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결혼식 날, 내가 건넨 USB를 강민중이 신나게 재생했다.
다음 순간, 화면이 번쩍 켜지면서 서세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또렷하게 울렸다.
"오빠, 그러지 마…"
"이번이 처음은 아니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해?" 강민중의 낮은 웃음이 이어졌다.
식장은 숨을 삼키는 소리로 가득 찼고, 카메라는 본능처럼 두 사람을 향해 줌을 당겼다. 생중계 댓글창은 폭발하듯 달아올랐다.
— 강민중이 의붓여동생이랑 잤다고?!
— 부자 집안 저사세 클라스 보소…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욕설을 삼키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민중아, 이 사진… 이건 진짜 대단한데?"
정장을 입은 남자가 폰을 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각도가 죽여줘."
"적당히 해. 신부 여은하가 바로 옆에 있는데."
"뭐가 문제야? 어차피 제대로 보지도 못하잖아? 게다가 고아라매? 들켜도 뭐 어쩌겠어?"
그들의 웃는 소리가 칼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잔을 들고 몸을 기울여 화면을 잘 못 보는 척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게 또렷했다.
서세진.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강민중에게 매달려 있었고, 강민중은 웃옷을 벗은 상태에서 뜨거운 숨이 목과 쇄골에 닿을 듯 선명히 잡혀 있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고 있었다.
뭔가가 가슴 한가운데에 쾅 하고 떨어지는 듯했고, 손바닥이 피날 만큼 꽉 움켜쥐어졌다.
"무슨 사진 보고 있는 거야?"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잔을 내려놓으며 최대한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테이블 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냥 가족사진이야." 강민중이 태연하게 폰을 치우며 웃었다.
"그래, 가족사진이지. 의붓여동생도 가족은 가족이니까." 남자가 비죽 웃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떤 사진인데? 나도 볼 수 있어?"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내게 바짝 다가와 흐트러진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지금은 잘 안 보이잖아. 그 의사 예약만 잡히면, 그때 직접 보여줄게."
그의 손길은 다정했고, 미소도 늘 그렇듯 부드러웠다. 나도 맞춰 웃었다.
"응."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결혼식에 맞춰 내가 이미 혼자서 그 의사 예약을 잡아 수술까지 끝냈다는 걸.
그를 놀라게 해주려고, 내 시력을 되찾아두었다는 걸.
지금 내 눈은 완전히 회복돼 있었다.
"은하야, 뭐라도 먹어."
그는 새우 껍질을 벗겨 내 그릇에 올려주며 한결같이 성자인 척한 눈빛을 보였다.
"고마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새우를 슬쩍 옆으로 밀어두었다.
"근데 지금은… 입맛이 별로 없네."
내 속을 끓게 만들던 그 손, 내 뒤에서 온갖 더러운 짓을 저지르던 그 손을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잠시 조용하던 테이블엔 곧 다시 수다가 이어졌다.
"결혼식이 모레라던데? 그것도 크루즈에서 한다며?"
"민중아, 진짜 낭만적이다~"
"낭만적인 것뿐이야? 여동생도 엄청 잘 챙기잖아~"
누군가 마지막 말을 일부러 늘였다.
"형제끼리 정든 게 잘못은 아니지."
킬킬거리는 웃음.
"그렇다고 남편 자격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웃음이 또 한 바탕 터졌다.
나는 잔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줬다.
"은하야, 어디 안 좋아? 잠깐 나갈래?"
강민중이 몸을 숙이며 내 귀에 바람처럼 숨을 뿜었다.
순간 내 시선이 흔들렸다.
어이가 없었다.
바람피우는 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하면서, 아직도 완벽한 약혼남 연기를 하고 있다니.
"괜찮아."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폰 울리던데? 메시지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의 눈에 순간적인 당황이 스쳤다가 금세 부드러운 미소로 덮였다.
"웨딩 플래너야. 이따가 해도 돼."
"지금 해. 그래야 우리 결혼식이 더 완벽해지지."
내 웃음은 얇게 늘어져 있었고, 나는 방금 전 누가 보냈는지 똑똑히 봤다.
서세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