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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반격

19.0K · 완결
윤설록
11
챕터
853
조회수
9.0
평점

개요

"나… 임신했어." 남편 강재현의 의붓여동생 권세연이 불룩한 배를 감싸 줜 채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첫마디가 그거였다. 강재연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권세연을 집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는 내가 정성껏 꾸며 두었던 아기 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라야, 네가 좀 이해해. 세연은 지금 보살핌이 필요해. 좀 참아." 나는 권세연이 내 삶 속으로 벌컥 들어오는 걸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조금씩 선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강재현의 머리를 정성스레 말려 주고, 한밤중이면 우리 침실 문을 두드려 "악몽을 꿨다"며 들어오려 했다. 강재현은 그런 권세연의 전적인 의존을 은근히 즐겼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끼어든 사람,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갔다. 결국 나는 더는 참지 않았다. "우리, 이혼하자. 그리고 너희 둘 다 내 집에서 나가."

현대물도시/현실복수사이다감정결혼정부결혼생활재벌남

제1화

"나… 임신했어."

그 말과 함께 내 남편 강재현의 의붓여동생인 권세연이 배를 감싸 쥔 채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강재현은 권세연을 집 안으로 들이며 당연하다는 듯 방을 비워주라고 했다.

"세연이는 지금 보살핌이 필요해. 서라야, 좀 이해해."

그렇게 권세연은 내 삶 속으로 밀고 들어왔고,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애의 행동은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 강재현의 머리를 말려주겠다고 나서고, 한밤중에 악몽을 꿨다는 핑계로 우리 침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려 하고, 강재현은 그런 권세연의 의존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해서, 정작 이상한 사람은 내가 되어 갔다.

결국 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이혼해! 둘 다, 제발 이 집에서 나가줘!"

……

"나… 임신했어."

권세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울먹이며 붉어진 눈가, 그리고 지난달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 강선우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터뜨린 또 하나의 폭탄 같은 소식이었다. 강재현은 순식간에 권세연을 끌어안아 꼭 감싸 안으며 마치 소중한 것을 지키듯 말했다.

"세연이는 여기서 지낼 거야. 내가 책임지고 챙겨야 해. 세연이는 내 동생이야."

나는 얼굴을 굳힌 채 그를 부엌 구석으로 끌고 가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집에 빈 방이 없단 말이야."

결혼 후 우리가 정성 들여 꾸민 작은 투층 빌라인데, 넓지 않아도 아늑하고 특히 2층 침실은 내가 석 달 동안 벽지부터 아로마 디퓨저, 아기 침대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꾸민 공간이었다.

"그럼 부모님 댁으로 보내자."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세연이 친어머니계시잖아. 돌보려면 그게 더 맞아."

강재현은 이미 반박할 준비가 된 얼굴이었다. "우리 새어머니 나이가 많아서 임산부를 돌보는 건 무리야. 게다가 곧 유럽 여행도 가신다는데."

"그러니까 우리 집엔 방이 없다니까." 내가 다시 말하려던 순간,

"애기방 치워." 강재현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너 그렇게 노력해도 아직 임신도 안 됐잖아. 어차피 비어 있는 방이야."

그 말이 얼음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햇빛이 쏟아지는 부엌에 서 있었는데도 몸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강재현은 다시 권세연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럽게 달랬다.

"괜찮아, 서라가 잠시 화난 것뿐이야." 그러면서 내 모든 억울함과 상처를 단순한 '투정'으로 치부해버렸다. 권세연은 겁먹은 듯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럼… 그냥 부모님 댁으로 갈까… 내가 민폐면…"

그 애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터무니없는 사람은 나 하나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권세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 완전히 들어왔다. 그때부터 강재현과 나는 말만 섞어도 냉기가 흐르는 냉전 상태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권세연에게 괜히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임신한 몸에 여린 얼굴, 뭐 하나에도 고맙다며 내 팔을 붙들고 "언니가 제일 잘해줘요."라고 말하는 애였기 때문이다.

식탁에서는 아예 강재현 편을 들었다.

"언니, 오해하지 마세요. 재현 오빠가 그런 건 저 때문이에요. 저 혼자 있는 게 걱정돼서 그래요… 선우 씨도 없고, 제 배엔 아기까지 있으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면 미운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밤, 나는 권세연이 '오빠 머리를 말려주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강재현은 막 샤워를 마친 참이었고, 허리에 수건만 느슨하게 둘러 물방울이 탄탄한 몸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뒤에서 권세연은 수건을 들고 천연덕스럽게 서 있었다.

"언니, 화내지 마세요. 오빠 결혼하기 전엔 제가 늘 이렇게 말려줬어요."

그 아이는 순진한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나는 얼굴이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고,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서서히 치밀어 올랐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밤이었다. 천둥소리에 잠이 깨 보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강재현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일어나 침실 문을 아주 살짝 열자, 복도 끝에 서로에게 기대어 선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권세연은 겁먹은 새처럼 강재현 품에 파고들어 작게 떨며, "무서워…"라고 중얼거렸다.

강재현은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내가 있잖아."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권세연을 방까지 데려다준 뒤 돌아왔는데, 몸에서는 권세연이 사용하는 은은한 자스민 향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속이 확 뒤집히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날 이후, 권세연은 악몽을 핑계로 매일 밤 강재현을 불러댔다. 처음엔 한 시간, 그다음엔 두 시간, 길게는 한밤중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한편 권세연의 입덧은 심해서 먹는 것마다 토해냈고, 강재현은 그 책임을 내게 돌렸다.

"왜 이렇게 비위생적으로 음식을 해? 일부러 세연이를 골려 먹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는 그런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권세연은 우리가 언성을 높이기만 하면 겁먹은 토끼처럼 움츠러들어, 두 사람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언니 잘못 아니에요, 다 제 잘못이에요…"라고 나섰다.

그러면 강재현은 어김없이 그 애를 다정하게 달랬다.

"세연아, 너는 아무 잘못 없어."

강재현이 나에게 보이는 태도와 권세연에게 보이는 태도는 극과 극이었다.

그 차이가 내 마음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식혀 갔다.

결혼한 지 5년 동안, 나는 강재현이 원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모든 걸 바꿨다.

일을 그만두라 해서 커리어를 내려놓았고, 아이를 원한다 해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불안정함과 몸의 거부 반응을 견뎠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 연습해서 만들었고, 그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옷을 입고, 말투를 고치고, 행동을 다듬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었고, 그의 사랑을 얻어보겠다고 매 순간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무엇이었나.

하녀처럼 부려지고, 장식품처럼 무가치하게 버려지는 대접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이 끝난 듯 울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이혼하고 싶어."

길고 무거운 침묵 끝에 임태호는 조용히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하겠다는 거냐?"

나는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내가 강재현 믿을 만한 놈 아니라는 걸 진작 알았지. 걱정 마라. 강씨 그룹 절반은 내가 도와준 덕에 굴러가는 거다.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무너뜨릴 수 있어."

전화를 끊고 부엌 문을 나섰다. 그 순간, 거실로 들어오는 권세연이 보였다. 그 애는 강재현의 셔츠를 입고 의기양양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그 셔츠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