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태상황의 병세
그녀는 이미 현실과 꿈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자윤은 손을 떨면서 약 상자를 침상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 순간 약 상자가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졌다.
몇 초간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손을 뻗어 침상 아래를 더듬었지만 약 상자는 정말로 사라져 있었다. 몸이 떨렸다. 침상 위로 천천히 올라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은 이미 그녀의 인지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들뿐이었다. 그녀의 전공 지식이나 보통의 상식으로는 설명되지가 않았다. 미지의 사건과 조우한 사람은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원자윤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냉랭한 한기가 사방에 퍼졌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힌 머리채에서 고통이 전해왔다. 동시에 그녀는 침상 아래로 내동댕이 쳐졌다.
“감히 꾀병을 부려? 당장 죽기 직전이 아니면 입궁할 준비나 하는 게 좋을 거야.”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흩어졌다. 그는 다시 한 차례 거칠게 뒤집혀 내동댕이쳐졌다. 등이 바닥에 세게 닿아 온 몸이 떨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초왕이 그녀의 턱을 한 손으로 붙들었다. 마치 덫에 강하게 물린 것과 같이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눈빛이 초왕의 분노 어린 시선과 맞닿았다. 초왕의 얼굴은 숨길 수 없는 경멸로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경고하겠는데, 또 무슨 수작을 부리거나 태후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면 너를 죽여버릴 것이다.”
원자윤은 고통이 극심하게 몰려와 화가 날 지경이었다. 사람 목숨을 이렇게 파리 목숨 다루듯 한다고? 이렇게 심하게 매질해놓고 가만 놔 두지도 않다니.
그녀는 사력을 다해 초왕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잡아당겨 몸을 일으키면서 그의 얼굴로 와락 달려들었다. 얼굴에 세게 박치기나 날려 일격을 가할 작정으로 머리를 날렸다. 우문호는 그녀가 달려들어 반격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해 순간적으로 피할 수 없었다. 검은 머리통이 그에게로 날아오자 속절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한 대 얻어맞은 초왕의 시야가 잠깐 캄캄해져 혼미해졌다.
원자윤 역시도 거의 기절 직전이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몰아붙였다. 아직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그의 손등을 무릎으로 밟고 그의 위로 올라탔다. 입가에 흐르는 핏방울이며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 위로 흩뿌리듯 떨어졌다. 그녀는 거의 미친 듯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아무리 제가 잘못한 게 있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요?”
그가 원자윤의 뺨을 올려붙였다. 머리가 순간 한 쪽으로 기울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 시야가 흐릿한 와중에 기 상궁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외쳤다.
“왕야, 그만 하시옵소서!”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또 한 차례 뺨을 후려갈겼다. 분노를 한 바탕 쏟아낸 뒤에야 그가 원자윤 등 뒤에 배어난 피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왕비의 상처를 치료하고 옷을 갈아입혀라. 상처를 꽉 묶고 자금탕(紫金湯)을 마시게 하면 반나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서는 금실로 수 놓은 초왕의 검은 비단 장화가 침상으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졌다. 원자윤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녹아가 울먹였다.
“곤장 서른 대를 맞으셨는데, 왕야께선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서 따뜻한 물과 자금탕을 달여 내와라.”
기 상궁이 침착하게 명령했다.
피로 말라붙은 옷을 떼어 잘라낼 때 원자윤은 고통으로 온 몸을 떨었지만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녀의 목구멍에 불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상처를 씻어내고 피를 닦고 약을 바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그녀는 묵묵히 견뎌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깨어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원자윤은 녹아가 조용히 묻는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로 자금탕을 들일까요?”
“들여라. 그게 없으면 왕비를 살릴 재간이 없다.”
기 상궁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자금탕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왕비를 부축해라.”
물에 젖은 솜처럼 힘이 빠진 원자윤은 입 안으로 따뜻하고 쓴 액체가 흘러드는 것을 느꼈지만 거의 삼키지 못했다.
“드셔야 합니다. 드시면 나아질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셔야 했다. 원자윤은 숨을 길게 내뱉으며 약을 받아마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