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내 약혼자는 불타는 레이싱카 안에 나를 버리고 자신의 옛 파트너를 구하러 갔다. 점점 멀어진 약혼자 빅터의 등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진 나는 조직 두목의 번호를 눌렀다.
제1화
내 약혼자는 불타는 레이싱카 안에 나를 버리고 자신의 옛 파트너를 구하러 갔다.
F1 레이스의 마지막 코너에서 빅터는 내 내비게이션 지시를 거부했다.
그는 차를 돌려 우리 쪽이 무너지는 바위의 충격을 전부 받게 만들었고, 이 모든 것은 불법으로 트랙에 침입한 라일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잔해에서 그를 끌어올리려고 애썼지만, 내가 도움을 청하려 손을 뻗었을 때 그는 그저 겁에 질린 라일라를 품에 안고 걸어가 버렸다.
차체는 찌그러지고 변형되었으며, 엔진 오일은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는 상태였다.
내 다리는 끼여서 움직일 수 없었고, 미약한 구조 요청은 눈보라와 바람에 묻혀 버렸다.
약혼자 빅터의 등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진 나는 조직 두목의 번호를 눌렀다.
...
...
"숀, 날 찾아주면 결혼해 줄게."
헬리콥터의 굉음이 들린 순간, 나는 시더 향이 나는 품에 안겼다.
숀의 에메랄드 귀걸이가 내 눈앞에서 흔들렸고, 그러다 반지 하나가 내 손가락에 끼워졌다.
"엘로웬, 찾았어."
나는 숀의 부적절한 농담이 이렇게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손을 꽉 쥐고, 전에 했던 것처럼 반지를 던져버리지 않고 숀의 품에 얼굴을 단단히 묻었다.
"결혼할게, 숀. 너랑 결혼하고 싶어."
숀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가, 천천히 내 손가락을 펴고 자신의 손가락과 깍지를 꼈다. "좋아, 더 아름다운 반지를 골라서 가장 성대한 결혼식을 해줄게."
천 피트 상공에서 나는 숀의 품에 꽉 웅크렸다.
그의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는 계속 심박수 상승 경고음을 울렸고, 그가 엄청난 심장박동을 겪고 있음을 나타냈다.
나는 그의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네 위치를 찾아갔을 때, 그 차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여서… 하마터면 공포로 숨이 멎을 뻔했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머릿속에 빅터의 차갑고 단호했던 이별만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충돌 순간, 내 쪽이 가장 큰 충격을 받도록 차를 틀었던 장면.
내가 도와 탈출시켜줬는데도 끝내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의 뒷모습.
숨이 막혀 들이마신 공기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시큼하게 치밀어 올라, 수천 개의 바늘이 눈을 찌르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이 눈물은 빅터를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비행기는 한동안 공중에 머물다 캠프 쪽으로 천천히 하강했다.
숀은 아래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곤란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정체는 공개되면 곤란했고, 게다가 그는 심각한 사회불안증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 "불편하면 그냥 가도 돼. 저 사람들 악의 없고, 그냥 걱정돼서 모인 거야."
숀의 시선이 나와 군중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거의 170에 닿아가는 심박수가 결국 그를 설득했다.
"알았어. 내일 웨딩드레스 입어보러 데리러 올게."
헬리콥터가 다시 떠올랐고, 나는 코트를 단단히 여미며 캠프 쪽으로 걸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빅터의 낮은 위로와 라일라의 흐느낌이, 한 겹씩 내 이성을 벗겨내듯했다.
"쟤는 통증 수용체가 없는 괴물이야. 난 테스트 때문에 쟤랑 있었던 거지. 쟤가 충돌해서 죽더라도, 마지막까지 정확한 좌표는 줄 거야. 루트북 업데이트하긴 딱 좋잖아. 네가 좀 쉬고 나면, 쟤는 내보낼 거야."
라일라의 흐느낌은 이내 멈추고, 두 사람의 웃음으로 뒤바뀌었다.
나는 입구에 서서 손가락을 너무 세게 움켜쥐다 못해,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정도였다.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내가 그토록 견디며 이식받았던 통증 수용체가, 지금 이 순간에는 그냥 우스운 농담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꺼져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불을 밝히며 알림 하나를 띄웠다.
[오늘은 엘로웬과 빅터가 함께한 지 500일째 되는 기념일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줄곧 기다려왔던 결과였다.
부모님이 레이싱 팀에서 날 끌어내 약혼을 잡아놨다고 말했을 때, 나는 혐오감부터 치밀었다.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초라하고 비참하게 꾸미고 만남 자리에 나갔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이, 내가 오래도록 우상처럼 여겨왔던 그 사람이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빅터. 세계 최고의 레이싱 드라이버.
그는 내가 일부러 꾸미고 간 지저분한 외모 따위는 아예 흘겨보지도 않고, 오직 내가 차고 있던 루트북 모양 커프스 링크에만 눈을 고정했다.
"마침 내비게이터가 필요한데, 내 파트너가 되어줄래?"
나는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웠지만, 내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빅터는 그 사실을 드문 재능이자 하늘이 준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통증 수용체가 없다는 건 정말로 '데이터 테스트에 최적화된 괴물'을 만든다는 뜻이었다는 걸.
빅터가 나를 새 내비게이터로 발표했을 때 라일라가 지었던 그 비웃는 미소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했다.
그녀는 내가 빅터의 가식을 진심 어린 애정으로 착각하고, 그가 나에게 품었다고 믿었던 깊은 감정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습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빅터가 레이스 중에만 나를 신경 썼던 것도 당연했다.
그는 단지 부정확한 좌표가 라일라의 복귀 테스트 결과에 영향을 줄까 걱정했을 뿐이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가 '생사를 함께하는 파트너'라고 부르던 그 관계는 결국, 내 '죽음'을 이용해 라일라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다.
가슴속 심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꽉 조여드는 것처럼 아파왔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휘청이며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입술이 맞닿아 있던 두 사람은 번개처럼 떨어졌고, 빅터의 얼굴에는 잠깐 당혹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순간, 그 당혹감은 곧 정당한 추궁처럼 굳어졌다.
"아직도 그 숀이랑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내 눈빛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그가 아니었으면 난 이미 죽었어."
빅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때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어. 라일라가 겁에 질려 있었어. 당장 달래줘야 했다고."
정말 우스웠다.
라일라가 겁을 먹은 건 급했지만, 나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차 안에서 그냥 구조를 기다리면 된다는 말인가.
나는 말을 잇지 않고, 표정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라일라를 바라봤다.
라일라는 겁먹은 얼굴로 빅터 뒤에 바짝 숨어들었다.
빅터는 즉시 격노했다.
"이게 뭐 하는 거야?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 아니면 라일라를 탓하는 거야?"
"경고할게, 엘로웬. 계속 말썽을 부리면 우리 약혼, 취소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