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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와의 약속

심우리는 잠시 침묵하며 시선을 그 하녀에게로 돌렸다.

한눈에 봐도 그들의 말이 고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뭘 저렇게 째려 본대? 황보 집안에 시집오면 다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우리 작은 도련님이 자기를 좋아하기나 할까? 나중에 하인 취급도 못 받을걸?”

“맞아, 꼴 좀 봐. 들으니까 어젯밤 작은 도련님한테 쫓겨나서 밖에서 잤다며? 내가 본인이라면 그냥 짐 싸서 집으로 돌아가겠어. 굳이 여기서 웃음거리가 될 필요는 없잖아.”

“이런 여자는 웃음거리가 된다고 해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겠지. 눈에는 오직 돈밖에 없을 테니까!”

멀리서 들려오는 그들의 뒷담화는 우리에게 그대로 꽂혔다.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굳어갔다.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문 앞에 천천히 웅크렸다.

왜?

왜 그녀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그저 이혼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우리는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하녀들의 비웃음 소리가 귓가에 희미하게 맴돌았다. 이혼 후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부모님이 강요했던 결혼, 그리고 그날 밤…

갑자기 배가 아파온 우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안 돼!

내일 꼭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해.

지금 임신을 하면 안 돼!

우리가 고개를 드는 순간, 방문이 열리며 윤성이 황보재혁을 밀고 나왔다. 심우리는 인기척에 저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재혁은 무심히 흘깃 쳐다보았다. 우리의 눈물 젖은 두 눈이 그의 검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작은 돌멩이가 잔잔한 호수 위에 던져져 물결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심우리는 못생긴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입체적인 이목구비에 길게 올라간 속눈썹, 그리고 맑은 샘물처럼 깨끗한 두 눈을 지닌 얼굴이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순수함이 두 눈 속에 담긴 듯했다.

하지만 그 맑은 샘물은 차디찬 얼음처럼 냉정했다.

평소 그녀의 눈은 차갑고, 요염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속눈썹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고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연약함을 지닌 사람처럼 보였다.

작고 마른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녀는 어느새 연민을 자아내는 존재가 되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히려 우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어디 가시나봐요?”

그녀의 목소리는 쉬고 메말랐으며, 심한 콧소리가 섞여 있었다.

재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렇군요.”

심우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시선을 돌려 눈을 내리깔고 발끝만 쳐다보며 멍하니 있었다.

재혁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내가 말했잖아. 여기서 웃음거리가 되지 말라고.”

그 말을 듣자, 심우리는 주눅이 든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전에 약속했잖아요. 당신도 동의했었고요.”

“하.”

재혁은 차갑게 웃었다.

“내가 약속했다고? 언제?”

심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맞다, 사실 그가 뭔가를 명확히 약속한 적은 없었다. 그저 그날 저녁, 그가 나가버리고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럼, 그냥 자신이 오해한 걸까?

이렇게 생각하자, 심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내가 그녀를 찾을 때까지, 너는 여기 남아도 돼. 하지만 우리 조건을 세 가지 정하지. 약속해.”

우리는 순식간에 고개를 들었다.

“누굴 찾는 건가요?”

황보재혁의 어두운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음산했다.

“묻지 말아야 할 건 묻지 마.”

심우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가 누구를 찾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그걸 물었을까? 어차피 부부라는 이름만 있을 뿐인데.

그저 이곳에 남게만 해주면 되는 거다.

“알겠어요. 당신이 말하는 대로 할게요,” 심우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침대는 내 거니까 네가 어디서 잘지는 알아서 해.”

“네 물건들은 전부 캐리어에만 넣어. 내 옷장에는 넣지 마.”

“그리고 나한테 손대지 마.”

그래, 침대에서 못 자면 바닥에서 자면 되고,

물건을 그의 옷장에 못 넣으면 새로 하나 사면 되는 거지.

근데 손대지 말라고?

심우리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이상한 눈길로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누가 손을 대고 싶어 하는 줄 아나?

황보재혁이 잘생기긴 했지만, 자신은 그리 목 마른 여자는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우리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요, 약속할게요.”

“성아.”

“네.”

“가자.”

윤성은 재혁을 밀며 방을 나갔다.

심우리는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드디어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황보재혁과 약속을 했으니 이제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되는 거겠지.'

우리는 바로 캐리어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심우리는 눈에 잘 띄지 않게 옷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외출 준비를 했다.

대문에 도착했을 때, 마침 출근하려는 황보재영을 만났다.

“제수씨? 재혁이를 만나러 출근하려나 봐요? 제가 그쪽까지 태워드릴까요?”

우리는 재영을 마주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려던 곳이 생각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아주버님. 그런데 저, 회사 가는 게 아니에요.”

“그래요? 그럼 어디 가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까요?”

“아니에요, 아주버님. 제가 가는 곳은 회사랑 반대쪽이에요. 같은 길이 아니에요.”

“그래요? 그럼 조심히 가요.”

심우리는 길을 따라 한참 걸은 후에야 버스를 타고, 곧바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제 테스트 결과가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밤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테스트 결과가 오류이길 바랐다.

* * *

병원에 도착한 후, 심우리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주변 사람들의 기괴한 눈빛이 느껴졌다.

우리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은 더 기괴해졌다.

생각해보니, 한 여자가 산부인과에 와서 괴상한 옷을 입고 모자에 마스크, 거기에 안경까지 끼고 있으니, 마치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숨기려 할수록 오히려 더 눈에 띄는 효과를 냈다. 결국 공공장소에서 이런 행동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기 마련이었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의사는 심우리가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모습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뭐 때문에 오셨어요? 검사 받으러 오신 건가요?”

우리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마스크를 내렸다.

“아, 예. 의사 선생님, 검사 받으러 왔어요.”

“뭘 그렇게 껴입고 가리고 그래요?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일이라도 하셨어요?”

의사는 한마디 던지며 심우리를 가늘게 쳐다봤다.

“혹시, 그런 일 하시는 건가?”

이 말을 듣자, 심우리는 잠시 멈칫했다.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네?”

“내 말은, 그쪽 일을 하시는 건가... 하고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우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 사실 저...”

“뜻밖의 임신이죠? 그럼 인공유산을 해야겠네요.”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왜 자기 몸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나요? 어제도 당신 같은 사람이 왔어요. 벌써 임신을 대여섯 번이나 했더라고요. 대체 낙태를 몇 번이나 할 건가요? 몸이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아니,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심우리가 자신이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해명하려던 순간,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방 안으로 쳐들어왔다.

“꼼짝 마!”

깜짝 놀란 우리는 허둥지둥 검진실을 떠나려 했지만, 그들은 재빨리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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