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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아무리 독한 사람도 사람이라 하여도

다들 의아해했다. 그러게, 뭔 우연이 이렇게 많은 거지?

둘 다 일이 생겼다고?

권유빈 역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착각이었다면 이번엔 뭐지?

그녀의 눈은 남도헌과 송은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를 보아내려 하였다.

"송 선생은 대체 무슨 일이야?"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송은하는 정말 권유빈에게 자신이 남도헌의 아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남도헌이 씁쓸하게 돌아서서 권유빈에게 해명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엄두가 나지 못했다. 그녀가 건드릴 수 없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병원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서 또 다시 직장마저 잃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움츠러든 거북이로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것 같애, 전화까지 다 오시고... 안 갈 수 없어서 말이야. 남도헌 회장님도 무슨 일이 있는가 보네요? 어쩜 타이밍까지 딱 맞네요."

그녀는 헛웃음을 쳤다.

어물쩍 넘어가려 했지만 남도헌이 꼬투리를 잡으며 말했다.

"마침 저희 할아버지도 전화를 하셨는데, 할아버지께선 어디 사시나요? 같은 길이면 바래다 드릴까요?"

송은하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였고 그녀의 극도의 자제력이 아니었다면 참지 못하고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잔을 그의 재수 없는 얼굴에 내리칠 뻔했다.

"남도헌 회장님,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회장님과 함께 갈 수 있겠어요? 이만 가볼 테니 남도헌 회장님은 조심해서 편히 가세요."

그녀는 말하고는 도망가 듯 자리를 떴다.

권유빈은 조금 불안한 듯 남도헌을 넌지시 바라봤다.

"송 선생이랑 아는 사이예요?"

"아니."

남도헌의 표정은 방금 한 말이 자신의 말이 아닌 듯 차가웠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유빈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병원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서 일부러 남도헌을 불러들인 것인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적어도 남도헌이 온 이상, 그녀와 남도헌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가 명확히 알고 있을 테니까.

"바래다 줄게요."

권유빈은 남도헌과 송은하가 밖에서 어떤 접촉을 할까 봐 걱정하며 따라갔다.

필경 '그날 밤'은 송은하 였으니...

호텔에서 나와 현관을 한 바퀴 돌던 남도헌은 송은하가 보이지 않았다.

송은하는 남도헌에게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어떻게 여기서 자신을 기다릴 수가.

그럴줄 알았으면 택시를 타고 먼저 떠났을 것이다.

김윤재는 차 문을 열고 말했다.

"회장님."

남도헌은 권유빈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돌아가봐..."

그리고는 차에 올라타서 떠났다.

권유빈은 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음속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진작에 그냥 결혼하자고 말했던 걸.

그러면 이젠 그녀는 남씨 사모님이었을 텐데...

언제쯤 그녀는 남도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남도헌은 언제쯤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될까?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될까?

* * *

남씨 저택.

송은하가 먼저 도착했다.

남 할아버지는 이미 여든이 넘은 나이였고 오랜 세월의 연륜으로 얼굴에 주름이 깊었고 인자했다.

젊은 시절처럼 밝았던 눈빛은 아니었지만.

"아직 살 만하냐?"

그는 걱정스럽게 묻는 눈빛에는 온화한 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송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응이 됐어요."

송은하와 남도헌의 결혼은 그녀의 아버지가 제안한 것으로 모두가 알다시피 남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손자가 바로 남도헌이었다.

자신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남 할아버지가 남도헌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에 따라 거절했어야 했다.

호의를 베풀었더라도 다른 혜택을 주면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 할아버지는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남도헌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와 남도헌의 혼인신고를 해줬다.

남도헌의 별장에서의 생활도 할아버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송은하는 지금까지도 남 할아버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도헌이가 너를 힘들게 한 건 아니지?"

노인은 다정하게 물었다.

송은하는 정말 그 사람이 인간조차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할아버지가 그녀에게 잘해주긴 했지만 남도헌은 아직도 자신의 손자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도헌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남 할아버지는 물었다.

"너랑 은하랑 이젠 부분데... 은하는 온 지 반나절이나 지났어. 근데 넌 왜 이제 와?"

남도헌은 송은하를 힐끗 쳐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남 할아버지의 속마음은 다 알고 있었다, 자기 손자가 이 결혼생활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역시 송은하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었다.

"오늘 밤은 이 별장에서 묵어... 조 집사, 은하를 데리고 도헌의 방으로 가봐."

"예."

조 집사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송은하를 향해 손짓을 했다.

"사모님, 이쪽으로 오세요."

송은하는 조심스럽게 남도헌을 흘깃 쳐다봤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고 그녀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며 집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할아버지와 손자만 남았다.

남 할아버지는 힘겨움이 섞인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마음속에 원망과 미움이 있는 건 알아. 근데 이미 지나간 일은 너무 오래됐으니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됐어..."

과거가 생각나는 듯 노인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남도헌은 소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침묵을 지켰고 얼굴빛도 비밀스러워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노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송은하와 결혼하게 해준 건 내 약속이었어. 내가 알아서 한 거니까 탓하지 마, 나도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 너도 지금 어리진 않아, 이제 가정을 꾸릴 때가 됐어. 은하의 아버지가 협박하는 건 비렬 하지만... 은하는 착한 애야."

남도헌은 눈썹 끝을 치켜세우며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 바람을 피울 수 있는 여자가?

하지만 남할아버지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여자랑 꼭 이혼을 해야 겠다.

남할아버지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 남씨 가문에서는... 자신의 말 한마디는 들어주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기 조차 꺼려할 것 같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그는 대부분 이렇게 침묵을 지켰고 이 집에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남 할아버지는 그를 무리하게 밀어붙일 처지가 아니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일찍 가서 쉬어."

그리고는 손을 힘없이 흔들었다.

남도헌은 일어났다.

때마침 조 집사가 돌아왔다.

"도련님..."

남도헌은 아주 희미하게 응답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조 집사는 남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물었다.

"이래도 될까요?"

남 할아버지는 말했다.

"아무리 독한 사람이라도 다 사람이니 그래도 감정이나 욕망이 없을 수는 없지 않느냐.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면 남자의 마음도 조금이라도 설레게 되잖아... 남자가 느껴야 할 충동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못할까?"

"그래도 도련님 성격에 아시잖아요... 일부러 사모님과 같이 살도록 하는 건..."

조 집사는 걱정해 하며 말했다.

"두 사람이 접촉도 하지 않고 어떻게 감정이 생길 수 있겠어? 밖에서는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데, 저택에서라도 내 말을 듣게 해야지..."

노인의 목소리는 낮았고 마음속으로는 남도헌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가 며칠 더 살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 놈을 돌봐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지..."

의미심장한 말투였다.

"도련님이... 그 뜻 깊은 마음은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조 집사는 노인을 방으로 모셔다 드렸다.

* * *

방안에서.

송은하는 조 집사의 안내로 저택에 있는 남도헌의 방으로 갔다.

가기 전에 그녀한테 설명했다.

"이 방은 도헌님이 어렸을 때부터 살던 방인데 중간에 한 번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이 방은 별장의 장식 스타일과 180°로 달랐다. 훨씬 더 어두웠고 주요 색상은 검은색과 회색으로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색조로 가득했다.

그녀의 시선은 우연히 책장에 떨어졌고 섬세한 상자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소녀가 좋아할 것 같아 보였고 이 방의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살펴보고 있을 때,

"뭐 하는 거야?!"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가 그녀의 뒤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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