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직면해야만 했다.

김윤재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웃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깜짝 놀랬던 것이다.

우연히 그 식당 앞을 지나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박 선생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김윤재가 제안했다.

남도헌은 가볍게 대답하며 물어보라고 말했다.

김윤재는 전화를 걸었다.

20여 분 후, 박민서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박민서는 말했다

"마침 나도 널 찾고 싶었는데..."

"송은하랑 아는 사이야?"

박민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어 버렸다.

잠시 굳어있더니 다시 말했다.

"알아, 지난번에 네 부상을 치료해준 학교 후배야."

갈색 가죽 소파에 기대어 앉은 남도헌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그날의 그 여자였다고?

이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맞아."

박민서가 다가와 앉으며 한숨을 내리쉬고 물었다.

"도헌아, 좀 잘해주면 안 돼?"

남도헌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편안한 자세로 몸을 뒤로 기대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 일수록 마음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민서와 송은하는 그렇게 친했을까?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들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지금 걔를 위해 말하는 거야? 둘이 무슨 사이야?"

"선 후배 관계야. 같은 의과대학을 졸업했어. 나보다 두 살 어리고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는 자신과 어머니를 함부로 대한다고 들었어. 학교 다닐 때는 혼자서 학비를 벌기 위해 별의별 알바를 다 했고... 되게 불쌍한 애야".

박민서는 송은하를 위해 말을 해주려 하였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남도헌이 송은하를 제발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전했다.

직장을 잃게 만들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송은하를 항상 챙겨준 거야. 정말 좋은 친구거든. 도헌아, 은하는 또 어머님도 아프시고 치료비도 많이 필요한데, 한 번만 봐주면 안될까, 응? 직업 없이 먹고 살 길도 없는데..."

박민서는 송은하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떻게 널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봐서라도..."

박민서는 돌직구를 날렸다.

남도헌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동요가 찼다.

그녀가 뭔가 불쌍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녀를 용서할 순 없었다.

그는 좀 더 편안하고 나른한 자세로 몸을 뒤로 기대며 다소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내가 용서해 주길 바란다... 그래, 그럼 직접 와서 빌게 해."

박민서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남도헌을 보며 설명했다.

"별로 절박하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오지 않았겠지..."

송은하가 웬만하면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도헌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절박하다고?

절박한데 왜 그냥 오지 않았을까?

아직 절박 하지 않은 모양이지...

"도헌아..."

박민서는 여전히 송은하를 위해 말을 하여 했지만 남도헌은 듣기 싫은 표정이었다.

"이미 걔 절로 찾아오라고 말했잖아..."

말투는 이미 초조함이 역력했다.

박민서는 그한테 더 이상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냥 말을 끊으려 했다.

"그럼 너도, 네 상처를 치료한 것을 위해서라도 은하를 너무 괴롭히지 마..."

남도헌의 눈빛이 아련하게 스쳐 지나갔다.

“너, 걔 좋아해?"

이렇게까지 그녀를 위해 용서를 빈다고?

그렇게 친한 관계 라면...

송은하랑 사귀는 그 남자가 설마...

박민서는 해명하느라 바빴다.

"아니, 내가 은하를 좋아하는 건,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은하가 꽤 매력적이고 학교에서도 은하를 좋아하던 남자들이 꽤 많았어. 하지만 다 거절 했거든 아주 순수하고 착한 애야. 이런 착한 애를 누구나 다 좋아할 거잖아, 나만 좋아한 건 아니고...다들... 어떻게 보면 좋아할 수도 있지... 하하..."

남도헌 조롱 섞인 시선이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눈이 멀었나?

어느 눈으로 걔가 순수하단 걸 봤어?

순수한 여자가 신혼 날 밤에 다른 남자를 찾아가?

이렇게 대놓고 바람까지 펴?

이런 생각을 하니 남자의 얼굴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박민서는 남도헌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회사에서 나온 그는 문 앞에 서서 송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박민서와 만난 후 병원에 계신 엄마를 보고 오는 길에 박민서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미안해 하며 자신이 남도헌을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송은하는 남도헌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였다.

"괜찮아요, 너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화를 끊은 후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입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서는 순간 간호사가 그녀를 보고 말했다.

"어머님께서 깨어났어요"

"정말요?"

송은하는 흥분해 하며 말했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정말이에요, 가서 확인해 보세요! 전화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고마워요."

엄마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엄마가 눈을 뜬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큰 걸음을 내디뎠다.

"엄마..."

은하는 어머니를 향해 웃으려고 했지만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리 은하."

한혜림이 힘겹게 손을 들었다.

송은하는 얼른 다가와 손을 잡았다.

그것이 그녀가 가장 행복하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미안해..."

한혜림은 자신이 얼마나 엄중 했는지 알고 있었고 이제 몸이 나아진 건 남씨 집안으로 시집가라는 송주혁의 말에 동의한 게 틀림없었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많은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혜림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엄마."

"엄마가 없었다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겠어?"

그녀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가 자신을 낳을 때 고된 분만을 겪고 몸을 다쳐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지 않았다면 송주혁에게 미움을 받으면서 그가 밖에서 다른 여자를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 남씨 집안에서는 잘 지내는거야?"

한혜림은 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사람들한테 가면 무시당할까 봐 두려웠다.

송은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 살아, 할아버지하고... 남도헌하고 다 잘해주거든... 걱정하지 마. 엄마, 지금 몸조리 잘 해야 돼!"

그녀는 괜찮은 척 했다.

한혜림은 “응”하고 대답하며 다소 피곤한 표정을 보였다.

아직은 좀 쉬어야 한다고 해서 송은하는 곁에 남아 있다가 한혜림이 잠들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 *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분명 더운 날씨였지만 그녀는 조금 추웠고 자신이 이겨내야 할 일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남도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연락하려 했다. 죽이든지 말든지 그녀는 다 받아드리려 했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걸려는 순간, 그녀는 그의 연락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먼저 별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신 문 앞에서 남도헌의 차를 보았다.

그가 별장으로 왔다고?