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알아냈습니다
그날 임지연은 그와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이가 아니면 누구의 아이란 말인가?
하유준은 가슴이 저릿해왔다. 만약 교통사고가 나던 그날, 임지연이 자신을 찾아왔더라면 지금 그녀는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차서운의 눈에는 하유준이 묵인하는 거로 보였고 가소로운 듯 썩소를 지었다.
“저 여자, 아직 젊어...”
“당신이 뭘 안 다고 그런 소리를 해?!”
하유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은 조금 빨개졌고 차서운은 임지연이 몸 간수를 못했다는 말을 하려는 걸 짐작했다.
이 나이에 임신을 했으니 그녀의 생활이 방탕했을 거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서운이 그녀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알기나 할까?
하유준은 차서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가 입은 슈트는 일반인의 연봉과 맞먹어 보였다.
“당신 같은 귀공자가 민간의 고충을 겪어봤어? 배를 곪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나 알아? 생활의 압박에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아냐고? 당신은 몰라! 당신은 지연이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몰라......”
임지연은 하유준을 잡고 그를 향해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동정 따위 필요 없었다. 단지 그녀는 열심히 노력하여 살아가며 엄마를 잘 돌보고 배속의 아이를 잘 돌보면 됐다.
“나 병원에 데려다줘요.”
임지연은 이제 더는 서 있을 힘이 없었다.
“그래.”
하유준은 몸을 낮춰 그녀를 안았다.
임지연은 조금 멍해진 차서운을 바라보며 하유준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미안해요. 저 일은 포기할 수 없어요. 그렇다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과 나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비밀로 할게요. 그쪽 얼굴에 먹칠할 일은 없어요.”
차서운은 미간을 찌푸렸고 그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임지연의 얼굴을 스쳤다.
‘이 여자......’
다른 사람들은 임지연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를 안고 있던 하유준만이 그녀가 지금 얼마나 떨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유준은 그녀를 안아 차에 태우며 위로하였다.
“걱정하지 마. 피가 안 났으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하유준은 제일 빠른 속도로 차에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서운은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는 하유준의 말을 되뇌고 있었다.
‘임지연한테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거야?’
그녀의 여러 행동들은 확실히 이상했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핸드폰을 꺼내 곽팔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지연 뒷조사를 좀 해봐.”
“어떤 부분 말씀이세요?”
“전부.”
말을 마치고 차서운은 전화를 끊었다.
“서운 씨.”
백소정이 레스토랑에서 달려 나오더니 그의 팔짱을 꼈다.
“임지연 씨를 회사에 들이지 않았다고 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예요? 잘못했어요. 나는 서운 씨를 너무 사랑해서......”
“아니야, 가자.”
그의 목소리와 표정엔 어떤 기복도 없었다.
감정을 너무 잘 숨기고 있어 누구도 진짜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백소정은 단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까 누구랑 통화한 거지?’
병원.
임지연은 수술실로 실려갔고 하유준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언제나 초조한 법이다. 걱정이 되었던 그는 수시로 수술실 쪽으로 들여다보았다.
한 시간 즈음 지나자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리고 임지연이 실려 나왔다.
하유준은 바로 다가갔다.
“선생님, 상황이 어떤가요?”
의사는 마스크를 벗었다.
“과로한 탓에 유산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휴식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다음에도 이렇게 행운스럽다는 보장이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하유준은 임지연의 침대를 밀고 병실로 향했다.
임지연은 하유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항상 이렇게 도와줘서.”
하유준은 항상 그녀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었다.
“네가 괜찮다니 다행이야.”
하유준은 언제나 그렇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병원비는 나 대신 오빠가 먼저 내준 거죠. 일단 오빠한테 빚지고 있어야겠어요.”
임지연은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너, 지금 휴식이 필요해.”
하유준은 그녀가 자신과 이렇게 내외하는 게 싫었다.
병실에 도착하고 임지연은 그를 바라보았다.
“엄마 좀 불러줘요.”
그녀는 하유준을 번거롭게 하기 싫었다.
하유준은 그녀가 장승희가 보고 싶은 줄 알았다. 사람은 항상 아플 때 가족이 곁을 지켜주길 바라니까.
그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장승희에게 전화를 걸어 임지연이 지금 병원에 있으니까 오라고 전했다.
장승희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연이가 어디 아파요?”
“아무 일 없어요. 그냥 휴식이 필요할 뿐이에요. 지금 어머니가 보고 싶대요.”
장승희는 그제야 한시름 놓고 제일 빠른 속도로 병원으로 향했다.
장승희가 오자 임지연은 하유준에게 먼저 가라고 하였다.
“그래요. 하유준 선생한테 신세를 많이 졌어요.”
장승희는 미안해하며 하유준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럼 오늘은 먼저 가볼게요. 내일 또 보러 올게.”
하유준은 임지연을 바라보면 말했다.
“잘 쉬고 있어.”
“네.”
하유준이 가자 장승희는 침대 옆에 앉으며 임지연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임지연은 머리를 흔들었고 낯빛은 좋지 않아 보였다.
장승희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지연아, 너는 아주 창창한 미래가 있을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학업도 포기하고 지금은......”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장승희의 마음은 저릿저릿 아팠다.
“A국에서 생긴 아이라며. 만약 아이가 노랑머리에 파란 눈이면 어떡하려고?”
장승희는 그날 밤의 사람이 현지인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어떻든 내 아이고 엄마 손주야.”
임지연은 애써 그날 밤의 일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은 그녀에게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A국?”
차서운은 임지연을 보러 병원에 왔고 문을 두드리려고 했으나 장승희가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고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대화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응. 네가 낳은 아기의 피부가 하얗든 노랗든 다 내 손주야.”
장승희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딸만 행복하다면 모든 걸 다 그녀의 뜻에 따르고 보살피려 하였다.
정말로 이 아이와 임지연의 연이 닿았을지도 모르니.
그 한 번만으로 생긴 아이이니 말이다.
장승희는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고 마음이 저릿해났다.
“우리 딸, 이 엄마 따라서 고생이 많다.”
‘아이를 안 지웠어?’
차서운은 임지연이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병원에서 그녀는 분명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말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그는 방해할 수 없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병원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보니 곽팔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저한테 알아보라고 하신 일 알아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