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여우 같은 년
"내가 누구냐고? 나는 이터널 그룹 대표의 미래 부인이야! 경고하는데, 우리 도윤 씨한테서 당장 떨어져. 장유리 씨, 얼른 경비 불러서 이 여자 내쫓아요!" 민다정의 목소리가 다소 날카로웠다.
"대표의 미래 부인? 그럼 아직은 아니라는 말이네요? 한 가지 알려줄게요. 박도윤 씨에게 저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에요. 지금 저를 내쫓으면, 나중엔 다시 모셔와야 할 걸요?" 심수진은 여전히 차분하게 말했지만, 시선은 민다정을 향하지도 않았다.
민다정은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당장 얼굴이 일그러지며 화를 냈다.
"모셔와? 꿈도 꾸지 마! 당장 꺼져!"
장유리가 움직이지 않자, 민다정은 직접 나서서 심수진을 밀치려 했다. 하지만 심수진이 몸을 재빨리 피했고, 민다정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휘청였다.
"대표 미래 부인, 조심하세요."
심수진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지만, 민다정 눈엔 그 손길조차 조롱처럼 느껴졌다.
"손 치워!"
그녀가 거칠게 손을 뿌리치더니, 그대로 심수진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찰싹—.
뺨을 때리는 소리가 로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심수진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지만, 민다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그녀의 긴 머리채를 한 움큼 움켜쥐고는 악에 찬 목소리로 내뱉었다.
"주제에 이 얼굴로 감히 이터널 그룹에 기어들어와서 우리 도윤 씨를 유혹해? 이건 경고야. 다음에 또 이러면 네 얼굴, 아예 망가뜨려줄 테니까!"
그 악랄한 말에 심수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반격하려던 순간, 시야 한쪽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민다정의 이 오만방자한 모습을, 박도윤이 과연 본 적이 있었을까.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박도윤을 확인한 심수진은 민다정이 여전히 머리채를 잡고 악담을 퍼붓도록 놔둔 채, 목소리를 높였다.
"이터널, 정말 너무하네요!"
"너무하다고? 네 여우 같은 면상 가죽 벗기지 않은 것만 해도 관대한 거야. 지금 당장 이터널 그룹에서 꺼져. 안 그러면—"
"박 대표님."
심수진이 딱 맞춰 말을 끊고, 시선을 정확히 박도윤에게 돌렸다.
"이게 협력사에서 파견한 디자이너를 맞이하는 이터널 그룹의 태도입니까? 대표님이 협력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저희 회장님께 한 마디만 전해주시면 됩니다. 굳이 저희 H`J 그룹을 이렇게 모욕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박도윤은 민다정의 이런 추한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민다정, 손 놔!"
박도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가 갑자기 나타날 줄 몰랐던 민다정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심수진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대표님 미래 부인께서는 저를 주먹으로라도 때리시겠다는 건가요?"
"민다정!"
박도윤의 목소리엔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제야 민다정이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심수진의 손을 놓고는, 다소 당황한 얼굴로 박도윤을 바라봤다.
"도윤 씨, 그게 아니야. 이 여자가 먼저 날 도발했어. 이 여자는 여우 같은 년이고, 나는 그냥..."
"입 다물어! 저리 비켜!"
박도윤은 눈앞에 있는 이 역겨운 여자가 민다정이라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웠다.
그는 곧바로 민다정을 지나쳤고, 그녀가 팔을 뻗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박도윤은 이를 재빨리 쳐냈다.
"캐서린, 정말 죄송합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심수진은 방금 전까지 민다정에게 머리채를 붙들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 가늘고 긴 손가락을 보자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박 대표님, 저희 간의 협력에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저희 회장님께 귀사에서 받은 대우를 보고드린 후, 협력 건을 재검토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도윤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박도윤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정말…… 그녀인가?
이름만이 아니라 체형과 걸음걸이까지, 심수진과 너무도 닮은 그 여자. 바로, 캐서린.
하지만 그 멍함은 찰나였고, 그는 금세 정신을 가다듬었다.
"캐서린께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민다정은 저희 회사 직원이 아니라 제 가족입니다. 방금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의 "가족"이라는 말은, 심수진의 마음에 깊게 새겨져 있던 상처를 다시 찢어놓았다. 피가 흐르는 것처럼 아프고 쓰렸다.
"가족이요?"
심수진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지만, 그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대표님의 가족조차 저를 환영하지 않는데, 이터널 그룹이 저희 H`J 그룹과 진심으로 협력하고 싶어 한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굳이 협력사가 이터널 그룹일 필요는 없잖아요? 박 대표님,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끝내고, 그대로 돌아서 걸어갔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도 붉게 부어올랐지만, 그녀의 우아함과 기품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박도윤이 재빨리 심수진의 팔을 붙잡았고, 그 따뜻한 손길에 심수진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비웃듯 고개를 들었다.
"어쩌시려구요? 박 대표님의 미래 부인이 저를 때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박 대표님까지 강경한 수단으로 절 붙잡아 두시겠다는 건가요?"
박도윤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비즈니스계에서 수많은 상황을 겪으며 이토록 오래 버텨왔지만,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여성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