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물론이지."
결국, 어떤 선택에서도 장미가 그의 '우선순위'였다.
안타깝게도 이제야 똑똑히 알겠다.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들뜬 얼굴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전화를 하지도,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이미 장미에게 연락은 해둔 상태였고, 그저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내 말이 그에게 완벽한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감자칩 한 봉지를 뜯어 입에 넣었다.
그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떴다. '장미'의 친구 추가 신청이었다.
그녀는 병원 단체 채팅방을 통해 나를 추가했다.
인증 메시지는 이랬다.
"안 궁금해요? 왜 선생님이 오늘 갑자기 당신한테 밥 해준다고 하는지? 선생님이 어제 어디서 잤는지 알아요? 당신 정말 대단하네요. 외도가 이리 확실한데, 아직 아무 일 없는 척하네."
"나 솔직히 말할게요. 내가 당신이 선생님과 신혼여행 가는 게 싫어서 1주년 핑계를 대고 선생님을 돌아오게 한 거예요. 당신 바보같이 또 버려질 줄은 꿈에도 몰랐죠."
나는 그녀의 프로필로 들어갔다.
거기엔 강형욱과 찍은 사진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얼굴을 맞댄 사진, 함께 웃는 사진, 서로 포옹한 사진.
누가 봐도 그 둘이 더 부부 같았다.
친구 요청을 수락하자 장미는 또 많은 사진을 보내왔다.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사진, 하트를 그리고 있는 사진.
마지막으로는 입을 맞추는 사진과 반짝이는 커플링 사진이었다.
그 반지는 한 달 전, 내가 직접 디자인을 맡겨 주문 제작한 결혼반지였다.
결혼할 때 너무 급해서, 여유가 생기자 나는 남편에게 보상해 줄 방법을 계속 찾았다.
지난주에 강형욱이 반지를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 그는 눈까지 붉혀가며 말했다.
'길이 너무 막혀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렀는데, 반지를 잃어버렸어.'
그때 나는 속이 쓰렸지만, 그를 먼저 위로해줬다.
'괜찮아. 다시 만들면 되지.'
결국, 반지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고, 그저 그가 주고 싶었던 사람에게 전해졌을 뿐이었다.
"그날 선생님이 반지 찾으러 갔을 때요, 제가 너무 예쁘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냥 제게 주셨어요. 하늘 선배님, 혹시 화난 건 아니죠?"
비꼬는 메시지가 줄줄이 이어졌다.
나는 휴대폰을 덮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장미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느지막이 도착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먼저 나와 친구 추가를 한 일을 언급했고, 억울한 척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 메시지 보냈는데 왜 답장을 안 하셨어요? 귀찮게 한 거면 죄송해요. 병원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말이 좀 많았나 봐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척 웃는 그녀를 보고, 강형욱은 나를 노려보더니 불만스럽게 말했다.
"당신도 그때는 병원에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몰랐잖아. 장미는 그저 배움에 의욕이 넘치는 것뿐인데, 당신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그날 식사는 모래처럼 씹혔다. 나는 억지로 삼켰다.
장미는 신나서 떠들고 웃었고, 떠나기 전 그녀는 초대장 하나를 내밀었다.
"하늘 선배, 내일 식당 예약했어요. 첫 수술 성공 기념 파티예요. 선생님이랑 꼭 같이 오세요. 특히 선생님, 꼭 오셔야 돼요. 감사 인사드리려구요."
수술 성공 기념보다는 나에게 기선 제압을 하려는 목적에 가까웠다.
초대장엔 그녀와 강형욱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꼭 갈게."
그녀가 떠난 후, 나는 방에 숨어 짐들을 정리했다. 오늘 하루 종일 나는 대부분의 물건들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고, 남은 건 전부 버렸다.
강형욱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집안을 한참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인테리어 다시 하려고?"
이 집의 모든 건 내가 손수 채운 것들이었다.
강형욱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괜한 말썽이 더 늘어날 필요가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