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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그날 밤의 정분

"안 만나."

남도헌은 사무실 문을 밀며 말했다.

"커피 한 잔 타줘."

그렇게 말한 뒤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고 회장님이 안 만나면 오늘 안 나간다고 하셨는데요."

남도헌은 비서를 돌아보았다. 비서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데리고 와."

남도헌은 자리에 앉아 양복 단추를 채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비서는 곧 커피를 들고 고지호를 데리고 들어왔다.

고지호는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리고 물었다.

"저 여자, 어디서 찾은거에요?"

남도헌은 커피를 들고 비서에게 나가라고 손짓하며 말을 건넨 뒤 눈을 들어 고지호를 바라보았다.

"내가 입은 상처 보여요?"

고지호는 멍이 선명하게 든 목과 거즈로 감싼 손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목이 끊어질 뻔했잖아요."

남도헌의 시선이 고지호의 부상 부위를 훑고 지나갔다. 사실 그의 마음속에는 약간의 쾌감이 있었다. 그러다가 의도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고지호는 가슴이 아직도 두근거렸다.

"저 여자가... 칼까지 가져왔던데요? 야... 손재주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대동맥을 자를 뻔 했대요, 미녀를 즐기는 커녕... 거의 죽다 살아났거든요... 아니... 그냥 묻고 싶은 건데요, 그 여자는 어디서 데려온거에요?"

남도헌은 송은하을 얻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고 몸이 천천히 뒤로 젖혀져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얼굴은 여느 때처럼 차가웠다,.

"걔를 왜 찾아?"

"복수하려고요..."

고지호가 언제 그런 패배를 겪은 적이 있었을까?

송은하의 일과 삶에 대해 그는 이해하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복수를 하고 싶으면 직접 찾아서 하던지..."

"..."

"됐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찾게 되면... 먼저 그 여자 손을 못쓰게 할 테니까, 그래도 감히 내게 칼을 댈 수 있는지 보자고!"

그는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 *

병원에서 송은하는 검사실에서 나오니 이유 모를 한기를 느끼며 움찔했다.

누가 그녀에게 저주를 하기라도 했나?

"송 선생, 오늘 밤 권 선생 송별회가 있대. 저녁 8시 성정 호텔 B구로 꼭 와."

동료가 송은하한테 알려주었다.

송은하는 흰 가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얼굴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가기 싫은 마음이 컸다.

권유빈과 남도헌의 관계를 생각하니 마음이 차가워졌다.

* * *

저녁 8시, 송은하는 송별회 장소에 도착했다.

그녀가 들어가려는 참에 입구에 차량 한 대가 멈춰 있는 것을 보았다.

권유빈이 차에서 내렸고 남도헌이 뒤를 따랐다.

그녀는 재빨리 기둥 뒤로 숨었다.

고개를 내밀자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함께 서 있었다. 남도헌이 권유빈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는지... 이런 자리에까지 기꺼이 와주었다.

오늘 송별회에는 병원 식구들 거의 다 왔겠지?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권유빈은 섬세한 메이크업을 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듯 말을 꺼냈다.

"우린 친구니깐."

남도헌이 말했다.

그가 이런 자리에 기꺼이 온 것은 단순히 그날 밤의 만남 때문이었다.

권유빈은 그 남자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자신이 했던 말이 지금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체면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들어 가요."

두 사람이 떠난 후, 송은하는 기둥 뒤에서 나왔다.

남도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그녀는 한번 생각하다 권유빈에게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설명하기로 했다.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동료가 다가와 불렀다.

"송 선생."

앞선 권유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송은하의 손이 잠시 굳어져 실수로 발신 버튼을 눌렀고, 그녀가 반응했을 때는 이미 권유빈의 휴대폰이 울린 뒤였다.

그녀는 입꼬리를 당기며 바쁘게 전화를 끊었다.

"미안, 잘못 눌렀네."

왠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남도헌이 뒤를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송은하가 휴대폰을 손에 들고 다소 코믹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눈썹 끝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도 사랑병원 의사인가?

"괜찮아."

권유빈은 따뜻하고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말을 하면서 남도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송은하는 밖에서는 아내라고 밝히지 말아달라는 남도헌의 부탁에 못 알아보는 척만 했다.

"이 분은, 남자친구?"

그녀는 미소를 지었고, 눈은 맑은 물 웅덩이처럼 맑고 빛났다.

권유빈은 설명하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남도헌 역시 일부러 부인하지 않았고 송은하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태도로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송은하는 웃으며 가볍게 칭찬했다.

"두 분 참 잘 어울린다, 천생연분, 천생연분이네!"

남도헌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보고 찢어버리고 싶은 듯 했다.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먼저 갈게."

송은하는 남도헌의 다정함이 얼마나 '악'인지 알고 있었는지 앞서 도망쳤다

그녀는 방금 자신을 부른 동료를 붙잡고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동료들은 귓속말로 속삭였다.

"천구그룹 사장님이라는 저 분이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분인데. 권 선생 정말 부러워. 저런 분과 함께할 수 있는 복을 누리다니."

송은하는 대답하지 않는다.

동료들은 더 덧붙여 말했다.

"이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남자가 있을 수가 있어?"

"돈에, 얼굴에, 몸매도."

"완벽한건지 어떻게 알아? 변태일 수도 있잖아."

송은하는 자신의 목을 조를 뻔한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변태라는 말은 모두 그에 대한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동료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권유빈이 제법 얼굴이 알려진 데다 원장님까지 오셨고 병원 상사들과 동료들까지 한꺼번에 오게되여 B구역 테이블이 꽉 채워졌다.

"송 선생, 여기로 앉아."

송은하는 저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막 가려는 참에 원장이 그녀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남도헌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원장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빨리 와."

원장이 직접 그녀를 끌어당기며 앉혔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안절부절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송 선생와 권 선생은 동급생인 데다가 동료이기도 한데 권 선생이 곧 우리병원으로 가니 축배를 들어야지."

원장은 말하면서 송은하를 살짝 터치했다.

"쟤 술 못마셔요.."

남도헌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남도헌이 술을 잘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주위의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

송은하도 깜짝 놀랐고 눈을 뜨자마자 남도헌의 웃을랑말랑한 눈을 마주했다.

테이블 밑에 놓여 있던 그녀의 손은 꽉 움켜쥐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권유빈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그의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우리 같은 직업은 술 마시면 안 되는 거든요, 송 선생과 저는 늘 친하게 지냈어요, 내가 떠나도 송 선생 생각이 계속 날 거에요."

권유빈은 시종일관 옅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더욱 넉넉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리자 남도헌이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내려놓으려던 찰나 송은하의 전화도 울렸다. 받기 버튼을 누르자 맞은 편에서 조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 아가씨, 고택으로 오세요, 주인님이 찾으세요, 당장이요..."

"알겠습니다."

송은하는 대답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 내가 술 대신 차 마실게., 하는 일마다 순조롭길 기원해."

휴대폰을 내려놓고 권유빈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상 위에 놓인 차를 들고 마셨다.

그녀가 일어나자 바로 그때 남도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떨어졌고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이런 우연도 있네, 저도 일이 있는데... 같이 갈래요?"

"..."

송은하는 말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송은하와 자신이 서로 모르는 척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언짢았다.

그녀가 언제까지 그런 척을 할 수 있는지 두고보고 싶었다.

모든이들의 시선이 송은하의 몸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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