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우리 사이는 이제 끝이야
심수진은 임신 테스트기를 받아들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임신이었다...!
드디어 박도윤의 아이를 가진 것이었다!
결혼 3년 만에 드디어 그의 아이를 갖게 된 건, 심수진에게 말로 다 못 할 만큼 힘들게 얻은 결실이었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 기쁜 소식을 당장이라도 박도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골목 모퉁이를 도는 순간,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민다정?
박도윤의 첫사랑. 그녀가 돌아온 것이었다.
심수진은 얼떨결에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회사에 있어야 할 박도윤이 그녀 곁에 서서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있는 게 아닌가?
더 충격적인 건, 민다정의 배였다. 분명히 5개월은 훌쩍 넘어 보였다.
"도윤아, 난 괜찮아. 너무 긴장하지 마. 아기는 건강해."
"그래도 검사를 받아보는 게 안심이 돼. 네 뱃속 아이는 우리 박씨 집안의 장손이니까, 조금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되지."
민다정은 꽃처럼 환하게 웃었고, 박도윤은 마치 물처럼 부드럽고 온화했다.
그 모습을 본 심수진의 가슴은 날카롭게 찢어졌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심수진은 손에 든 임신 테스트기를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그 고통은 가슴속의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자궁이 차가워 아이를 갖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 3년간 아이를 갖기 위해 민간요법이란 민간요법은 죄다 시도했고, 병원도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몇 번은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힘든 고비도 넘겼다. 그런데 하필 오늘, 어렵게 임신 사실을 확인한 그날, 민다정이 박도윤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걸 보게 된 것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박도윤의 미간이 순간 깊게 찌푸려졌다. 방금 전까지 온화하던 눈빛은 순식간에 날카롭고 냉정하게 변했고, 주위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서늘해졌다.
심수진은 그의 그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내가 왜 여기 있냐고? 박도윤, 나 당신 아내야!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 여자랑 같이 산부인과에 검사 받으러 와놓고, 나한테 왜 여기 있냐고 묻는 거니?"
그녀의 외침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민다정이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도윤아, 미안해. 내가 너한테 폐를 끼쳤어. 내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더라면, 아니, 내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이를 지웠더라면 수진이를 이렇게 오해하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 정말 다 내 잘못이야."
말을 마친 민다정은 돌아서서 달려갔다.
"송성훈, 그녀를 따라가. 조심하라고 전해. 그녀 뱃속의 아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한테 책임을 물을 거다."
박도윤의 목소리에는 조급함이 실려 있었다.
그의 곁에 있던 비서 송성훈은 곧바로 뒤를 따라갔다.
심수진은 숨이 막힐 듯했다. 그런 관심, 박도윤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박도윤, 당신 진짜 나쁜 놈이야!"
그녀는 홧김에 손을 들어 그를 세게 때리려 했지만, 손은 그의 팔에 막혔고, 그의 약간의 힘에도 심수진은 아파서 미간을 찌푸렸다.
"심수진, 3년 전 너는 억지로 나랑 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너랑 결혼하게 된 거야. 그때 너도 알았어야 하지 않나? 이 결혼에서 난 네가 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따위 줄 수 없다는 걸.
명심해. 다정이 뱃속의 아이는 아주 소중한 존재고, 우리 박씨 집안의 혈육이야.
네가 감히 그녀한테 무슨 비열한 짓이라도 한다면, 난 더 이상 명목상 부부의 정도 고려하지 않을 거야."
박도윤은 말을 마치자마자 심수진을 거칠게 밀어냈다.
심수진은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고, 급히 옆의 벽을 붙잡았다.
그 와중에 손에 들고 있던 임신 검사지가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을 타고 박도윤 앞까지 흘러갔다.
"너…… 임신했어?"
박도윤의 눈빛에 순간 당황이 스쳤다.
하지만 심수진은 오히려 웃었다.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신이 지금 그걸 신경 써? 3년 전, 난 당신한테 솔직하게 말했어. 하지만 당신은 믿지 않았지. 내가 아무리 진심을 보여도 당신은 못 본 척했어. 이제 당신 첫사랑이 당신 아이까지 가지려 하네? 그래, 나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나에게도 존엄과 자존심은 있어. 이 아이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어."
심수진은 마음이 칼로 베이는 듯 아팠지만,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돌아섰다.
그 순간, 박도윤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그는 갑자기 빠르게 다가와 심수진을 번쩍 안아 들고 병원 밖으로 향했다.
"심수진,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결혼하자고 들이민 것도 너였고, 이제 와서 아이 필요 없다고 내치는 것도 너잖아. 지금 나, 박도윤을 우습게 보고 가지고 노는 거야?
확실히 말해두는데, 이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내가 정해."
"박도윤, 놓아줘! 이건 원래 내 아이야. 당신이랑은 상관없잖아!"
심수진은 분노에 치받쳐 격렬하게 몸부림쳤지만, 그의 팔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네 아이? 나 없이 네가 무성생식이라도 했냐? 심수진, 지금 나 화나게 하지 마!"
박도윤의 눈매가 매섭게 가늘어졌다. 그 차가운 기세는 순식간에 주변을 휘감아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그의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전화를 받기 위해 박도윤은 심수진을 잠시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한 손으로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 손에는 패권적이고 소유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심수진은 서글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늘 이렇게, 그녀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마치 정말로 자신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사람처럼.
지금처럼 말이다.
"뭐라고? 다정이가 자살을...?! …잘 보고 있어, 금방 갈 테니까!"
박도윤의 목소리에 갑작스러운 긴장감이 실렸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조금이나마 애매했던 심수진의 마음은 다시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