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한국어
챕터
설정

제13화 무릎 꿇고 사과해

유서연은 꽤 신기하게 느꼈다.

정강산은 나름대로 재능 있는 사람이었고, 정씨 집안도 명문가인데 어쩌다 최숙경 같은 사람이 며느리를 구박하는 위치에 있을까?

시장 아줌마처럼 소란을 피우는 모습에 유서연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해두죠. 저, 이미 당신 아들이랑 이혼했고, 정씨 집안 돈은 단 한 푼도 안 가져갔어요."

"개소리 마!"

최숙경은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그냥 넘어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너 같은 가난뱅이가 무슨 돈으로 이런 고급 매장에 와? 내 아들 돈 아니면 뭐야? 내가 말해두는데, 유서연, 너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도 난 용서 못 해!"

무릎 꿇고 사과?

유서연은 어이가 없어 웃음까지 나왔다.

이 여자는 정말 언제 봐도 극단적이고, 한 번도 이성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더 얘기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날뛰는 최숙경이 가만둘 리 없었다.

"어딜 도망가?"

최숙경은 유서연의 뒤통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김기준이 미리 대비하고 있다가 그녀를 막아섰고, 곧바로 유서연을 보호하듯 최숙경을 뒤로 밀쳤다.

그는 일부러 힘을 줘서 밀었고, 최숙경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아이고 세상에!"

그녀는 고개를 들자 김기준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고,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말세야! 내가 몇십 년을 살아왔는데 이제는 이 싸가지 없는 놈이 나를 때리네! 아이고, 내 허리야, 아이고 죽겠네!"

구경하던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고, 결국 매장의 총매니저가 호출되었다.

최숙경은 눈치 빠르게 김기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양아치가 날 때렸어요! 아이고 허리야... 진짜 아파 죽겠네…"

그녀는 이곳의 VIP 고객이었고 꽤 큰돈을 쓰는 손님이었기 때문에, 조 매니저는 당연히 그녀 편을 들어야 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유서연 일행을 쳐다보다가, 시선이 김재현에게 닿는 순간 눈이 커졌다.

"도련…"

그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김재현이 단호하게 끊었다.

"저 여자 거짓말이에요. 못 믿겠으면 감시카메라 확인해보세요."

조 매니저는 큰일을 겪어본 사람답게 눈치를 보며 눈을 굴리더니, 갑자기 태도가 확 바뀌었다. 고개를 숙이며 아첨스럽게 웃었다.

"네, 네! 지금 바로 감시카메라 확인하겠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유서연은 또 한 번 김재현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정말 산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학생이 맞긴 할까?

유서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 조 매니저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는 최숙경을 향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주머니, 그냥 돌아가세요.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

"경찰이라니?"

최숙경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조 매니저가 인상을 쓰며 단호하게 말했다.

"감시카메라 확인해보니 아주머니가 먼저 손을 댄 게 분명히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상대가 때렸다고 하시나요? 계속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진짜 경찰 옵니다. 경찰이 와서 영상 보면, 일부러 사실을 왜곡했다고 판단해서 죄명까지 붙을 수 있어요."

최숙경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사색이 되며 소리쳤다.

"뭐라는 거야!"

여전히 억지를 부리자, 김기준이 비웃듯 웃으며 받아쳤다.

"나이 그렇게 먹고도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죠? 우리 서연이가 당신네 집에서 어떤 꼴을 당했는데! 간신히 그 쓰레기 같은 아들이랑 이혼했는데, 아직도 놔주질 못하겠어요? 노약자라고 내가 손 못 쓸 줄 알아요? 나 진짜 열 받으면, 당신 같은 사람 하나 매장시키는 거 일도 아닙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최숙경은 김기준의 말에 겁을 먹고 당황하더니, 이를 악물고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

김기준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비웃었다.

"완전 약한 사람한텐 갑질하고, 센 사람은 빌빌 거리면서 무서워하는 거 보니 딱 그거네. 약강강약, 엄마를 보니까 아들이 왜 그런지 알겠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며 상대방의 말을 듣던 김기준은 무의식적으로 유서연을 바라봤다.

유서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 나랑 관련된 거야?"

"내 친구가 그러는데, 정강산 비서가 6년 전 고아라 교통사고 때 도로변 감시카메라 자료를 조사하고 있대."

그 말이 끝나자, 유서연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김재현은 유서연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채고, 고개를 돌려 김기준에게 물었다.

"무슨 감시카메라?"

김기준은 분노를 숨기지 않은 채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고아라, 그 독사 같은 여자 때문이야. 깨어나고 나서 서연이가 정강산이랑 결혼했다는 걸 알자마자, 질투심에 불타서 복수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겠지. 그러니까 일부러 거짓말로, 자기 교통사고가 유서연이 질투해서 저지른 짓이라고 말했을 거야. 정강산이 그렇게 똑똑하다는 사람이 이게 거짓말인 줄도 모른다는 게 더 어이가 없다 진짜."

김재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와서 영상이 남아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정강산이 운 좋게 구해낸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 말도 맞지."

김기준이 무언가 떠오른 듯, 표정이 바뀌었다.

"고아라 같은 음흉한 여자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까지 꾸며낼 정도라면, 혹시 가짜 영상까지 만들어서 너한테 누명 씌우려는 거 아닐까?"

그 말을 들은 유서연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눈에 닿지 않았다.

"정강산이랑 이혼했으니 이제 서로 상관없이 살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나 봐. 누군가는 끝까지 날 놔주질 않네."

그녀는 고현철이 아버지를 억울하게 누명 씌었던 일, 그리고 고아라가 깨어나자마자 자신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역시 부녀지간은 괜히 부녀지간이 아니지.

이 사람들,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본 걸까?

유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고아라가 가만히 있으면 나도 굳이 나설 일 없지. 하지만 먼저 덤빈다면... 나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될 거야."

지금 앱을 다운로드하여 보상 수령하세요.
QR코드를 스캔하여 Hinovel 앱을 다운로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