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아……, 니코, 더 빨리, 으응…….”
“니코, 자기야, 아 좋아……아!”
내 남자친구 위에 올라타 몸을 움직이고 있는 여자가 리비아인 것을 똑똑히 보자마자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솟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침실로 뛰어들어가 리비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서는 그녀를 밖으로 끌어냈다.
“이 더러운 년아!”
리비아가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와 니코의 결합부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맞물려있었다. 리비아가 끌려나올 때 니코의 하체와 연결되었던 리비아의 하체에서 덩달아 역겨운 물소리가 났다.
“뭐 하는 거야, 놔!”
리비아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그녀의 긴 손톱이 내 손등을 긁었다. 배신감과 고통으로 내 머릿속은 온통 터질 듯 혼란스러웠다. 나는 손을 들어 리비아의 뺨을 두 번 내리쳤다. 그러자 그녀는 거의 미친 듯이 달려들어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잡힌 머리카락이 죄다 뽑힐 것처럼 아팠다. 나 역시 지지 않고 그녀의 목을 잡아채고선 손을 깨물었다. 거의 난장판처럼 뒤엉켜 싸웠다.
“시에나, 그만 둬!”
니코가 황급히 바지를 입으며 우리를 떼어냈다.
“진정 좀 해, 시에나!”
진정하라고? 이 상황에서 진정을 할 수가 있나?
내 남자친구가 내 가장 절친한 친구와 한 침대에서 붙어먹었는데! 나를 배신한 건 그들인데, 그런데도 정작 니코는 마치 보물이라도 지키는 양 리비아를 뒤로 감싸고 있었다.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너, 너희……너랑 리비아…….”
“다 설명할게, 시에나.”
니코가 변명하려 했다.
“무슨 설명을 해? 언제부터 내 뒤에서 이런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할건가?”
고함을 내지르는 내 목소리가 비참하게 떨렸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 해 줬었는데.”
“그래, 네가 예전에는 나한테 참 잘했었지. 그런데 날 먼저 배신한 건 너잖아. 다른 남자랑 잤잖아!”
분노로 일그러진 니코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 뭐라고?”
“순진한 척 좀 그만해. 팔콘 교수님이 왜 그렇게 너를 챙겨주겠어?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말이야. 네가 그 교수님 아들이랑 자서잖아. 버트랑 도대체 얼마나 거래를 하고 또 얼마나 그에게 뚫렸었을지…….”
나는 무표정으로 손을 떨며 그의 뺨을 쳤다. 그는 맞은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비웃었다.
“더러운 년.”
굴욕감 때문에 눈물이 차올랐다.
“네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어?”
“그래!”
니코는 오랫동안 쌓아왔던 분노를 이제서야 한 번에 터뜨리는 사람처럼 크게 고함을 쳤다.
“남들한테는 전부 냉담하게 대하는 미친 팔콘 교수가 너한테만은 다르게 행동을 하잖아. 매번 실습이 끝나고 너만 남겨뒀었지. 그때 둘이서 뭐했어? 버트 이야기를 했나? 아니면 직접 팔콘 교수를 유혹하려고 했나? 둘이 키스했어? 아니면 섹스?”
입을 열어 대답하려는 찰나에 리비아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기세등등한 꼴이 역겨웠다.
“와, 진짜 헤프네. 낯짝도 두껍다, 시에나.”
나는 그녀에게 침을 뱉으며 말했다.
“헤픈 건 너지. 내 남자친구를 후린 건 너잖아, 이 망할 년아.”
리비아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만면에 비웃음을 띄운 채 크게 도발을 시작했다. 그녀가 입은 끈 원피스 아래로 출렁거리는 가슴이 거의 튀어나올 듯했다.
“네가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은 없지. 니코가 그러던데, 네 밑은 사막보다 건조하더라고.”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분노에 차서 소리질렀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니코, 정말로 그딴 말을 했다고?”
니코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적어도 리비아의 그곳은 늘 촉촉하게 젖어있기라도 하지, 네 건 무슨 말라빠진 미라같더라.”
니코의 그것은 여전히 단단히 서 있었다. 그는 그걸 딱히 가릴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곧장 그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그가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이 씨발!”
리비아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나를 막았다.
“넌 이미 차인 거야, 시에나!”
나는 본능적으로 아니라고 외쳤다. 이 모든 게 한바탕 질 낮은 장난이라며, 사실 다 농담이었다고 말하진 않을까 니코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이미 리비아에게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가 싶더니, 그의 회색 눈동자에 서서히 소름끼치는 욕정이 일기 시작했다.
“이럴 수는 없어, 니코! 내가 너한테 얼마나 헌신했었는데, 어떻게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인 저런 나쁜 년 때문에 나랑 헤어질 수가 있어?”
“그만해. 이제 더 이상 여기서 네 미친 짓에 장단 맞추고 싶지가 않네.”
리비아가 니코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니코, 어서 저 년 내쫓아. 네 방에 쟤가 계속 있는 거 꼴보기 싫어.”
결국 나는 니코의 집에서 내쫓겼다. 아마 내가 울며불며 난리를 피워 이웃들의 시선을 받을까 두려웠는지, 니코는 나를 계단실로 끌어들어가 구석에 몰아세웠다. 그의 단단한 것이 얇은 옷 두 겹을 뚫고 내 허리께를 찌르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마치 피스톤질을 하는 것처럼 내게 두어 번 몸을 겹쳐왔다.
“뭐 하는거야?”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쳐내자, 니코의 거친 손이 내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너도 해봐서 알 거 아냐? 버트 팔콘보다 내가 더 잘 하는 거. 너한테 아직 기회는 남아있어. 그런데 이렇게 고고한 척하면 안 되지.”
그가 내 목덜미 가까이에 코를 갖다대며 냄새를 맡아댔다. 음흉하고 더러운 그 행동에 속이 뒤집혔다.
“이딴 거 너나 해!”
참다못해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을 니코의 그곳에 힘껏 내리쳤다. 핸드백의 단단한 모서리가 정확히 그의 급소를 찧자 니코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이 발정난 개 같은 놈아!”
나는 욕을 퍼부르며 그에게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연놈들아!”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울긴 왜 울어? 이건 울 가치도 없는 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이힐로 니코의 머리통을 두어 번 내리친 다음에 엉엉 울며 맨발로 계단실을 나왔다. 22층이라 걸어서 내려갔다간 발이 온통 부르틀 것이 뻔했다. 벗어던진 하이힐을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나는 있는 힘껏 닫힘 버튼을 눌렀다.
죽을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 심장을 움켜쥐어 누르는 것처럼 아팠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자 서서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나를 짓누르는 듯한 고통이 아주 조금은 벗겨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내가 그 둘에게 뭘 잘못했던 걸까?
리비아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거의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모든 것을 믿고 맡겼던 친구였다. 심지어는 오늘 그녀가 입고 있던 원피스 역시 예전에 그녀가 파티에 입고 갈 옷이 없다고 해서 내가 선물해줬던 것이었다. 내가 선물한 원피스를 입고 내 남자친구와 자고, 그것도 모자라 내가 몸을 팔았다는 헛소리까지 하다니, 도대체 왜?
또 니코는 어땠던가. 원래 호스트바에서 일하던 그를 구해주고, 그 밖에도 여러 일들을 도와준 것이 전부 나였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리의 침실 사정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나를 배반할 이유가 될 순 없었다. 그는 나의 첫 남자친구이자 내 순결을 가져간 이였다. 그런 그가 어째서 방금 그런 식으로 나를 모욕할 수가 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노와 슬픔이 심장을 휘감았다. 지금이라도 칼을 들고 올라가 그 둘을 난도질해버리고 싶었다. 칼날이 그들의 뱃가죽을 뚫고 안에 든 창자들이 질질 새어나오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들의 심장을 도려내서 짓이기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건 범죄였기 때문이다. 젠장, 그럴 수가 없다니!
억울함과 답답함이 온 정신을 휘감았다. 나는 술집으로 들어가 바로 가장 독한 술을 주문했다. 불같이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 위까지 태우며 내려가는 느낌이 선연했다. 알코올과 함께 강한 통증이 심장에까지 감겨들었다. 심장이 두어 번 쿵쾅거리며 뛰었다. 그러다가 이내 끝없는 공허함이 몰려왔다. 나는 멍하니 바 테이블에 앉아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릿속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잠시 동안 일지라도 니코와 리비아를 잊을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였다. 신경을 마비시키고 조금이라도 나를 진정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그 평온과 공허는 아주 짧았다. 연신 술잔을 들이켜도 리비아와 니코가 했던 말들이 내 귓가에 더럽게 엉겨 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씨발, 서로 붙어먹은 주제에 무슨 노벨상이라도 받은 양 당당하게 굴다니.
확 오른 술기운 때문에 내 안의 모든 도덕률이 빠져나갔다. 더 이상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눈길을 돌려 목표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어둑한 구석에 기대어 있던 남자 하나가 내 시야에 들었다. 한 번 그에게 사로잡힌 눈길을 다시 떼기는 어려웠다. 그만큼 매혹적이었다.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좇듯 내 시선은 온통 그를 향해 가 있었다. 그는 바의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단연 돋보였다. 정말로 잘생겼다.
새카만 머리카락, 짙은 눈썹, 그리고 강렬하고 위험한 기운을 숨긴 날카로운 눈매가 보였다. 시선을 아주 조금 더 아래로 내리자 이탈리아 혈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좁고 오똑한 코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나를 더욱 매혹시킨 건 입술이었다. 단호하게 다물려 있는 얇은 입술은 약간의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는데, 입맞춤하고 싶다는 충동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물론, 완벽한 얼굴을 제외하고도 그의 산처럼 우뚝하고 건장한 체격도 매력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상체에 꽉 맞는 셔츠는 그 안에 담겨있을 유려한 근육선을 감추지 못했다. 저항할 수 없는 남성적인 매력이 사방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의 몸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