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황보재혁은 귀찮은 듯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호통을 치려다가, 심우리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입가까지 차오른 말을 결국 뱉지 못하고 이마살만 찌푸렸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눈 앞의 이 여자는 여동생을 대신해 시집왔고, 게다가 아이까지 가진 이런 여자를, 밖으로 내쳐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왜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이곳에 남게 하는 걸까?
생각이 복잡해진 재혁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우리의 팔을 잡아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냈다. 심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가냘픈 어깨가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고개를 들어보니 황보재혁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꺼져.”
황보재혁은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는 부딪힌 어깨를 감싸며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 여기 남아서 뭐하겠어? 내가 더 화내기 전에 당장 꺼져!”
재혁의 말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에 우리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녀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눈속의 분노는 이내 사라졌다. 어깨를 감싸며 천천히 욕실을 나갔다.
“윤성아!”
차가운 목소리가 문을 뚫고 들려왔다. 밖에서 몰래 듣고 있던 윤성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며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빨리 안 들어와?”
윤성은 허둥지둥 욕실로 달려갔다.
“도련님, 제가 밖에 있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윤성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그가 떠나지 않고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도련님이 이미 알고 있었다니. 그가 방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윤성은 매우 어색해졌다.재혁이 부르자 바로 나타난 걸 보면, 밖에서 몰래 듣고 있었다는 게 확실해 보였다.
재혁은 차갑게 그를 쏘아보았고, 윤성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
우리는 욕실을 나온 후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멍하니 친구들이 인터넷에 올린 일상들을 보고 있던 그녀는, 전남편 이준이 올린 애정 과시 글을 보게 되었다. 이준은 요염한 여자를 끌어안고 다정하게 몸을 붙이고 있었고, “한평생 당신만을 사랑하며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이것을 본 우리는 누군가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왔다.
결혼 2년 동안 이준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이 이미 결혼을 했고 살림살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준은 갑자기 복권 5억에 당첨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 행복을 나누려 하지 않았고, 되려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유는 우리가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준을 위해 아침을 준비했고, 집안일을 도맡았으며, 번 돈도 모두 생활비로 사용했다. 소녀 같았던 그녀는 어느새 수수한 기혼녀가 되었다.
이게 다 누구를 위한 건데?
사실 심우리도 이게 핑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진 속 여자를 오래전부터 봐왔기 때문이다.
그날, 이준이 집에 없었을 때 한 여자가 찾아왔다. 배가 불러 있는 그녀는 심우리 앞에서 뻔뻔하게 말했다.
“지금 내 뱃속엔 이준 씨 아이가 있어. 심우리, 네가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좀 꺼져. 내가 직접 손대기 전에.”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준 씨는 지난 2년 동안 바람을 피운 적이 없어. 날 속이려는 거야?”
그러자 여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2년 동안 널 만지지 않았잖아? 결혼할 때 내가 이준 씨한테 말했어. 너한테 절대 손대지 말라고. 그래서 네 배가 감감무소식이었던 거야. 난 이제 이준 씨 아이도 가졌고 더 이상 이렇게 혼자서 살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그의 곁에 남기로 했어. 그러니까 이제 좀 이준 씨 옆에서 꺼져줄래?”
그 여자의 말에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이준이 자신에게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니!
여자는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심우리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이준과 함께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동영상 속에 그들의 관계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었다. 심우리는 결국 그 동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아악!!! 꺼져!"
여자는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받치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이준은 복권에 당첨되었지만 심우리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 모든 기억이 떠오르자 심우리의 속은 메스꺼웠고 토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몰려왔다.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하지만 황보재혁이 욕실에 있었기에, 그녀는 방을 나와 2층 화장실로 향했다.
한참 동안 신물을 토해낸 후에야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황보재혁은 아직 샤워 중인지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토하느라 기운이 빠져서인지, 이불에 몸을 뉘이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한편, 샤워를 마치고 나온 재혁은 이불 속에 몸을 움츠리고 자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만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재혁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지만 곧 시선을 거두었다.
“수건.”
윤성이 수건을 건네자, 재혁은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얇은 입술을 움직였다.
"그만 가."
말이 끝나자, 저편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심우리가 더워서인지 이불을 발로 차버렸다. 그러면서 새하얗고 가느다란 다리가 드러났다. 그녀의 하얀 피부와 날씬한 다리는 시각적으로 강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윤성은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려 했으나, 재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를 멈추게 했다.
“안 가고 뭐해?”
윤성은 당황하며 얼굴을 돌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도련님이 왜 이렇게 갑자기 차가워지셨지?'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방에서 서둘러 나갔다.
윤성이 나간 뒤, 재혁은 다시 우리를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여자.'
겉으로는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건 일품이군.
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심우리가 깨어났을 때, 재혁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얼마나 깊이 잠들었으면, 그가 떠난 것도 몰랐을까?’
일어나 씻으려고 할 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깜짝 놀란 그녀는 다시 침대에 앉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시야가 조금씩 돌아왔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감기가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잠시 앉아 있다가 우리는 힘겹게 일어섰고, 방을 정리한 후 아래로 내려가려던 찰나, 황보웅과 마주쳤다.
"심달리?"
“할아버지...”
그를 보자 심우리는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큰 회장님의 눈빛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날카로웠고, 그녀는 자신의 진짜 신분이 들킬까 두려웠다.
"요 며칠 동안 재혁이랑 회사에 안 간 거냐?"
큰 회장님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꾸짖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주눅이 들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요즘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몸이 안 좋다고?"
황보웅의 눈빛이 예리해지며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내가 의사를 불러서 검사를 한번 받아보게 하마."
그 말에 심우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의사가 오면 임신 사실이 들통날 게 뻔했다.
‘안 돼!’
우리는 당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