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결혼 7주년 날, 남편 찰스는 내게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의 목소리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기가 실려 있었다. ""에리카, 넌 몰라, 난 그녀를 사랑해, 구제불능일 만큼."" ""그래도 넌 내 아내야. 언더월드의 대모지. 난 그녀에게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해. 난 그저 내 마음 한자리에 그녀를 남겨 두게만 허락해 줬으면 해.""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지 않았고, 그저 평온하게 선언했다. ""그 여자면 난 없고, 나면 그 여잔 없어."" 그날 밤, 독주를 멀리하던 찰스는 위스키를 밤새 들이켰다. 끝내 그는 마지못해 물러섰다. ""네가 비행기 표를 예약해. 목적지는 묻지 않을게. 내가 직접 그녀를 보내."" 그녀가 떠나기 전 한 달 동안, 그는 에블린과 함께 있는 시간을 유난히도 아꼈고, 언더월드의 회의와 일정을 전부 미뤄 버린 채 공원을 걷고 캠핑을 다니며 새벽이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 마,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어. 난 그냥 조금만 더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 한 달 사이엔 내 생일도 있었고, 우리의 결혼기념일도 있었고, 어머니의 기일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찰스, 너는 알고 있니, 사실 그 비행기 표로 떠나야 했던 사람은 에블린이 아니라 나였다는 걸."
제1화
시애틀의 비는 늘 때를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꼭 찰스가 오늘 밤 꺼내려던 말처럼.
네일 가문 저택의 서재에서는 벽난로 불이 지나치게 활활 타올라 내 뺨을 뜨겁게 달궜는데, 창가에 선 찰스의 뒷모습은 얼음 한 겹을 사이에 둔 것처럼 차가워 보였다.
"에리카." 찰스가 돌아섰고,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 평온함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나, 그 여자 사랑하게 됐어."
내 손에 들린 버번 위스키 잔이 살짝 흔들렸고, 호박빛 액체가 거의 쏟아질 뻔했다.
결혼한 지 일곱 해였고, 그 일곱 해 동안 찰스가 내게 이런 톤으로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누군데." 놀랍게도 내 목소리도 차분하게 나왔다.
"에블린, 새로 들어온 군수품 연락책."
찰스가 내 앞으로 다가왔고, 한때는 오직 나만 비추던 회청색 눈동자 안에서 낯선 광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잠깐 흔들린 것도 아니고, 그냥… 몸이 끌린 것도 아니야, 난 에블린을 사랑해, 구제불능일 정도로."
나는 웃음이 났다. 정말로 웃어 버렸다.
잔을 홍목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고,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자리를 비켜 주길 바라? 스무 살 갓 넘긴 그 애가 네일 가문의 안주인이 되게?"
"아니."
찰스는 고개를 저었는데, 그 와중에도 그는 마치 대부처럼 이성적으로 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결혼을 끝내지도 않을 거고, 에블린에게 손대지도 않을 거야, 그건 너에 대한 모욕이고 가문에 세운 맹세를 배신하는 일이니까."
찰스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단어를 고르는 척하면서도 결국 참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난 그냥… 마음속에, 그 애를 위한 자리를 하나 남겨두게 해줬으면 해."
벽난로 안에서 장작 하나가 팍 하고 터졌다.
나는 찰스를 바라봤다. 내가 열여덟에 이미 평생의 남자라고 믿어 버린 남자를.
적대 가문이 총칼을 맞부딪치던 난장판에서 나를 감싸다 등에 세 줄의 흉측한 칼자국을 남긴 남자였고, 피로 흠뻑 젖은 창고에서 늙은 대부의 피가 묻은 단검을 하늘로 치켜들고 이 생에 절대 나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남자였다.
"찰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 앞까지 걸어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가문 법전에 '배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기억해?"
찰스의 동공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몸 얘기가 아니야, 찰스." 나는 그의 벨벳 가운 깃을 살짝 매만져 정리해 줬고, 그 손길은 예전 수많은 밤들처럼 부드러웠다. "네 마음이랑 네 충성심 얘기야, 그건 원래 백 퍼센트 내 거였고 이 가문 거였지."
"근데 이제 그걸 떼어서 나눠 주겠다고? 외부인한테?"
"그 애는 위협이 아니야, 에리카."
찰스가 내 손을 잡았고, 그의 손바닥은 여전히 따뜻했는데 그 따뜻함이 오히려 역겨웠다.
"그 애는 그냥… 다른 종류의 존재야, 넌 영원히 내 부인이고 내 파트너야,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동반자고."
파트너.
그 단어가 바늘처럼 심장 가장 무른 곳을 찔렀다.
열 해 전, 찰스는 뭐였지, 부두 창고에서 겨우겨우 살아남던 작은 조직의 두목이었다.
그럼 나는 뭐였지, 처칠 가문의 장녀였고 아버지 손바닥 위 유일한 진주였다.
사람들은 다들 말했다. 에리카 너 미쳤냐, 저 남자 네 목숨을 망칠 거라고.
그런데도 나는 굳이 찰스를 택했다.
처칠 가문의 인맥으로 그가 막힌 길목을 뚫게 해줬고, 내 지참금으로 그에게 처음 '제대로 된' 군수품을 사 줬고, 협상 테이블에서 그를 위해 몸을 던져 판을 돌렸고, 그가 다칠 때마다 피범벅이 된 상처를 처리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피로 얻어낸 판이었고, 그렇게 목숨을 나눠 가진 일곱 해였는데, 결국 찰스의 마음속에서 남은 건 세 글자뿐이었다. 파트너.
그리고 에블린은 '다른 존재'가 됐다.
피 묻힐 필요도, 계산할 필요도 없이, 그저 찰스의 '순수한 사랑'만 누리면 되는 존재.
"걔가 있으면 내가 없고, 내가 있으면 걔가 없어."
나는 손을 빼내며 말했다. 내 목소리는 시애틀 겨울 바닷바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찰스가 멍해졌다.
아마 그는 내가 울고, 난리치고, 보통 여자들처럼 미쳐 날뛰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가 예전에 다뤄봤던, 말을 안 듣는 간부들의 정부들처럼.
하지만 그는 잊고 있었다. 나는 에리카 처칠이었다.
찰스와 함께 네일 가문의 이름을 시애틀 언더월드 꼭대기에 새겨 넣은 여자였다.
그날 밤, 찰스는 저택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지하 와인셀러로 내려가 아버지가 우리 결혼을 축하하며 보내 준 1960년대 맥캘런 위스키 한 병을 통째로 비웠고, 나는 2층 난간에 서서 아래에서 들려오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찰스가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일은 드물었다.
술은 우리 업계에서 금기였다. 사람을 약하게 만들고, 입을 가볍게 만든다.
그런데 지금 찰스는 다른 여자 하나 때문에 그 금기를 깨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식당에서 그를 봤다.
눈은 핏발로 가득했고, 턱에는 푸른 수염이 까슬하게 올라와 있었고, 비싼 실크 셔츠는 걸레처럼 구겨져 있었다.
찰스가 내 앞으로 다가왔고, 숙취에 눌린 피로와 위스키 냄새를 달고서 쉰 목소리를 뱉었다.
"내가 걔를 정리할게, 목적지는… 네가 정해, 난 묻지 않아."
그는 타협하고 있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멀리 보내는 걸로 내 겉치레 '용서'를 받아내고, 동시에 자기 마음속 그 '자리'를 합법처럼 남겨 두려는 타협이었다.
"좋아."
나는 베이컨을 한 조각 잘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럼… 파리."
찰스는 안도한 기색이 역력했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내 시선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번 한 달." 나는 입가를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한 달이 너랑 걔가 '제대로 작별'하는 시간이 맞지?"
찰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걱정 마."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굳은 팔을 가볍게 두드렸는데, 마치 말 안 듣는 야수를 달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한 달 동안 가문 일은 내가 보고 있을게, 넌 걔랑 잘 지내."
나는 등을 곧게 세우고 식당을 나왔다.
계단을 오르며, 찰스가 낮게 집사에게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이랑 내일 일정 전부 취소해, 그리고 차 준비해, 시내 아파트로 갈 거야."
시내 아파트.
그곳이 에블린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 가문 명의의 부동산 하나가 이제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 둥지가 되어 있었다.
침실로 돌아와 문을 잠갔고, 차가운 나무문에 등을 기대며 천천히 바닥으로 미끄러져 앉았다.
눈물이 마침내 떨어졌는데 소리는 나지 않았고, 그래도 딱 세 방울만 흘렀다.
나는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울어서 뭐가 달라지지, 눈물로 배신이 씻기지도 않고, 적이 죽지도 않는다.
나는 화장대로 가서 맨 아래쪽 숨겨진 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보석 대신 작은 브라우닝 M1906 여성용 권총 하나와 암호화된 위성전화가 들어 있었다.
나는 7년 동안 한 번도 먼저 걸지 않았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다섯 번 울린 뒤 연결됐다.
상대는 오래 침묵했고, 묵직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아빠."
내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었다. "유럽행 비행기표가 필요해, 편도."
전화 너머에서 아버지, 올드 처칠이 몇 초간 말이 없었다.
"이제야 집에 돌아올 마음이 생겼나?"
목소리는 예전보다 늙어 있었지만 위엄은 그대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나는 거울 속, 눈가가 붉어진 나를 바라봤다.
"새로 시작하는 거야, 네일 부인이 아니라 에리카 처칠로."
또 한 번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대가는?"
아버지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이유 없는 도움은 없다.
"찰스 손에 동부 해안 가문들의 밀수 라인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세 개 있어. 한 달 뒤에 그게 아빠 책상 위에 올라갈 거야."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로 시애틀에서 처칠 가문이 하는 모든 일에, 내가 우선 협력권을 가져."
"거래 성립."
아버지는 단칼에 잘랐다. "표, 새 신분, 파리에서의 접선까지 일주일 안에 준비해, 접선 담당 이름은 데이미언이야, 유럽 쪽에 있는… 우리 '친구'지, 네 안전은 확실히 책임질 거야."
"고마워, 아빠."
"에리카."
전화를 끊기 직전, 아버지가 나를 불렀고 그 목소리가 드물게 한 겹 부드러워졌다.
"네 엄마는… 네가 자유롭게 살길 바랐어."
나는 수화기를 더 세게 쥐었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럴게."
전화를 끊고 위성전화와 권총을 다시 숨겨뒀다.
창가로 가서 나는 찰스의 검은 벤츠가 저택 대문을 빠져나가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찰스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을까.
오늘은 우리가 결혼한 지 7주년 되는 날이었다.
예년 같았으면 찰스는 모든 일을 밀어두고 직접 주방에 들어가 형편없이 맛없지만 정성만큼은 가득한 파스타를 만들었고, 이어서 정성껏 고른 '선물'을 내밀곤 했는데 그 선물은 대개 무기나 거래였다.
그런데 올해 그의 선물은, 애인을 내보내고 내 마음속에 그녀를 위한 신전을 하나 세우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관대했다.
나는 커튼을 끌어내려 바깥의 음울한 하늘을 차단했다.
게임은 시작됐어. 찰스.
이번엔 네 상대가 나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