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태상황은 눈동자를 굴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원자윤은 그들이 여기 무릎을 꿇고 있는 이유가 태상황의 임종을 기다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들어왔을 때만 해도 태상황은 임종에 가까운 상태였고,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보니, 기력이 다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숨 쉬는 것도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아마 방금 태의들이 쓴 약물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태상황은 심장병이 있는 듯하고, 예전에 중풍을 앓은 적도 있었었지. 지금 이 상태를 보면, 아무래도 심부전이 온 것 같은데? 심부전, 호흡 곤란... 내 약상자에 도파민이 있긴 한데...’

원자윤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뒤섞여 복잡했다.

조금 전 개의 말소리를 이해했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제는 또 목숨이 걸린 중요한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그녀가 태상황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어줄 사람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그녀는 태상황이 눈앞에서 숨을 거두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컸다.

의사로서 이 상황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무릎을 꿇은 지 대략 15분쯤 지나자 그녀의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은 자세가 불편하고 경직되어 있었고, 몸이 마비된 것도 있었지만 상처를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원자윤은 몰래 옆에 있는 우문호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똑바로 무릎을 꿇고 있었고, 옆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으며, 온몸에 슬픔이 가득한 모습은 가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황실에 정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명원제와 태의원의 수태의(首太醫)는 밖으로 나가, 장막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자윤은 어렴풋이 몇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명원제는 태상황의 상태가 호전된 것을 보고 약을 다시 투여해야 하는지 수태의에게 물었고, 하지만 수태의는 이것이 죽기 직전에 잠깐 기운이 돌아오는 증상, 즉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답하며, 아마도 앞으로 한 시간 내에 곧 임종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원제가 다시 들어왔을 때, 사람들에게 금색 장막을 내리고 그 밖의 청색 장막도 내리게 명한 뒤, 무거운 목소리 말했다.

“너희들, 앞으로 나아가 황조부께 문안 인사를 드리거라.”

태후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온몸이 무력하고 애처로워 보였고, 황후가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태후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태상황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있어 태상황은 거의 평생을 함께 보낸 사람이었다.

태후는 장막 밖으로 나가도록 권유받았고, 황제가 그녀를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태후는 자리에 앉자마자 거의 기진맥진한 듯 보였다.

첫 번째로 안으로 들어간 것은 예친왕(睿親王) 부부였다.

예친왕은 태상황의 적자이자, 명원제와 동복형제이고 태후의 소생이었다.

두 사람은 들어가서 태상황에게 절을 올리고, 두어 마디를 나눈 뒤 물러났다. 나올 때는 눈가가 붉었으나,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다음으로 들어간 것은 보친왕(寶親王) 부부였다. 그들 역시 몇 마디를 나누고 나왔는데, 아마 태상황에게 안심하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원자윤의 머릿속에서는 빠르게 계산이 돌아갔다. 매 사람마다 안에 머무는 시간이 대략 3분 정도였다. 만약 태상황에게 도파민을 정맥 주사로 투여한다면, 심부전에 맞춰 용량과 속도를 조절해야 하니 최소한 5분은 필요할 것이다.

즉, 안에서 5분을 버틸 수만 있다면 약을 투여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할까, 말까? 구한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구하지 않으면, 그건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이 문제에 대해 그녀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의사에게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곤란한 문제는 우문호와 함께 들어가야 하는데, 그는 자기가 약을 투여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소리를 내거나 방해한다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최면을 걸까? 마취약을 쓸까?’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최면은 불가능하다. 그녀는 최면술에 능하지 않았고, 그저 어깨너머 조금 배운 정도였다.

‘마취약... 약상자에 있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소매 주머니에서 약상자를 꺼내, 넓은 소매로 가린 채 상자를 열어 안을 뒤져보았다. 맨 아래에는 작은 병으로 된 케타민 마취제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그녀의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