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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윤재하에게서 여전히 강한 위스키 냄새가 풍겼다. 그는 자정 무렵 비틀거리며 우리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시현." 혀가 꼬인 목소리로, 불안정한 손을 내 쪽으로 뻗었다. "오늘 밤… 당신이 필요해."

그의 흐릿한 눈빛이 걱정돼 나는 반발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당신 취했어, 재하 씨. 차라리 우리..."

"아니야. 지금… 당신이 필요하다고." 그는 내 말을 끊고 거칠게 내 허리를 움켜잡았다.

"정말… 보고 싶었어, 자기야."

그의 키스는 절박했고, 거의 광적이었다. 그 순간, 우리 사이가 멀어지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가 스쳤다.

"사랑해." 그가 내 목 언저리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하아, 아린아… 정말 사랑해."

세상이 멎었다.

핏줄 속 피가 그대로 얼어붙는 듯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술기운이 순식간에 가셨고, 내 얼굴에 번지는 공포가 그의 표정에 그대로 비쳤다.

"시현아, 나… 내 말은—"

"당신 지금 나를 아린아라고 불렀어." 내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낮았지만, 그 침묵을 칼처럼 갈랐다.

그는 뒷걸음질치며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그 역시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걸 나는 분명히 보았다.

"우리 얘기 좀 해야겠어."

"아린이가 누구야?" 단어 하나하나가 유리를 삼키는 듯 아프게 나왔다.

침묵은 7년의 결혼 생활 아래서 벌어진 심연처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이혼하고 싶어."

그가 내뱉은 그 한마디는 온몸을 후려치는 물리적 충격처럼 들렸다.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아린이는… 2년 전 출장에서 만난 사람이야."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또렷해졌고,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게 그에게 이상한 용기를 주는 듯했다. "회사를 살렸던 그 출장 말이야."

내 다리에 힘이 풀려 문틀을 붙잡았다.

"우리 결혼기념일이 있던 달에?"

"회사가 무너져가고 있었어, 시현아. 난 빚에 허우적대고 있었고… 당신이 없던 그때, 그녀가 곁에 있었어."

"내가 없었던 건, 당신이 우리 미래를 구한다며 뛰어다닐 때 집에서 우리 딸을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냥… 그렇게 된 거야." 그는 말을 이었다. 진실이 입 밖으로 쏟아질수록 목소리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하룻밤이 또 다른 밤으로 이어졌고… 그 뒤로 계속 그랬어."

2년.

꼬박 2년 동안의 거짓.

2년 동안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영원을 약속했고, 기념일 저녁마다 미소 지으며 꽃을 건넸고, 그 모든 순간에 다른 여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2년 동안 바람을 피웠다고?"

"2년 동안… 거짓으로 살았어." 그가 정정하듯 말했다. 그 말끝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처럼 들리는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아린이는 내가 정말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야. 그녀는… 당신이 절대 이해해줄 수 없었던 방식으로 나를 이해해."

나는 7년 전에 결혼한 남자, 내 아이의 아버지, 내 미래를 맡긴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완전히 낯선 남자일 뿐이다.

"우리 침실에서 나가."

나는 속삭였다.

"시현아, 이건… 이해해야—"

"당장 나가!"

문이 닫히며 들린 부드러운 찰칵 소리는 모든 것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울렸다.

나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그는 언제부터 이 마지막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더 두렵고도 분노를 자극하는 질문은 따로 있었다.

그가 또 어떤 거짓말을 쌓아올렸는지, 그리고 그 모든 대가를 그에게 어떻게 치르게 할 것인지.

진짜 강시현이 이제 막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방금 세상이 무너진 순진한 아내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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