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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규정은 그가 정한다

"나 생각 좀 해볼게."

심우리는 그렇게 대답하며 한설아와 의논을 마쳤고, 결국 한설아는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3일, 시간이 많지 않아. 우리야, 빨리 결정을 내려. 생각이 정리되면 나한테 연락해."

귓가에는 한설아가 떠나기 전에 했던 말들이 맴돌았다. 우리의 마음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황보 집안에 남으려면 아이를 지워야 해."

"우리야, 심씨 집안의 두 딸 모두 망칠 순 없잖아."

심우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설마, 정말로 아이를 지워야만 하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밖에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몸이 긴장되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 마침 윤성이 황보재혁을 방으로 밀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눈길이 마주쳤다. 1초도 안 돼 심우리는 서둘러 시선을 피하고, 긴장된 상태로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가려 했다.

"거기 서."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우리의 발걸음은 멈칫했고, 마치 땅에 심어진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 잘 생각했어?"

황보재혁의 입가엔 비웃음이 담겨 있었고, 그의 눈빛은 마치 피에 굶주린 맹수처럼 위험해 보였다.

우리의 두 손가락은 서로 엉켜 꼼지락거렸고, 그녀는 아래 입술을 꽉 깨물었다.

"3일... 아닌가요?"

"너 3일이나 낭비하려는 거야?"

재혁의 어조는 살짝 높아졌고, 그의 시선엔 차가움이 더해졌다.

심우리는 눈을 부릅 뜨고 맞섰다.

"약속 지키는 거 아니었어요?"

그녀의 큰 눈에는 경악과 놀라움이 담겨 있었고, 마치 차가운 샘물이 치솟는 듯했다.

황보재혁은 길고 가느다란 눈매를 가늘게 뜨며 차갑게 웃었다.

"나랑 장난하고 싶은 건가? 그래, 좋아. 하지만 규칙은 내가 정해."

‘장난?’ 우리는 빨간 입술을 덜덜 떨며 그를 노려보았다.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네가 기분 나쁘고 화가 난다면, 좋아. 그럼 당장 네 물건 싸서 이 집에서 나가."

그 말을 듣자, 심우리는 주먹을 꼭 쥐었다.

그는 그녀가 화가 나서 황보 집을 떠나기를 바라며 일부러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심우리는 그와 논쟁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꼭 쥔 주먹을 서서히 풀고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불을 폈다.

재혁은 그녀가 울부짖으며 난리라도 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그저 억울한 눈빛으로 한 번 바라보더니, 결국 몸을 돌려 그를 무시해버렸다. 그녀는 그와 맞서 싸우기보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물러났다.

황보재혁은 마치 허공에 펀치를 날린 듯 허탈함을 느꼈다. 뭔가가 더 끓어올랐지만, 그 감정은 분출되지 않았다.

"윤성, 나가 있어."

그는 차갑게 명령했다.

윤성이 재혁의 지시를 받고 멈칫했다.

"그런데 도련님, 아직 제가 도와드려야..."

"쟤가 작은 사모님 되고 싶다며? 그럼 이젠 이 일을 쟤가 하면 되겠네."

침대를 정리하던 우리는 이 말을 듣고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제가 뭘 해야 하나요?"

"알려줘. 황보 사모님께서는 뭘 해야 하는지."

윤성은 재혁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의 진심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도련님께서는 다리가 불편하시기 때문에 샤워하실 때도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부르시면 즉시 가셔야 하고······도련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윤성은 차분히 설명한 뒤,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심우리는 처음엔 진지하게 듣고 있었지만, 들을수록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둔감한 윤성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잘해야 해요. 안 그러면 도련님께서 화가 나셔서 사모님을 밖으로 내쫓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놀라서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신신당부를 마친 윤성은 재혁에게 다가가 보고하였다.

"도련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윤성은 방을 나갔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문 밖에서 벽에 귀를 대고 안을 엿듣고 있었다.

방 안에는 이제 우리와 재혁만 남겨졌다.

심우리는 방금 윤성이 한 말이 떠올라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거기서 뭐해? 이리 안 와?"

황보재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심우리는 깜짝 놀라 몸을 떨며 다가갔다.

"뭘 그렇게 떨어?"

재혁은 그녀의 두려움에 짜증이 난 듯 소리쳤다.

"밀어서 욕실로 가."

우리는 그의 지시에 따라 그를 욕실로 밀고 갔다.

황보 집안의 욕실은 매우 컸다. 아마도 황보재혁의 불편한 다리를 고려해 특별히 설계된 것 같았다. 하지만 욕실에 들어서자, 황보재혁의 차가운 기운이 온 공간을 휘감는 듯했다.

마치 욕실이 갑자기 작아진 것만 같았다.

심우리는 윤성의 말을 떠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옷은 어디에 있나요? 제가 가져올게요."

"첫 번째 옷장에 파란색 잠옷이 있어. 그거 가져와."

"네."

심우리는 서둘러 잠옷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재혁은 이미 상의를 벗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심우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고개를 돌려 손으로 눈을 가렸다.

"소리는 왜 질러?"

황보재혁은 무덤덤하게 물었지만, 그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왜 옷을 벗어요!”

심우리가 당황해 말을 꺼내자 재혁의 눈에는 불쾌한 기색이 스쳐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가 문 앞에서 그를 등지고 서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비웃음이 서린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혼녀 주제에 순결한 척은."

우리는 그가 옷을 입고 있기를 바랐지만, 차마 옷을 입어달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샤워를 하려면 옷을 벗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이미 부부라는 명목 아래 있기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주눅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심우리는 차분히 마음을 다잡고는 등을 돌렸다. 작은 얼굴에 다시 평온한 표정을 띄우고 말했다.

"옷 가져왔어요. 다른 건 뭐 도와드릴까요?"

"옷 벗겨."

그 말을 들은 심우리는 잠시 당황했지만, 천천히 다가갔다.

"먼저 벨트를 풀어."

벨트를 풀라는 말에 우리는 재혁을 바라보았다. 다리 장애 때문에 그가 평소 운동을 많이 못 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탄탄한 가슴과 평평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심취했어? 벨트 풀라는 말 못 들었어?"

황보재혁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그의 예리한 눈빛과 마주쳤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두 손으로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도 이런 걸 해본 적 없는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황보재혁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긴장한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그도 약간 답답해졌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야?"

"아...?"

우리는 점점 조급해졌고, 결국 울먹이며 말했다.

"저, 저 이거 잘 못 풀겠어요..."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재혁의 눈빛이 짙어지며 검은 눈 속에 분노의 기운이 서렸다.

"당신이 직접 풀면 안 돼요? 앗!"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보재혁은 단호하게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고, 심우리는 그의 품속에 강하게 끌려가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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