라고. 완전 소리 지르면서 '나 임신했어요!' 하고 광고하던데, 저러는 거 보면 완전 노리고 하는 거잖아?"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살짝 멈췄다.
"그래도, 누구 애를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주 회장님 아이를 가졌으면, 무조건 주씨 가문에 들어가려고 난리 치겠지."
"근데 웃긴 건 말이야, 주 회장님이 맨날 여기서 강안석 같은 사람들하고 어울려도, 정작 부인은 한 번도 데려온 적이 없잖아?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냐?"
"그거 모르는구나? 주 회장님 부인, 그 사람도 결혼할 때 별의별 짓 다 했대. 전에 일하던 매니저가 그러는데, 원래 트와일라잇 클럽에서 일하던 여자였대. 그러다 무슨 수를 써서 주 회장님 침대로 들어갔고, 결국 임신해서 결혼까지 끌어낸 거라더라. 근데 얼마 안 가서 그 애가 없어졌다고 하더라고?"
"맞아, 나도 들었어. 게다가 주 회장님이 그 여자 엄청 싫어한다면서? 결혼한 지 3년 됐는데도 애가 없잖아. 보통 재벌가는 혈통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 서서아가 임신했다잖아? 봐봐, 이제 부인 자리도 위험하겠네."
쾅! 갑자기 라커의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휴게실에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눈빛을 한 소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방금 수군거리던 직원들을 냉랭하게 훑어본 후,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가 사라지자 직원들 중 한 명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뭐야, 별것도 아닌 게 왜 저렇게 신경질이야?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냥 알바 주제에 매니저한테 예쁨 좀 받는다고 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냐?"
"근데 너 몰랐어? 쟤 올해 성적 1등했대.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잖아. 조금 잘난 척하는 것도 이해해야지."
이양이는 바 안으로 걸어갔고, 매니저가 주연준 일행에게 보낼 술을 준비하는 걸 보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말했다.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마침 다른 직원이 배탈이 난 상태였다.
"그래, 근데 주 회장님 오늘 기분 별로 안 좋으시다니까, 조심해라. 술 놔두고 바로 나오기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이양이가 VIP룸의 문을 열었을 때, 서서아가 주연준 옆에서 그에게 몸을 기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탁! 그는 술을 테이블 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주문하신 술입니다."
예상치 못한 소리에 서서아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한동안 주연준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그가 트와일라잇 클럽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왔다.
그녀는 아직도 그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지난번 가짜 임신 사건이 들통났을 때, 그녀는 크게 혼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단순히 경고를 했을 뿐, 여전히 그녀를 곁에 두고 있었다.
이건 아직 희망이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밖에서는 사람들이 이미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 주연준이 진짜 애정을 가진 여자가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 장난감일 뿐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그녀는 반드시 무언가를 얻어내야만 했다.
이양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순간적으로 놀랐던 그녀는 다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 회장님, 술이 좀 과하신 것 같은데,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꺄악!"
그녀의 몸 위로 차가운 술이 쏟아졌다.
"너 뭐 하는 거야!"
서서아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이양이는 태연하게 테이블 위의 빈 잔을 집어 들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이 미끄러졌네요."
그녀는 분노로 치를 떨었지만, 눈앞의 웨이터가 의외로 꽤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화를 삭였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화장실로 가려 했다.
그러자, 옆에서 강안석이 흥미롭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젊은 친구, 왜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거야? 방금 다 봤어."
이양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네, 일부러 그랬습니다."
순간, 서서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주연준이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서서아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너 미쳤어?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냐고!"
이양이는 아무런 감정 없이 대꾸했다.
"꼭 잘못해야만 그쪽한테 시비를 걸 수 있는 거예요?"
"너!"
서서아는 너무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혔다. 얼굴이 붉어졌다가 파래지기를 반복했다.
그때, 소리를 들은 매니저가 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주 회장님, 서서아 씨, 정말 죄송합니다! 이 친구는 새로 들어온 알바생이라 아직 규칙을 잘 몰라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서서아는 흥분하며 소리쳤다.
"규칙을 몰라? 지금 저 녀석 표정 안 보여? 본인이 아까 뭐라고 했는지 들어도 그래? 자기가 일부러 그랬다잖아! 오늘 이 일, 확실하게 해결 안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서서아 씨. 전적으로 저희 잘못입니다."
매니저는 당황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고, 이양이를 옆으로 당기며 속삭였다.
"어서 사과해."
그러나 이양이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소파에 앉아 있는 주연준을 향해 있었다.
그 순간, 주연준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별다른 말을 남기지도 않고, 옆에 있던 강안석을 향해 무심하게 말했다.
"난 먼저 간다."
"주 회장님,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서서아는 그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초조해졌다. 그녀는 급히 따라가려 하다가, 발밑이 뭔가에 걸리며 균형을 잃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질 순간,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가 놀라서 고개를 들자, 술을 뿌린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서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를 넘어뜨린 것도 그였고, 그를 붙잡아 준 것도 그였다.
서서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양이는 그녀의 손을 냉정하게 밀어내고는 한마디도 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서서아는 그를 향해 소리치고 싶었지만, 주연준이 이미 떠나고 있는 것을 보고 곧장 그를 따라 나갔다.
VIP룸 바깥 복도에서 주연준은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이별이가 발표회에서 첫사랑을 회상했다는 말이 떠오르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첫사랑을 이야기하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결국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날벼락처럼 주먹이 날아왔다.
퍽!
몸이 반쯤 밀려나면서,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입술 끝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훔치며, 싸늘한 시선으로 눈앞의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