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너는 애초부터 필요 없는 존재였어
친할머니 생신엔 고작 5만 원으로 대충 넘기고, 먼 친척 부자 집에는 아첨하려고 희귀 도자기를 낙찰받았다니... 임희영이 이런 사람이었나?
정말 몰랐네.
주이란이 교육한 결과물이 겨우 이 정도라니,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순간, 주이란과 임희영의 얼굴은 동시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심광섭도 얼굴이 화끈거려서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급히 둘을 3층 다른 구역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곳은 한산하고 조용해 외부 시선을 피하기 좋았다.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심광섭이 폭발했다.
"하영아, 오늘 약이라도 먹었어? 어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돈 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오늘은 제발 조용히 좀 있어!"
그 말에 심하영은 콧방귀를 뀌듯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리고 태연하게 말했다.
"아빠는 할머니 생신 축하하러 오라고만 했고, 주 여사님한테 모욕당하라고 한 적은 없어요. 돈 안 줬으니 제가 반격하는 건 당연하죠."
"제가 얌전하게 협조하길 원하면, 1억 더 주세요. 조용히 주 여사님한테 3분 동안 욕먹어 드릴게요. 절대 말대꾸 안 할게요."
심광섭의 얼굴에 혈색이 확 올라왔다. 분노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주이란은 그 말을 듣고 결국 참지 못했다.
"심하영, 너 정말 욕심이 끝도 없구나!"
남편 옆으로 바짝 다가간 그녀는 손가락을 심하영에게 들이밀며, 혐오에 찬 목소리로 퍼부었다.
"이 애 본모습을 아직도 몰라? 당신 그 천한 엄마랑 똑같아. 아주 돈밖에 모르는 썩은 여자—"
짝!
주이란의 머리가 옆으로 확 꺾이고, 오른쪽 뺨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붉게 번졌다.
"……"
얼굴을 감싼 주이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심하영을 바라봤다.
"감히… 나를 때려? 심하영! 나는 네 엄마야!"
심광섭도 놀라 눈을 크게 뜨며 꾸짖었다.
"하영아, 미쳤어? 어떻게 엄마한테 손을 들어!"
심하영은 뜨겁게 화끈거리는 손을 털듯 흔들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저를 낳아준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네요. 아니었으면 오늘 당신 입을 찢어버렸어요."
그 말에 주이란은 질겁한 표정으로 굳어졌다. 심하영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조금만 더 건드리면 정말로 칼이라도 들고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도시 여자가 아니라, 완전히 시골에서 자란 불량배였다.
심광섭도 입술을 꽉 깨물며 아무 말도 못 했다.
드디어 주변이 고요해지자 심하영은 손바닥을 가볍게 주무르며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입에서 나온 그 '돈밖에 모르는 썩은 여자'. 그 여자가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당신 남편을 낳았어요."
"그 사람은 약초 팔고 농사 지으면서 저를 키웠어요. 이 세상 누구라도 우리 할머니를 욕심쟁이라고 욕할 수는 있지만, 당신 부부만큼은 절대 그럴 자격 없어요."
"다시 한 번 할머니 욕하는 소리 들리면, 기상천외하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실제로 보여줄게요."
말을 끝내자, 심하영은 두 사람을 지나쳐 서재 출구로 걸어갔다.
주이란은 방금 뺨을 맞은 충격으로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다. 참지 못하고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심하영! 너는 애초부터 필요 없는 존재였어!"
"네 언니가 백혈병 걸려서 제대혈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내가 널 왜 낳았겠니!"
그 막말에 심광섭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탁 내려놓으며 고함쳤다.
"입 닥쳐! 그 얘기가 지금 무슨 의미가 있어!"
"심광섭! 나한테까지 소리 지르는 거야?"
주이란은 눈물을 머금고 남편을 쏘아보며 외쳤다.
"우리 하린이가 얼마나 똑똑했는데! 그 애가 살아 있었으면, 심구원이 천재 소리 들을 일도 없어!"
"지금 하영이 좀 봐! 평범하기 짝이 없지 않아? 당신 그 천한 엄마한테 교육받아서 뭐가 됐어? 사람들 앞에서 나 망신 주고, 이제는 나한테 손까지 들어! 내가 얘를 왜 그냥 두고 살겠어!"
"하린이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이런 꼴을 봤겠어?"
죽은 큰딸의 이름이 나오자, 주이란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에는 참지 못한 울음이 차올랐다.
심광섭 또한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얼굴에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스쳤다.
심하영은 심씨 집안의 진짜 맏딸이 아니었다. 정식 맏딸은 바로 심하린.
심하린은 말 그대로 영재 중의 영재였다.
고작 12살에, 또래들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이미 고3 교육 과정을 들었고, 주이란의 말대로라면, 심하린이 살아 있었다면 심구원이 천재라 불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불행은 잔인하게도 그 재능을 꺾고 찾아왔다.
13살이 되던 해, 심하린은 갑자기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고, 심하린을 살리기 위해 주이란과 심광섭은 둘째를 낳아 제대혈로 치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즉, 주이란의 말대로 심하영은 심하린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였다.
그러나 임신 8개월 만에, 심하린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고, 주이란은 의사가 강력히 말렸음에도 제왕절개를 강행했다.
그리고 둘째 심하영은 마침 심광섭의 희귀 혈액형을 그대로 물려받았지만, 그 제대혈이 심하린과 매칭되지 않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심하영은 2월 18일 새벽에 태어났고, 심하린은 그날 밤 동시에 숨을 거뒀다.
그날 이후로 심하영의 생일은 심하린의 기일이 되었다.
심하영은 전생에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였고, 그 도구가 쓸모없어지자 주이란에게는 존재 자체가 역겨운 짐이 되었다.
주이란은 왜곡된 죄책감과 슬픔을 모두 심하영에게 떠넘겼다.
큰딸의 죽음까지 작은딸 탓으로 돌리며, 그녀를 재앙덩어리라고 여겼다.
결국 주이란은 어린 심하영을 C시 교외의 작은 시냇가에 버려두고, 살든 죽든 알아서 하라며 내버려두려 했다.
그 중요한 순간에, 할머니가 달려와 시냇가로 뛰어들어 심하영을 구해냈다.
그 후로 그녀는 할머니 손을 잡고 시골로 내려가 자랐다.
그때의 심하영은 이름조차 없었다.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이 바로 심하영이었다.
심하영은 갑자기 몸을 돌려 주이란을 노려봤다.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분노가 도사리고 있었다.
"제가 심하린과 매칭이 안 돼서 쓸모없는 도구라고 판단해서, 저를 시냇가에 버려 죽든 말든 둔 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주이란은 턱을 치켜세우고, 전혀 부끄러움 없는 태도로 말했다.
"맞아! 네 생일이 네 언니 기일이잖아. 널 보면 매일 고통스럽고 미쳐버릴 것 같았어. 너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 안 돼!"
"네 언니만 아프지 않았으면, 너 같은 건 애초에 태어날 자격도 없었어!"
"네 목숨은 풀만도 못해. 안 죽은 게 네 팔자가 센 거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난 똑같이 할 거야! 후회되는 유일한 건, 네 목을 직접 조르지 않고 시냇가에만 버렸다는 거야! 그 늙은 것만 아니었으면 너는 그날 죽었어야 해!"
이건 모른 척해줄 수도, 넘어갈 수도 없는 말이었다.
주이란은 지금 이 순간 심하영의 가슴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그렇게 잔인한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생에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심하영은 감정에 휘말려 주이란에게 달려들어 난투를 벌였고, 그 결과 모든 하객들은 그녀를 '불효녀'로 규정했다.
그녀의 명성은 그날 이후 가파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생의 심하영은 달랐다.
그녀는 맹렬한 감정 대신 차갑고 예리한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두 사람에게 흔들었다.
"방금 한 말로, 저에게 저지른 범죄를 직접 인정하셨네요."
"이미 녹음해서 증거 확보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